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방미를 연기했지만,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얼마나 더 혼란을 가중시킬까. 메르스 감염자 발견 이후 메르스가 아니라 정치권과 전쟁을 벌였던 그였다. 뒤늦게야 4개나 되는 대책기구를 중구난방 늘어놓고, 민간 전문가에 초법적으로 행정권 전권을 주겠다고 선포한 그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는 8일치 <한겨레> 칼럼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 문제에 대한 현 정부의 무능은 소름 끼칠 정도”라고 말했다. 앞서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는 1일 “메르스보다 더 무섭고 치명적인 것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력과 국가운영 자질 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날은 메르스 확진자 발생 12일째였다. 그때까지 박 대통령이 한 일이라곤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관련부처의 ‘초동대처 미흡’을 질책하고, 유언비어 단속을 재촉한 게 고작이었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마따나 이제 무능은 이 정권을 설명하는 열쇳말이 되었다. 그러나 무능은 병증이지 병인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사실 선거 과정에선 지독하게 유능했다. 야당이 표방할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와 공약을 모두 선점했다. 그러나 집권 뒤 기억 장치가 망가지고,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이 마비되고, 심지어 재난상황에서 조건반사 기능까지 실종됐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폐질환 면역질환 신장질환 당뇨 등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치명상을 안긴다고 한다. 이 정권은 불통과 아집, 태만과 책임 전가, 눈속임이라는 질환을 앓아왔다. 그런 숙주에 기생하는 치명적 바이러스의 작용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 없는 상태다. 박 대통령의 무능·무책임증후군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실체에 대해 이미 적잖은 이들이 언급한 바 있다. 보복이 두려워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을 뿐이다. 전 박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공직자를 질타했다고 감격하는 물건이 더러 있는데, 이런 물건들이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바이러스다.”
1일은 메르스 첫 사망자가 발생한 날이었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가 아니라 정치권과 맞짱 뜨기로 작정한 날이기도 했다. 여야 합의로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공식화한 것이다. 국회법 개정은 위임의 한계를 벗어난 정부 시행령으로 입법 취지가 훼손되고, 행정 독재로 흐르는 데 대한 입법부의 견제였다. 그러나 긴급조치 등 유신의 총통제의 시각에선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메르스 감염자 발견 이후 족벌언론들도 메르스가 아니라 국회법 개정안이 나라를 망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한 족벌신문은 2일, 메르스 환자 첫 사망 소식을 밀어내고 국회를 ‘코미디’로 조롱하는 분석기사를 1면 머리에 올렸다. 그런 보도에 의기양양했는지 박 대통령은 2일 아주 홀가분하게 여수 창조경제혁신센터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날은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3차 감염이 확인된 날이기도 했다. 전국의 210개 학교가 휴교에 들어갔다. 정부는 총력대응을 선언했지만 청와대는 새누리당이 요청한 당·정·청 회의를 거부했다. 그 와중에도 한 족벌언론은 사설로 ‘박원순의 메르스 정치 경솔했다’고 비판했고, 박 대통령은 메르스가 아니라 박 시장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두 신문은 엊그제 ‘민폐시민’ 혹은 ‘후진적 보건의식’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통해 시민 책임론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민의 과민 대응’을 비난했다. 바이러스의 실체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감염된 박 대통령의 무능·무책임증후군은 이제 치유불능 상태가 되어버렸다. 시민이라도 깨어 있다면, 사회적 면역체계가 작동해 국가의 중추신경까지 마비되는 것은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시민이 오히려 더 극성이었다. 박 대통령이 박 시장을 공격하던 엊그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한복 차림으로 장구 치고 북 치며 박 시장을 비난하는 일부 개신교도들의 해괴한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이들은 메르스 참변 속에서 뜬금없이 박 시장을 동성애 바이러스 유포자로 매도하고 있었다. 이들 또한 이 정권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바이러스였다.
박 대통령은 저의 아바타라 할 총리 후보자를, 광신에 가까운 종교적 편향자이거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자이거나 아니면 고의성 짙은 병역 면탈자들만 골라 지명했다. 증후군으로 말미암아 뇌와 중추신경이 마비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는 엊그제 청문회에서 이렇게 답했다. ‘(메르스 사태에 대해) 박 대통령이 제때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이미 마비 상태다. 박 대통령이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3일 말했다. “이 정부가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스럽다.”
국가 중추가 마비되면서,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과 살림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그렇다고 바이러스를 퇴치할 방법이 딱히 없다. 바이러스가 이미 뇌를 장악하고 있다. 함께 도려내야 하는데 누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