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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자염/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5. 21. 08:30

esc

끓여 만드는 태안자염, 한국의 게랑드 소금 될까

등록 :2015-05-20 19:09

 

 

낭금갯벌 앞에 있는 태안자염 생산시설. 인부가 끓인 소금을 걷고 있다.
낭금갯벌 앞에 있는 태안자염 생산시설. 인부가 끓인 소금을 걷고 있다.
[매거진 esc] 요리
반세기 만에 전통방식 복원 성공해 공급하는 태안자염 생산현장 낭금갯벌 탐방
“태안자염은 천일염과 달리 끓여서 만드는 소금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특징은 7일간이나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갯벌을 활용해 질 좋은 소금을 만든다는 점입니다.” 지난 14일 영농법인 ‘소금 굽는 사람들’의 정낙추(63) 상임이사가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에 있는 낭금갯벌에서 태안자염에 관해 설명했다. 자염(煮鹽)은 글자 그대로 ‘끓여서 만든 소금’을 말한다. 정 이사는 2001년, 태안지역에서 사라졌던 전통자염 생산 방식을 50년 만에 복원해 상품화에 성공했다. 갯벌자염을 복원해 생산하는 지역은 국내에서 이곳 태안과 전북 고창과 전남 순천 정도로 알려져 있다.

태안자염의 전통방식은 조수간만의 차를 활용해 염도가 높은 소금을 생산한다. 50년대 중반만 해도 지역민들은 갯벌에 통자락을 설치해 고이는 물(함수)을 모아 가마솥에 끓여 소금을 추출했다. 갯벌의 흙은 조금(조석간만의 차가 최저인 때. 사리의 반대) 기간 동안 바짝 마르고 사리 때가 되면 바닷물이 들이쳐 염도가 오른다. 정 이사는 “바닷물 염도 3도가 바짝 마른 갯벌의 흙을 만나 14도까지 오르고, 갯벌 때문에 칼슘 함량도 올라간다. 조금이 길수록 질 좋은 소금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적은 양의 소금으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옛 방식은 제품화하기에는 채산성이 낮았다. 정 이사는 전통방식을 기본으로 하되 생각을 바꿔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을 개발했다. 갯벌의 흙을 퍼 탱크에 담고 바닷물을 부어 함수를 받아낸 뒤 끓이는 방식으로 공정을 현대화했다. 함수 3t을 8~10시간 끓이면 대략 60~70㎏ 정도의 소금이 생산된다. “양이 적어 수작업으로 포장한다. 대량생산체제가 아니다.” 명맥이 끊긴 갯벌자염이 복원되자 역사학계나 문화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태안군청과 지역민들이 똘똘 뭉쳐 2000년대 초반부터 문화콘텐츠로서 사업을 시작했다.

갯벌에 통자락을 설치해
고이는 물을 모아
가마솥에 끓여 소금 추출
채산성 낮은 옛날방식에
대형 탱크 도입해 생산성 높여

2013년에 열린 자염체험축제에서 지역민들이 복원행사로 통자락을 설치하고 있다.
2013년에 열린 자염체험축제에서 지역민들이 복원행사로 통자락을 설치하고 있다.
지난해 9월2일부터 4일간 태안군과 태안소금명품화사업단 주최로 열린 ‘2014 자염체험축제’에는 갯벌의 특성상 완전예약제였음에도 500여명이 다녀갔다. 프랑스 브르타뉴주에서 생산되는 일명 게랑드소금이 1970년대 지역민들의 ‘게랑드소금 복원사업’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듯이 태안자염도 명품 소금의 반열에 오르고 있다. 게랑드소금은 15세기부터 전 유럽에 퍼질 정도로 생산되어 오다가 근대에 이르러 급속도로 몰락했었다. 지난해 국제슬로푸드생명다양성재단은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종자나 음식을 찾아내 기록하고 널리는 알리는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태안자염을 추가 등재했다.

고증을 통해 재현한 염벗(소금생산창고).
고증을 통해 재현한 염벗(소금생산창고).
농사를 짓던 정 이사가 갯벌자염의 복원에 나서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해방 무렵까지 간쟁이였다. 간쟁이는 통자락에서 함수를 퍼 날라 염벗(소금생산 창고)에서 끓이는 인부다. 갯벌자염 생산은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다고 한다. 갯벌을 소유한 염벗 주인은 갯벌과 움막, 갯벌 흙을 다지는 소, 가마솥을 제공한다. 철조각을 조각보처럼 엮어서 만들었던 가마솥은 가격이 상당했다. 주로 동네의 부자가 염벗주였다. 통자락을 소유한 염한이는 최종 소금 생산까지 진두지휘하고 생산된 소금을 소유한다. 일련의 생산과정이 끝나면 염한이가 대략 반을 가지고 나머지를 간쟁이와 염벗주가 3 대 2로 나눠 가졌다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생산되던 자염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소금제조법이 들어오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염전 대부분이 북한에 있어 남한은 심각한 소금 부족 현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쌀과 비슷한 수준의 가격으로 유통될 정도였다. 정부는 1950~60년대 초에 걸쳐 민간염전 개발을 적극적으로 권장해 천일염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갯벌자염 생산지가 거의 사라졌다. 천일염의 생산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간척사업으로 갯벌도 점차 사라져갔다. 낭금갯벌은 60년대 제방이 허술하게 조성되는 바람에 무너져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갯벌이라고 정 이사는 말했다. “밀가루를 봉급으로 받는 인부들이 제방 공사를 했는데 급료가 성에 차지 않아 적당히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 갯벌에서 말린 흙을 육지로 가져와 구덩이를 판 다음 바닷물을 뿌렸던 섯등방식이 전라도에, 갯벌 흙 대신 황토를 사용한 방식이 강원도에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말리기 위해 통에 담아둔 태안자염.
말리기 위해 통에 담아둔 태안자염.
현재 500g당 9500원꼴인 영농법인의 브랜드인 태안자염은 ‘초록마을’ 등 유기농식품유통업체를 중심으로 판매한다. 영농법인의 직거래도 가능하다. 태안자염의 맛은 소금 특유의 짠맛이 훅 치고 올라오다가 단맛이 퍼진다. 단맛의 여운이 오래간다. 서울 한남동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탈리아 출신 셰프 파올로 데 마리아씨는 이날 태안자염 생산시설을 방문해 소금 맛을 보고 “태안자염은 천일염에 비해 향과 톡 쏘는 맛이 풍부하다”고 평하면서 “신선한 샐러드나 나물류, 생선구이나 고기류와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태안/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영농법인 소금 굽는 사람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