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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쇠외된 자들의 희망 / 한성안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5. 25. 09:43

경제경제일반

‘지잡대’, 힘내라!

등록 :2015-05-24 20:08

한성안의 경제산책

다른 생물에 비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건 사실이지만 인간의 합리성은 본질적으로 한계를 갖는다. 먼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처럼 인간은 자신의 합리성을 과신함으로써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하나를 제외한 다른 아홉의 속성이 이 하나와 동질적이라면 이 속담은 맞는다.

하지만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면 이 속담은 틀리게 된다. 키 크다고 지적 능력도 출중하며, 일류대 나왔다고 도덕성도 높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처럼 한 사람의 돋보이는 성격을 가지고 그 사람의 총체적 모습을 판단해버리는 것을 ‘후광효과’라고 부른다. 많은 이들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추론 과정에서 실제로 이런 실수를 범한다. 그 결과, 낭비는 물론 낭패를 입곤 한다. 브랜드를 구입하기 위해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거나 외모와 학벌의 후광에 매료된 나머지 무능하고 비윤리적인 배우자를 선택해 평생 땅을 치며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합리성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권력자들의 ‘썰렁 개그’가 그중 하나인데, 박근혜 대통령의 개그만큼 썰렁하고 재미없는 개그도 없다. 그의 개그 중 어떤 것은 철 지나 이미 약발이 다한 것이어서 듣고 있으면 민망할 뿐이다. 혹은 최근 청년들의 ‘중동 취업 개그’처럼 분위기 파악이 안 된 생뚱맞은 내용이라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대통령의 이런 개그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표정하게 바라보거나 눈살을 찌푸리는데, 배석했던 여성들은 배꼽을 잡고 까르르 웃고 남자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대통령의 개그에 대해 이미 웃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그의 내용이 아니라 대통령의 권력이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든 것이다. 이 결과 충신은 귀양 가고 간신이 득세한다.

똑똑한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경우도 있다. 교수들은 평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주관식 답안지를 더 후하게 평가한다. 반면 아무리 좋아도 공부 못했던 학생의 답안지는 짜게 평가된다. 최고의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명성을 얻은 학자들에겐 약간의 학술적 공헌만으로도 더 큰 인정이 주어지나 이름 없는 학자들의 큰 업적에 대한 인정은 유보된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충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태복음 25장 29절)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에 의해 명명된 이런 ‘마태효과’는 스포츠 분야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마태효과는 혁신을 억압하며 진리와 정의를 부정한다. 그러니 억울한 사람이 많아지고 사회는 진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렇지는 않다. 인간의 이런 본질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좌절이 전망되는데도 불구하고 좀더 나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인간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시시포스들의 지치지 않는 도전은 ‘진화’하는 역사를 ‘진보’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성안 영산대 교수
한성안 영산대 교수
내겐 이용할 후광도, 정치권력도, 내세울 명성도 없다. 서울대 출신도 아니요, ‘인 서울’의 대학교수도, 빵빵한 지방국립대 교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의 허접한 글을 위해 2년 동안 이 소중한 지면을 빌려준 한겨레신문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무명의 ‘지잡대’ 교수를 추천한 한겨레의 박순빈 논설위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지잡대’,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