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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공천이 아니야!/ 박성민/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9. 14:01

정치국회·정당

바보야, 문제는 공천이 아니야!

등록 :2015-06-05 18:39수정 :2015-06-07 12:08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11)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하)
누구나 자기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전문가가 비전문가에게 문제 해결을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없다’가 아니라 ‘거의 없다’로 쓴 것은 전적으로 정치 때문이다. 원래 축구와 정치는 누구나 전문가인 체하는 거라지만 축구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럴 뿐이지 실제로 전문가 앞에서 맨정신으로 그러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정치는 맨정신으로 그렇게 한다. <개그 콘서트>보다 웃긴데 웃지 않아서 더 웃긴다. 프랑스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 식으로 표현하자면 ‘<개그 콘서트>가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개그 콘서트>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세상을 개그맨 유재석은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며 맘껏 조롱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혁신위원회를 또 만들었다. 이 당은 비상이 일상이다. 웬만한 중진치고 당 대표나 비대위원장 혹은 혁신위원장을 맡지 않은 사람 찾기가 더 어렵다. 결국 당내에는 더는 ‘참신한’ 인물이 없어 당 밖의 인사에게 당 혁신을 맡겼다. 수십년간 정치를 업으로 해온 중진들도 못한 혁신을, 1470만명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 후보였고, 현재는 당 대표인 문재인이 못하는 혁신을, 교수 출신의 당 밖 인사가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기는 정당, 이기는 혁신’을 하라고 문재인을 당 대표로 뽑은 것 아닌가? 당 대표가 할 수 없다면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4·29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문재인 대표에게 놓인 선택지는 두가지였다. 이기는 정당을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다면 깨끗이 책임지고 물러나든지, 아니면 재신임을 물은 뒤 직접 혁신위원장이 되어 ‘이기는 혁신’을 강력하게 추진했어야 한다. 남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졌더라도 이길 가능성을 봤다면 책임을 묻지 않았을 것이다. 무기력한 패배 뒤에 아른거리는 ‘계속 질 것 같은 두려움’이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는 비주류’라는 이상한 피해의식

정몽준이 월드컵 유치를 위해 1994년에 피파(FIFA) 부회장에 출마하려고 하자 축구계에서는 희망이 없다며 만류했다. “고생만 하고 망신만 당한다”며 반대하는 오완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게 정몽준이 물었다. “월드컵 유치와 피파 부회장 당선 중 어느 것이 더 어렵습니까?” “그야 월드컵 유치가 더 어렵죠.” “쉬운 피파 부회장도 못하면서 그보다 더 어려운 월드컵 유치를 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 아닙니까. 우선 쉬운 일부터 합시다. 만약 실패하면 그때 가서 정부에 월드컵 유치를 재고하자고 건의합시다”며 출마를 강행했다. 재검표를 통해 극적으로 당선된 정몽준은 결국 월드컵 공동유치에 성공했다.

어려운 것을 얻으려면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면 불가능한 도전을 해야 한다. 문재인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의 ‘통합과 혁신’도 못하고 남에게 미룬다면 대한민국 국민 누가 그에게 대통령을 맡기겠는가. 쉬운 일도 못하면서 어려운 일은 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국민이 믿겠는가.

문재인 대표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기득권’이다. 당 대표가 기득권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기득권이란 말인가. 기득권은 나쁜 것이 아니다. 기득권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얻은 권리다. 모든 승자는 본질적으로 기득권이다. 문재인은 왜 대표가 되려고 했는가? 대표로서의 기득권을 위해서 아닌가? 문재인은 왜 대통령이 되려는 것인가? 더 큰 기득권을 갖기 위한 것 아닌가? 문재인 대표는 ‘당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에서 “기득권은 저를 포함해 모두가 내려놓아야 합니다. … 모두가 각자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새 정치입니다.” 문재인 대표가 정말로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면 당장 당 대표를 그만두면 된다. 대통령 꿈도 미련 없이 버리면 그만이다. 그게 아니라면 상투적으로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말을 쓰면 안 된다. 기득권과 혁신은 동전의 양면이다. 혁신은 수단이고 기득권은 결과다. 삼성이 혁신을 하는 것은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것이고, 박근혜가 2012년 총·대선에서 혁신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당 대표에 만족하지 않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였다. 원래 혁신은 주류(기득권)가 더 큰 기득권을 갖기 위해 하는 것이다.

