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의 기습으로 정작 본인은 이미 대전으로 내려가 놓고 국민들에게 서울을 사수하라고 거짓 방송을 내보낸 대통령 이승만은 한국은행 창고에 은행권을 그대로 두고 내려갔다. 국회 부의장 조봉암이 도망간 ‘대한민국’의 뒷수습을 하고서 서울을 떴지만 시민들까지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는 그 혼돈의 피난 상황에서도 전국의 특무대 요원과 헌병, 경찰을 총동원하여 위협세력이라고 간주했던 보도연맹원 수십만명을 구금, 학살하는 일만은 치밀하고 철저하게 수행했다. 국가 경제, 국민 안전과 생명은 나 몰라라 했지만, 권력 안보에는 그렇게 철저했던 정권이었다.
메르스 첫 환자가 확인된 지 14일이 지나서야 첫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는 등 허둥대기만 한 박근혜 정권과 종편은 온 국민이 공포감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던 이 위급한 상황에도 박원순 시장 공격하는 일은 빼놓지 않았다. 4일 밤 청와대는 국회법 통과를 두고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발언을 반박하는 내용의 전화를 기자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전염병 확산 막는 것보다 도전 세력 견제하는 일이 더 다급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정권이 어디에 최대의 주안점을 두고 있는지가 드러난 장면이었다. 연출한 사진을 언론에 보내거나, 국민을 위한다는 담화로 한두번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지만, 그런 제스처가 계속 먹힐 수는 없다.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고, 입만 열면 태극기 게양을 강조한다고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종북 세력 제거한다면서 촛불시위 단순 가담 대학생들까지 치밀한 사진 채증을 거쳐 찾아내어 300만원이라는 거액의 벌금을 때리는 이 공권력이 왜 메르스 방역에는 이렇게 우왕좌왕했는지 생각해 보자. 그것은 무능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정확히 말하면 강한 관심과 완전한 무관심이 공존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 분야의 전문가, 공직자로서 도덕성을 갖춘 자를 찾아내서 각료로 임명하지 않고, 공인으로서는 너무나 많은 흠을 갖고 있지만 충성심만은 확실한 사람들을 고르는 것을 여러 번 보고 나서 우리는 다 알았다.
6·25 당시 그렇게 도망갔던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뒷수습을 했던 조봉암을 결국 간첩으로 조작하여 처형했다. 조봉암은 사형 직전 “이승만은 소수 잘사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했고, 나는 사람들이 골고루 잘사는 정치를 하려다가 결국 죽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 조봉암이 사형당하는 것을 본 모든 국민들은 “이 나라에서 사회와 약자를 위하는 것은 ‘빨갱이’ 것이며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충실해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더 나은 삶 지수’ 조사에 의하면 “정작 어려울 때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한국 사람의 비율이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고 한다. 위급할 때 달려와 보살펴주는 정치가나 관리가 없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도와주려는 이웃 사람들을 찾기 힘든 세상의 스산한 풍경이다. 그래서 과거 전쟁 중에 ‘각자도생’해야 했던 국민들은 전염병이 창궐한 오늘 ‘자가격리’ 할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의 세상은 사람이 만들어낸 ‘사회적 지옥’이다. 그런데 우리는 혼자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21세기 고도위험사회에서 전염병, 탄저균, 방사능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아무 데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와 정치를 완전히 개조해서 모두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권한만 쥐고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권력을 책임지게 만들어야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