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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한국과 중국 성장 도왔다"/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4. 30. 07:45

국제일본

아베, 침략 반성커녕 “한국·중국 성장 도왔다” 강변

등록 :2015-04-30 00:34

 

일본 총리론 첫 미의회 연설
“아시아 국민에 고통” 짧은 언급
회견장 ‘위안부 사죄’ 질문엔
“인신매매” 또 어물쩍 넘어가
오바마 “충돌 뒤엔 화해” 묵인

28일(현지시각)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미국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 할머니와 함께 200여명이 아베 총리가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에 사과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신화 연합뉴스
28일(현지시각)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미국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 할머니와 함께 200여명이 아베 총리가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에 사과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신화 연합뉴스
“전후 우리는 지난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을 마음에 담고 우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행동이 아시아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긴 사실로부터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 역대 일본 총리들이 표했던 견해를 지켜나가겠습니다.”

29일(한국시각 30일 새벽)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과거사에 대해 내놓은 발언은 여기서 멈췄다. 일본의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분명한 반성은 없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는 물론 위안부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반면 아베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나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 도움을 줬다는 내용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70년 전 잿더미가 된 일본이 미국의 지원과 미국이 구축한 전후 경제 체제에서 큰 혜택을 입었으며 “1980년대부터 한국, 대만, 아세안 국가들이 발전하고 이후 중국이 발전할 때 일본은 헌신적으로 자본과 기술을 투자해 그들의 성장을 도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와이 진주만과 필리핀의 바탄 등에서 일본과의 전쟁으로 숨진 미국인들에 대해서는 “일본과 일본 국민을 대표해 영원한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방미 기간 동안 일본군 위안부들을 인신매매의 희생자로 묘사하면서 일본 정부와 군의 개입을 사실상 부인하는 기존의 태도를 고수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아베 총리의 이런 거침없는 행보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어, 이번 아베 총리의 방미가 한-일 과거사 갈등을 완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8일 미-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는 <아에프페>(AFP) 통신 기자가 “아베 총리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노예가 된 약 20만명의 여성들을 포함해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행동에 충분히 사죄를 표명하지 않았다. 오늘 이에 대해 사죄하겠는가”라고 매우 직설적으로 물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사죄는 하지 않은 채, 전날 하버드대에서 했던 발언을 거의 그대로 반복했다. 그는 “인신매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위안부들을 생각하면 깊은 고통을 느낀다”며 “고노 담화를 계승하며, 이를 수정할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본은 위안부들에 대한 현실적인 고통 경감 방안을 제공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에 일본 시민들의 성금 등으로 조성한 아시아여성기금 등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해 고노 담화를 검증해 담화의 의미를 훼손했으며, 아시아여성기금도 일본 정부 차원의 공식 사죄와 배상이라는 피해자들의 요구와 거리가 멀다. 아베 총리는 또 “20세기 역사에서 전쟁 중에 여성의 존엄과 인권이 종종 침해당했다”고 말해, 일본만 전시 여성 인권침해를 한 것이 아니라는 ‘물타기’를 또다시 시도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주요 언론과 일부 미 하원의원들의 ‘진정한 사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이를 무시해도 자신의 의제를 관철시키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이번 방문에서 일본 자위대의 미군 지원 범위를 전세계로 확대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티피피·TPP) 협상 진전을 통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큰 환대를 받고 있다. 이는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역사 문제에서 일본의 전향적 태도를 이끌어내기 위해 물밑에서 독려하고 있다고 말해왔으나,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확연히 일본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오바마 대통령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전날 아베 총리를 링컨기념관으로 직접 안내한 것을 거론하면서, “링컨 대통령은 대규모 충돌 뒤에는 화해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믿었다”는 말 이외에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특히, 백악관에서 아시아정책을 총괄하는 에번 메데이로스 선임보좌관은 27일 아베 총리의 올해 발언들에 대해 “매우 중요하고 건설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우리가 파트너 국가들에 역사 문제에 대한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접근법을 취할 것을 독려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게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아베 총리의 손을 들어주는 발언이다. 미국 정부의 이런 분위기는 결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현 상황에서 한-일 과거사 갈등은 미국에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