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의 미공개 정원인 목련원 ‘밀러의 산책길’에서 지난 3일 최광율 교육팀장(오른쪽 첫째)이 회원들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인 미공개 정원 견학 일정을 점검하고 있다.
[지역 현장] 아카데미 여는 ‘천리포수목원’
국내 최초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chollipo.org)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의 바다에 연해 있다. 전체 면적 59만2172㎡(59.22㏊)에 수목과 초목 1만5천여 종류가 서식한다. 이 수목원은 1945년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귀화한 ‘푸른 눈의 한국인’ 고 민병갈(칼 밀러·1921~2002)씨가 설립했다. 민씨가 1960년대 초 바닷가에 딸린 모래언덕 1만여㎡를 사들인 뒤 서울에서 철거되는 한옥을 이곳에 옮겨놓고 주변에 꽃과 나무를 심은 작은 정원이 수목원의 시초였다.
‘서해의 보물’로 불리는 천리포수목원 방문객은 생각보다 적다. 대도시에서 찾아가기가 불편하고 설립 뒤 40년간 연구 목적 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 비개방 수목원이었기 때문이다. 2009년에야 수목원 일부 구역만 개방했다. 천리포수목원의 대부분 구역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비밀정원’이다.
귀화 미국인이 1960년대초 지어
2009년 돼서야 밀러정원만 공개
수목원 약 90% 아직도 출입 금지 1만5천여 종류 다양한 식물 서식
세계적으로 목련의 메카 알려져
헐리는 한옥·초가 옮겨와 보존도 일반인 대상 아카데미 첫 강좌
“정원 즐기는 사람들 많아지길” ■ 비밀정원을 엿보다 지난 3일 낮 천리포수목원 에코힐링센터 안 묘표장을 지나 샛길로 접어들었다. 미공개 정원 가운데 한곳인 목련원·목련동산으로 가는 길이다. 논과 연못 사이로 난 데크길을 따라 걸었다. 산허리를 돌자 인기척에 놀란 노루 한마리가 데크길을 훌쩍 뛰어넘더니 ‘첨벙’ 소리를 내며 논 쪽으로 사라졌다. ‘출입 금지’ 푯말과 자물쇠가 걸린 철문을 두개나 열고 들어섰다.
껍질이 초콜릿색 예비군복 무늬 같은 아름드리 배롱나무 뒤쪽 언덕으로 기와집이 보인다. 민병갈 설립자가 살던 집이다. 안방 옷걸이에 설립자가 입었던 옷들이 걸려 있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야 끝이 보이는 나무들 사이로 걸어가자 처마가 웅장한 한옥이 나온다. 설립자가 마련한 게스트하우스 ‘목련원’이다. 대빗자루질 흔적이 남아 있는 정갈한 앞뜰엔 그림자를 드리운 처마에 풍경이 달렸고, 뒤뜰은 돌로 깎은 십장생과 부처, 동자석이 주인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에서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으니 바람이 보였다. ‘댕그랑~ 댕그댕그~’ 바람은 지금 풍경을 지났다.
“이곳에는 다양한 목련이 서식합니다. 천리포수목원이 세계적으로 목련의 메카로 알려진 것도 이곳 때문이죠. 목련은 전세계에 200여종 1천여 종류가 있는데 이곳에 40여종 500여 종류가 있습니다.” 최광율 천리포수목원 교육팀장의 말이다.
천리포수목원의 비밀정원은 이곳을 비롯해 식물교육장·온실·묘표장·무궁화품질보존원 등이 들어서 있는 에코힐링센터, 상록활엽수림 복원지인 닭섬(낭새섬), 자연 그대로의 식생이 잘 보존돼 있는 큰골, 침엽수림 지역인 커니퍼(침엽수원), 호랑가시나무·단풍·풍년화 등 다양한 식생이 우수한 종합원 등 6곳이다. 공개 지역은 설립자의 이름을 딴 밀러정원 6만5623㎡뿐이고 수목원의 약 90%가 미공개 구역이다.
■ 호랑가시나무가 자라는 언덕
천리포수목원은 정원이다. 수목원은 목본을 보유하고, 식물원은 목본에 초본을 포함한다. 목본 중심의 천리포수목원이 본격적으로 초본을 수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정원은 나무 밑에 초본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 수목원은 기후와 형식이 남다르다.
최창호 식물팀장은 수목원을 ‘기가 막힌 땅’이라고 소개했다. 최 팀장은 “전남 목포와 비슷한 기온의 해양성기후이고 강수량이 적절하다. 밀러정원은 연못이 있어 공중 습도도 우수하다. 이런 특성에 힘입어 아열대식물부터 아한대식물까지 1만5천여 종류의 다양한 식물이 자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수목원을 대표하는 나무는 호랑가시나무와 목련이다. 호랑가시나무는 국내산 5종과 변종 2종 등 7종이 자란다. 설립자는 특히 완도호랑가시나무를 애지중지했다. 가시인 듯, 아닌 듯한 가시가 특징인 이 나무는 감탕나무와 호랑가시나무의 교잡종으로 완도에서 채집돼 이곳에 자리잡은 뒤 미국의 호랑가시나무 동호회에 소개돼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목련은 이 수목원에서 태어난 라즈베리 펀과 빅 버사가 유명하다. 큰별목련인 레너드 메셀이 엄마나무다. 라즈베리 펀은 선명한 붉은빛이 아름다워서, 빅 버사는 분홍빛 꽃을 피우는데 나무 모습이 뚱뚱한 아주머니같이 생겨 이름 붙었다.