김한길 전 대표는 ‘당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문재인 대표의 생각에 대한 김한길의 생각’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우리 당에는 ‘친노’라고 불리는 세력과 ‘친노가 아닌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 ‘친노’와 ‘비노’가 계파로서 대결하는 구도가 실존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친노’가 있기 때문에 ‘친노가 아닌 사람들’이 있게 됐을 뿐입니다. … 굳이 우리 당에서 기득권을 말한다면, 당권을 쥐고 있는 문 대표만한 기득권이 따로 없고, 친노만큼의 기득권이 따로 있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친노, 주류, 당권파 뭐라 부르든 간에 문재인 대표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기득권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의 ‘화합과 혁신’의 책임도 문재인 대표의 몫이다. 문재인 대표와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이구동성으로 “우리 모두가 혁신의 대상이자 주체”라고 한 것은 전적으로 옳은 태도다. 혁신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는 혁신의 주체고 상대는 혁신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오만, 나만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독선, 우리는 동지고 상대는 적이라는 적개심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심각한 문제는 당의 주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 있다. 모두가 자기는 힘이 없는 비주류라는 이상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놀랍게도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포함한 지도부조차 당내에서 ‘약자’인 양 행동한다. 문재인 대표가 “패권주의를 성토하면서 패권주의를 보이는 행태야말로 역패권주의입니다”라고 하자, 김한길 전 대표는 “소위 ‘친노’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패권정치를 청산하기만 하면 우리 당의 고질적인 계파주의가 극복될 것입니다. … 그래서 저는 문 대표께 패권정치 청산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라고 맞받았다. 두 사람 모두 당원에게 보내는 글을 “분열은 공멸입니다. 이제 단결해야 합니다”(문재인), “뭉치면 살고 분열하면 죽습니다”(김한길)로 시작했지만 분열의 책임이 상대에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국민들이 새정치에 묻는 것은
누가 어떻게 공천받느냐가 아니다
대한민국 믿고 맡겨도 되느냐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묻는 것은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느냐다

혁신을 남에게 맡길 일이었나
‘새로운 비전’에서 우위 못 보이면
국민들은 ‘분열과 갈등’ 난무했던
‘노무현 시대’로 돌아가기보다
차라리 ‘익숙한 불통’ 택할 것

