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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이웃, 국민 인식조사로 본 한-일 관계/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10. 07:19

정치외교

한·일 국민의 상대국 호감도, 월드컵·독도 등 고비마다 ‘출렁’

등록 :2015-06-04 19:35수정 :2015-06-04 21:32

 

일본이 느끼는 한국에 대한 인식변화와 주요 사건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수교 50돌 새 한-일관계 탐색] (3) 멀고도 가까운 이웃
국민 인식조사로 본 한-일 관계
한국에 일본, 일본에 한국은?

한-일 관계사를 관통해온 물음이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여러 답이 나왔다. 일제 강점기 ‘대한독립군가’는 “악독한 원수”라고 일본을 불렀다. 당시 일본에 조선(한국)이란 사라진 나라, 식민지에 불과했다. 광복 뒤 20년간은 미수교 상태였다. 두 나라는 서로에게 여전히 적대국이자, 싫은 나라였다. 1962년 6월11일치 <경향신문>은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일본’이라고 보도했다.

1965년 6월22일 외교관계 수립과 더불어 한-일 관계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가깝고도 먼 이웃’은 과거사를 서둘러 봉합한 이 시기 한-일 관계를 형용하는 규정이다. 그리고 수교 50돌을 맞는 지금껏 이를 뛰어넘는 관계 규정을 구현하는 데는 두 나라 모두 실패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이전보다는 좀 더 ‘가까운 이웃’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흐름을 드러내기는 했다. 그러나 과거사와 영토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호감도의 상승 추이는 수직 낙하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상호 인식 조사 결과들은 점진과 단절, 후퇴가 반복돼온 한-일 관계의 역사와 현실을 냉정하게 드러내준다.

<한겨레>는 1965년 수교 이래 한국과 일본 국민이 서로를 어떻게 인식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 분석했다. 1978년부터 매년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물어온 일본 내각부 조사, 1984년부터 5~6년 단위나 한·일 월드컵 등 특정 계기에 맞춰 양국 국민의 상호 인식을 질문해 온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의 공동 여론조사, 최근 3년 연속 실시된 한국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겐론엔피오(NPO)의 상호 국민 인식조사 등을 대상으로 했다. 분석 결과는 수교 반세기를 맞은 한-일 관계에 여전히 첨예한 갈등 요인과 녹록지 않은 과제가 쌓여 있음을 일러준다.

가장 최근 조사는 동아시아연구원·겐론엔피오의 3차 공동조사다. 올 4~5월 실시해, 5월29일 도쿄에서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한국인 과반은 일본을 ‘군국주의 국가’로, 일본인 과반은 한국을 ‘민족주의 국가’로 각각 바라봤다. 상대국의 사회·정치체제 성격에 대해 3가지를 택할 수 있도록 했더니, 한국 응답자 56.9%가 일본에 대해 ‘군국주의’를 꼽았고, 34.3%는 ‘패권주의’를 택했다. ‘민주주의’를 떠올린 비율은 22.2%, ‘평화주의’는 4.2%에 그쳤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우경화 기조에 대한 한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연례조사 1999년 분기점
한국 호감 비율이 비호감 추월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처에
유연한 과거사 대응으로 상승세

2012년 고비로 곤두박질
박근혜 정부서도 ‘냉각기’ 여전

한국의 일본 호감도 1984년 23%
2011년 말엔 12%로 뚝 떨어져

최근 조사선 과반이 상대 부정인식
한국선 ‘일본 군국주의 국가’ 시각
일본은 ‘한국 민족주의 국가’로

“기복 심하지만 장기적 발전 추세
한-일 관계 귀중한 자산” 분석도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도 부정적이었다. 일본 응답자의 55.7%는 한국에 대해 ‘민족주의’를, 38.6%는 ‘국가주의’를 꼽았다. ‘민주주의’는 14%, ‘평화주의’는 6.6%에 지나지 않았다. 전년보다 ‘민족주의’로 인식한 비율은 늘고, ‘민주주의’를 꼽은 비율은 줄었다. 아베 정부는 지난 4월 ‘외교청서’에서 한국을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명단에서 빼버린 바 있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도 한국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추구하면서 일본에 부당한 과거사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대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비율은 두 나라 모두 절반을 넘어섰다. 상대국에 대한 인상을 묻자, 한국 응답자 72.5%와 일본 응답자 52.4%가 각각 ‘좋지 않다’고 답했다. ‘좋다’는 응답은 한국인 15.7%, 일본인 23.8%였다. 서로 부정적 인상을 갖게 되는 배경은 역시 ‘과거사·영토’ 문제였다. 한국인 응답자의 74%는 “일본이 침략 역사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독도 문제 때문”이라는 응답도 69.3%였다. 일본인 응답자는 74.6%가 “한국이 역사 문제 등으로 일본을 계속 비판하기 때문”이라고, 36.5%가 “독도 문제 때문”이라고 답했다.