특징에 형식이 꼽힌 것은 이 수목원이 땅의 생김새를 유지하며 한국의 전통을 존중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최수진 홍보실장은 “밀러정원의 기념관은 초가집 모양이다. 설립자는 헐리는 한옥과 초가집 10여채를 이곳에 옮겨 보전했다”고 전했다. 밀러정원의 기념관과 연못은 애초에 논이었다. 필요한 시설을 짓고 남은 땅은 지금도 논이다. 수목원 직원들이 손모내기를 하고 농사를 짓는다. 이들이 신앙 같은 소명의식을 갖고 이곳을 가꾸는 것은 서양처럼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휴식을 주는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다. 한 이방인은 평생을 바쳐 만든 수목원을 이 땅에 선물하면서 ‘다른 이들을 위해 자연을 가꾸는 삶의 즐거움’의 씨앗도 뿌렸다.
■ 천리포 아카데미의 꿈
천리포수목원은 수목의 안전한 서식처다. 또 수목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교육공간이기도 하다. 모든 수목은 이 땅에 식재되는 순간부터 기록됐고, 수십개 나라와 종자 무상교류를 한다. 이 때문에 “귀중한 유전자원을 외국으로 유출한다”는 오해도 받았지만 현재 33개 나라의 315개 기관과 교류하며 다양한 식물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이달 천리포아카데미를 개강한다. 식물 이름을 알려주기보다 관찰하고 특성을 찾아내는 눈을 열어주려는 강좌다. 다양한 시각으로 정원을 보도록 하려고 식물학 외에 인문학, 곤충학 등도 강좌에 포함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첫번째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일반인 아카데미는 설립자의 유지이기도 합니다. 아카데미를 통해 많은 이들이 정원을 이해하고 즐기는 법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정원문화가 확산되면 미공개 정원 가운데 일부를 공개할 수도 있을 겁니다.” 구길본 원장의 바람이다.
태안/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수목의 피난처이자 교육의 공간” 구길본 천리포수목원장
수목 가치 온전히 지키면서도
수목원 운영 쉽지않아 고민
“수목의 입장에서 보면 입장객을 제한하는 게 옳아요.”
구길본 천리포수목원장은 지난 3일 ‘수목을 위한 길’과 ‘수목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길’을 앞에 둔 고충을 숨기지 않았다. 산림과학원장을 지낸 산림경영 전문가로서 수목을 위한 길을 택해야 할 터다. 그러나 구 원장의 고민은 수목을 위한 길이 수목원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 어려운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 원장은 “2002년 설립자가 돌아가신 뒤 천리포수목원은 두차례 중요한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첫번째는 2002년의 미공개 방침 유지 결정, 두번째는 첫번째 결정을 내린 지 7년 만인 2009년에 밀러정원을 공개하기로 한 결정이다.
그는 첫번째 결정이든 두번째 결정이든 모두가 수목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정원을 공개하면 수목이 훼손될 우려가 높아 미공개 결정을 했고, 또 빠듯한 예산으로 인건비와 나무 관리비 등을 감당할 수 없어 부족한 예산을 보전하려고 밀러정원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그의 고민은 ‘수목의 가치를 지키면서 수익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데 있다.
수목원 재단 이사진과 후원회원, 직원들 사이에는 지금도 정원 개방을 최소화하는 것이 수목원을 온전하게 관리하는 길이라는 주장과, 현실을 반영해 제대로 나무를 가꾸고 수목원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수익사업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팽팽하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천리포수목원의 원칙은 설립자의 뜻에 따라 수목원을 사람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수목의 피난처이자 교육공간으로서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며 “다만 양이 많다고 가치가 커지는 것은 아니므로 개방할 곳은 개방하고 남길 곳은 남겨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아카데미는 수목원이 일반인을 상대로 여는 첫 강좌입니다. 아카데미를 통해 봉사하고 헌신해 이룬 가치를 보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공개 못 하는 정원은 줄어들 겁니다.” 그는 미공개 비밀정원들을 모두 공개하는 날을 소망했다.
송인걸 기자, 사진 천리포수목원 제공
2009년 돼서야 밀러정원만 공개
수목원 약 90% 아직도 출입 금지 1만5천여 종류 다양한 식물 서식
세계적으로 목련의 메카 알려져
헐리는 한옥·초가 옮겨와 보존도 일반인 대상 아카데미 첫 강좌
“정원 즐기는 사람들 많아지길” ■ 비밀정원을 엿보다 지난 3일 낮 천리포수목원 에코힐링센터 안 묘표장을 지나 샛길로 접어들었다. 미공개 정원 가운데 한곳인 목련원·목련동산으로 가는 길이다. 논과 연못 사이로 난 데크길을 따라 걸었다. 산허리를 돌자 인기척에 놀란 노루 한마리가 데크길을 훌쩍 뛰어넘더니 ‘첨벙’ 소리를 내며 논 쪽으로 사라졌다. ‘출입 금지’ 푯말과 자물쇠가 걸린 철문을 두개나 열고 들어섰다.
“수목의 피난처이자 교육의 공간” 구길본 천리포수목원장
수목 가치 온전히 지키면서도
수목원 운영 쉽지않아 고민
구길본 천리포수목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