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평생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학교에선 공부를 잘해야 하고, 직장에선 일을 잘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란 결국 돈을 얼마나 버느냐에 따라 가치가 계량화되기도 한다.
여야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놓고 갈 데까지 갔다 왔다. 연금 문제를 잘 모르지만, 몇주 동안 신문들이 쏟아낸 기사를 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상식적 판단이 가능했다. 아래 사실(팩트)은 모두 신문에서 발췌했다.
‘50%’는 40년 납입 기준이다. 20살에 취업해 60살까지 국민연금 내는 사람 없다. 평균 가입기간 24년 기준이면 실제 소득대체율은 19%까지 떨어진다. 한 보수언론은 “유럽은 소득대체율을 최대 30%포인트 낮추는 연금개혁 한다”며 ‘소득대체율 인상’을 질타했다. 그런데 예로 든 그리스의 소득대체율은 100.8%에서 67.9%로 떨어진다고 그 기사에 나와 있다. 20%포인트 인하 예로 든 룩셈부르크는 91.2%에서 71.7%, 이탈리아는 80.2%에서 58.8%였다. 외국은 “퇴직연금이나 사적연금을 강화해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산꼭대기에서 몇 걸음 내려온 것 보고, 산 입구에 있는 사람이 “요즘 추세”라며 “우리도 내려가야 한다”고 하는 격이다.
소득대체율 올리면 보험료 오른다고 난리다. 이탈리아 33.0%, 스페인 28.3%, 독일 19.6%, 일본 16.8%, 오이시디 국가(평균 16.9%) 가운데 한국(9%)보다 낮은 나라는 이스라엘(7.0%)뿐이다.
기업 부담 커진다고 난리다. 한국은 고용주가 보험료의 절반인 4.5%를 낸다. 이탈리아는 고용주가 23.8%를 낸다. 핀란드 17.7%, 일본 8.4%, 미국 6.2%. 오이시디 국가(평균 11.2%) 중 고용주 부담이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이스라엘(3.1%), 칠레(1.0%), 네덜란드(0%) 등 3개국이다. 네덜란드는 기업 부담 사회보장 비용이 상당해 제외해야 한다.
연금기금이 ‘2060년’에 고갈된다고 난리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은 460조원으로 세계 1위다. 노인빈곤율은 48.1%로 오이시디 평균(12.4%)의 3.9배, 노인자살률도 1위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세우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09년 10월 국정감사에선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70%를 준다 했다가 40%까지 내려왔다. 어르신들의 70~80%가 최저생계비 이상은 받아야 한다. 실질적 노후보장이 안 되는 상황에서 고갈만 연장한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주어만 가리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말 같다.
그러나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소득대체율 인상에 ‘도적질’이라 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칼럼에서 <맹자>를 인용해 “한 그릇 밥과 국을 얻으면 살고 못 얻으면 죽는다 할지라도, 호통치면서 주면 길 가던 사람도 받지 않고, 발로 차서 주면 거지도 더럽다고 여긴다”며 현 정권이 국민연금을 대하는 자세를 말했다. 경북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지역구 어르신들이 국가재정 어렵다는 말 듣고, ‘대통령이 우리들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주느라 그런 건가? 이 돈 도로 가져가고 대통령 덜 힘들었으면 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그리 독한 말을 뱉어야 했나?
소득대체율 인상은 ‘노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중년도 나중 걱정을 덜어야 지금 돈을 쓸 수 있다. 힘들어도 더 내고 더 받는 게 답인 것 같다. ‘쓸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권태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