상대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비율이 양국 모두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상황은 2012년 이래 새롭게 불거진 양국 관계의 급속한 냉각을 반영한다. 그 이전까지 한-일 관계는 21세기 들어 때로 갈등을 빚으면서도 전반적으로는 꾸준히 개선되는 흐름을 드러냈다.

일본 내각부의 연례 여론조사를 보면, 1999년을 분기점으로 ‘한국에 친근감을 느낀다’(48.3%)는 일본 국민들의 비율이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46.9%)를 넘어선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는 ‘친근감을 느낀다’가 63.1%로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 2010~2011년 연속 60%를 웃돌던 이 비율은, 독도·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 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2년 39.2%로 추락한 뒤, 2014년엔 31.5%로 주저앉고 만다. 조사 시작 3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조사는 아직 실시되지 않았다.

한국에는 내각부 조사와 직접 비교할 만한 연례조사가 없다. 간헐적으로 진행돼온 동아일보·아사히신문 공동조사를 보면, 1984년 ‘일본이 좋다’는 한국인은 22.6%, ‘싫다’는 한국인은 38.9%였다. 가장 최근인 2011년 말 조사(2012년 1월 발표)에선 한국인 중 ‘일본이 좋다’가 12%, ‘싫다’가 50%로 나타났다. 2013년 시작된 동아시아연구원·겐론엔피오의 연례 상호 인식조사를 보면, 이해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한국인은 12.2%, ‘좋지 않다’는 76.6%로 조사됐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2012년을 기점으로 한-일 관계의 악화와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증가가 동시에 이뤄졌음을 유추해볼 수 있게 한다.

2011년 말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교토 충돌, 2012년 8월10일 이 대통령의 전격적 독도 상륙이 한-일 관계의 변곡점이 됐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앞서 노무현 정부 들어 불붙은 일본 내 한류 열풍과 한국의 유연한 과거사 대응 등으로 한-일 관계는 상승 기류를 탔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잇단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으로 2005년부터 다시 냉각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을 계기로 새롭게 반등세에 올라탔던 한-일 관계는 2011년 12월18일 교토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과 노다 총리 사이에 ‘위안부’ 문제 설전이 벌어지면서 난기류에 휩싸였다. 이어 2012년 이 대통령이 한국 정상 최초로 독도를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고 만다. 일본 정부는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제기하며 강경 대응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일축하는 한편, 독립운동가에 대한 일왕의 사죄 요구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 내 혐한 기류가 본격 대두됐고, 이에 대한 반발로 한국 내 반일 감정이 고조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나타났다. 그 결과가 전년보다 23%포인트 내려앉은 2012년 내각부의 ‘친근감’ 조사 수치다.

뒤이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론의 희석을 시도하는 아베 신조 정부와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 정상회담도 없다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이명박-노다’보다 ‘박근혜-아베’는 외교문제에서 더 강경한 조합이다. 한-일 관계는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인적 왕래와 문화 교류 등 민간 협력이 꾸준히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은 한-일 관계의 버팀목이다. 한-일 관계의 긍정적 변곡점으로 기록된 1999년 이래 두드러진 흐름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직전인 1998년 10월 일본 방문 직후, 수교 이래 처음으로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는 파격 조처에 나섰다. 이는 한국인들이 일본인과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또 일본에서도 <겨울연가>,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 등 한국의 드라마, 가요 등을 즐기는 한류가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양국 국민들 사이 이해도와 호감도가 크게 높아졌다. 1999년 이후 내각부 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느낀다’는 쪽이 ‘그렇지 않다’를 역전하는 장기적 추이 변동이 이뤄진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앞으로도 한-일 관계가 다시 한번 긍정적 장기 반전의 서막을 열 수 있을지는 ‘과거사·영토’ 문제에 대한 정의롭고도 섬세한 접근과 더불어, 국민들 사이 이해와 공감의 확산에 달려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한·일 양국의 서로에 대한 국민감정은 단기적으로는 기복이 심하지만, 큰 방향에서는 분명히 견실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며 “이것이 50년 한-일 관계에서 축적된 가장 귀중한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