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는 지시 대신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선생은 그렇게 하는 게 맞지요. 어쨌든 지도교수가 툭 던진 한마디를 두고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결국은 2차 세계대전이 언급된 단락을 빼기로 했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도 상식적이어서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글쓴이가 하고 싶어하는 말과 읽는 이가 듣고자 하는 말 사이에 거리가 있다면, 많은 경우 그건 글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핵심 메시지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글을 쓸 때 읽는 사람을 헤아려야 한다는 건 언뜻 생각하면 그저 당연한 주장에 불과한 듯싶습니다. 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만은 않지요. 몸에 배어야만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깁니다. 저의 학위 과정에서 글쓰기가 특히 더 강조됐던 건 어쩌면 학교 시스템이 한국이나 미국과 좀 달랐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학위논문 심사는 논문을 꼼꼼히 읽은 심사위원들이 한장 한장 넘겨 가며 진행합니다. 지도교수는 심사위원이 아니라서 심사장에 들어올 수 없지요. 심사가 하루에 끝나지 않아 다음날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제 지도교수와 연구분야도 비슷하고 친분도 아주 두터운 교수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이 두 교수가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들의 논문 심사를 서로 부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심사장에서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합니다. 두 교수 모두 말입니다. 친분과 논문 심사는 별개라는 것이지요.
지금 다시 돌아보니 유학생 시절 제가 제어이론을 특별히 잘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좁은 전공분야의 지식을 넘어 더 중요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으로서) 지시하지 않고 질문하기, (학생이나 연구자로서) 권위에 주눅 들지 않기, … 지도교수가 했던 말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이겁니다. “슈퍼맨은 없다!” 이런 뜻이었습니다. “대가가 쓴 논문이라고 무조건 믿지는 마라. 대가도 슈퍼맨은 아니어서 실수할 수 있다. 대가도 비판적으로 읽어라!” 교수의 권위는 수직적으로 강요되는 게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지도교수는 전형적인 영국인이었습니다. 사실 남달리 훌륭한 교수라 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지요. 외려 평범한 교수라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이 짜임새 있는 글을 정확하게 쓰게끔 유도하거나 친분에 얽매이지 않고 가까운 동료의 학생을 불합격시킬 수 있는 건, 그냥 보통의 교수들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런 걸 문화라 하는 모양입니다.
정말 중요한 일은,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좋은 시스템을 가꿔 가는 거라 여깁니다. 개인이 훌륭해야만 뭔가 좋은 결과가 나오는 세상은 그리 좋은 세상이라 할 수 없겠지요. 교수들이 헌신적이고 비범해야만 잘 가르칠 수 있다면, 그 대학도 근사한 시스템을 갖췄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평범한 교수한테서 좋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스승의 날이었던 지난 5월15일, 제가 유학생이었던 시절을 떠올려봤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저를 포함한 이 땅의 보통 교수들은 우리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시스템의 문제에 관해선 또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 걸까요?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