옐친은 어떻게 주가노프를 이겼나

사람이 말을 타락시키지만 말도 사람을 타락시킨다. 말을 보면 그 사람의 평소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생각을 조심해, 생각은 말이 되니까. 말을 조심해, 말은 행동이 되니까. 행동을 조심해, 행동은 습관이 되니까. 습관을 조심해, 습관은 인격이 되니까. 인격을 조심해, 인격은 운명이 되니까.” 나는 문재인 대표의 ‘당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을 읽다가 너무 놀랐다. 정치 지도자의 글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살벌한 표현 때문이었다. “패권 추구, 누구든 도려내겠습니다. … 그게 누구든 제 몸의 일부를 잘라내는 심정으로 도려내겠습니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자기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뜻의 ‘육참골단’이라는 무서운 말로 가세하자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고, 가죽을 벗기고, 목을 베고, 몸을 잘라내는’ 각오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흔히 혁신의 핵심을 공천이라고 한다. 혁신을 성공시키며 국민과 당원의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저부터 내려놓고자 한다. 저는 내년 총선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표도 공천이 당 갈등의 핵심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당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에서 “계파 패권적 공천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계파 나눠 먹기식 공천도 있을 수 없습니다. … 당이 어려운 틈을 이용해 기득권과 공천권을 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과거 정치입니다. 기득권과 공천권을 탐해 당을 분열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기득권 정치입니다. 기득권을 지키고 공천 지분을 챙기기 위해 지도부를 흔들거나 당을 흔드는 사람들과 타협할 생각이 없습니다. … 제가 정치를 안 하면 안 했지 당 대표직을 온존하기 위해 그런 부조리나 불합리와 타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의 분노가 느껴진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자기 문제로 분노하면 안 된다. 국민이 분노하는 문제로 분노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묻고 있는 것은 누가 공천받느냐, 어떻게 공천받느냐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믿고 맡겨도 되느냐는 것이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묻고 있는 것은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6월1일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계파주의와 패권주의 청산이 이번 혁신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혁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년 총선에서 이기는 정당을 만들고, 또 다음 대선에서 집권하는 당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께 우리 당의 존재 이유를 분명하게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혁신은 우리가 왜 정치를 하는지 그 근본 이유를 국민 속에서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바로 그것을 할 책임이 문재인 대표에게 있는 것이다. 남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과 문재인 대표는 1996년 러시아 대선이 준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1996년 러시아 대선은 현직 대통령 보리스 옐친의 재집권이냐, 아니면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의 집권이냐의 싸움이었다. 러시아 공산당은 1995년 의회선거에서 제1당이 되었고, 대선 초반 옐친의 지지율은 6%에 불과했다. 누가 봐도 주가노프의 승리가 당연해 보였을 때, 미국에서 건너온 옐친의 정치 컨설턴트들은 여론조사를 가장해 “공산당 지배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십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공산당에 대한 공포를 자극했다. 결국 옐친이 결선투표를 통해 53.8%의 득표율로 40.3%의 주가노프를 이기고 재선에 성공했다. 결국 러시아 국민들은 불확실한 리스크(공산당 지배 시절에 대한 공포)보다는 익숙한 리스크(술주정꾼)를 선택했다. 만약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을 통해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에서 우위를 보이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분열과 갈등’으로 시끄러웠던 ‘노무현 시대’로 돌아가기보다는 차라리 ‘익숙한 불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손학규 비대위? 안철수 비대위?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앞에는 세가지의 시나리오가 있다. 첫째, 문재인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른다. 둘째,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거나, 신당을 창당한다. 셋째, 총선을 앞두고 결국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선다. 첫번째 시나리오는 당권파의 뜻대로 당내 화합과 혁신이 모두 이루어져 총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져야 한다. 문재인 대표가 비당권파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한편,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강한 혁신안도 받아들이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혁신안의 강한 추진 동력을 위해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당권파의 뜻과는 다르게 문재인 지도부와 혁신위원회가 정면충돌하는 경우다. 사실상 김상곤의 ‘반란’이다. 혁신위원회가 문재인 대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핵폭탄급 혁신안을 내걸고 전당대회를 요구하거나, 아니면 야권 신당 제안을 하는 경우다. 세번째 시나리오는 결국 동력이 없어 혁신위원회는 유야무야되고 당내 갈등은 계속되는 가운데 총선이 다가오면서 위기감을 느낀 의원들이 문재인 대표 체제를 붕괴시키고 ‘비대위’로 넘어가는 경우다. 2011년 한나라당의 홍준표 체제가 붕괴하고 박근혜 비대위가 들어선 경우를 상상하면 된다. 이미 최고위원 1위(주승용)와 2위(정청래)가 지도부에서 빠진 상태에서 전병헌·오영식·유승희 최고위원 중 한두명이 이탈한다면 문재인 체제는 붕괴된다. 그렇게 될 경우 ‘손학규 비대위’나, ‘안철수 비대위’가 들어설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느 길을 선택할까? 일단 문재인 대표의 정치력이 먼저 시험대에 올랐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