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 외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앞줄 왼쪽), 길원옥 할머니가 29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미·일 신 밀월시대
29일(현지시각)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내빈들에게 인사를 마친 뒤 가장 먼저 입에 올린 이름은 그의 외조부이자 A급 전범 용의자였던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전 총리였다. 그는 “나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1957년 6월 일본 총리로서 이 연단에 섰다. 5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기회를 부여받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58년 전 외조부가 연설을 시작하며 꺼낸 말이라며 “민주주의의 원칙과 이상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일본은 세계의 자유주의 국가들과 연대하고 있다”고 인용했다. 기시 전 총리는 당시 미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연설했다.
“58년 전 외조부가 섰던 연단서
연설하는 기회 부여받아 영광”
미 상·하원 합동연설 말문 열어 미·일 정상회담 뒤 회견서도
“전쟁 우려 커지지 않았나” 질문에
“1960년에도 딱지 붙이기” 강변
안보조약 개정 기시 선택 옹호 ‘대등한 미-일 관계’를 꿈꿨던 기시는 아베 총리의 사상적 근원과 같은 존재다. 아베 총리는 28일 미-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기시 총리의 업적을 입에 올렸다. 그는 이날 ‘일본이 미국의 전쟁에 말려들 위험이 커졌다’는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기시 전 총리가 단행한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예로 들며 적극적인 반박에 나섰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전쟁에 말려들 수 있다는 ‘딱지 붙이기’ 같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 1960년에도 그런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55년이 지나 그 비판은 완전히 잘못됐다는 게 밝혀졌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미국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자리를 이용해 55년 전 외조부의 결단을 정당화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저서 <아름다운 나라에>(2006년)에서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되기 하루 전인 1960년 6월18일 기시 당시 총리가 32만명의 시위대에 둘러싸인 채 총리관저에서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살해당한다면 바라는 바다”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애초 미-일이 1951년 9월 체결한 조약에는 미국이 일본 영토 안에 기지를 운용하면서도 일본을 지킨다는 의무는 명시하지 않았다. 기시 전 총리가 이를 바꿔 일본이 미국에 기지를 제공하는(조약 6조) 대가로 미국은 일본에 대한 방위 의무를 진다(5조)는 내용을 포함했다. 그러나 이 조약엔 “양국이 극동의 평화와 안정에 관심을 갖는다”는 대목 등이 포함돼 미국이 일본 내 기지를 활용해 베트남전을 수행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기시 전 총리는 결국 조약 개정에 대한 국내의 커다란 반발로 사임했다.
아베 총리는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침략을 받을 때 미·일이 공동으로 대처한다. 동시에 극동에 대한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의 시설을 활용해 미국이 활동한다. 이런 것에 의해 일본의 안전이 지켜졌고, 일본의 전후 번영이 있었다. 그런 기능을 다시 한번 강화해 간다는 것이 새로운 가이드라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러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듯 이에 동의하는 일본인은 여전히 소수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연설하는 기회 부여받아 영광”
미 상·하원 합동연설 말문 열어 미·일 정상회담 뒤 회견서도
“전쟁 우려 커지지 않았나” 질문에
“1960년에도 딱지 붙이기” 강변
안보조약 개정 기시 선택 옹호 ‘대등한 미-일 관계’를 꿈꿨던 기시는 아베 총리의 사상적 근원과 같은 존재다. 아베 총리는 28일 미-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기시 총리의 업적을 입에 올렸다. 그는 이날 ‘일본이 미국의 전쟁에 말려들 위험이 커졌다’는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기시 전 총리가 단행한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예로 들며 적극적인 반박에 나섰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전쟁에 말려들 수 있다는 ‘딱지 붙이기’ 같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 1960년에도 그런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55년이 지나 그 비판은 완전히 잘못됐다는 게 밝혀졌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미국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자리를 이용해 55년 전 외조부의 결단을 정당화한 것이다.
원고 날리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던 중 원고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