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일본기자클럽에서 고노 요헤이(왼쪽) 전 관방장관과 함께 대담을 한 무라야마 도미이치(오른쪽) 전 총리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일본기자클럽 대담
무라야마 “일의 침략·식민지배 사실”
고노 “속죄마음 보여줄 생각해야”
두 담화 부인하려는 흐름에 우려
무라야마 “일의 침략·식민지배 사실”
고노 “속죄마음 보여줄 생각해야”
두 담화 부인하려는 흐름에 우려
“역시 ‘진실’이로군요.”
9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구 일본기자클럽에서 진행된 1시간 반에 걸친 대담이 끝난 뒤 행사의 사회자가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이 남긴 글씨를 청중에게 소개했다. 일본기자클럽은 기자회견에 참석한 연사들에게 자신의 인생철학이 담긴 글자와 서명을 받아 보관하는 전통이 있다. 이날 고노 전 장관이 남긴 글자는 ‘진실’(眞實), 무라야마 전 총리가 남긴 글자는 ‘간사함을 생각하지 않음’(思無邪)이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간사함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진실과 결국은 같은 말”이라며 웃었다.
무라야마 전 총리와 고노 전 장관은 진보와 보수로 정치철학은 다르지만,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온건한 사상을 가진 정치인으로 전후 일본 정치를 이끌어왔다. 그 때문에 두 정치인은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죄하고 반성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라는 역사적 성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 고노 전 장관은 1994년 6월 당시 사회당의 무라야마 의원을 총리로 옹립해 ‘자·사·사 연합’을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구실을 하기도 했다.
고노 전 장관은 ‘진실’이라는 글자를 앞에 두고 현재 일본 일각에서 일고 있는 흐름에 대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는 고노 담화를 부인하려는 일본 사회의 일부 흐름에 대해 “중국,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사과하고 말고가 아니라 사실, 진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본에선 여성들이 어떻게 모집됐는가라는 극히 일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정부나 군이 직접적으로 강제 연행한 게 아니라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논의가 일본의 명예에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만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이미 나온 지 20여년이 지난 두 담화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현실이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아베 총리가 집권한 뒤 담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지난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아베 총리가 좀처럼 직접 언급하지 않으려는 ‘침략’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고, 조선을 식민지배한 것은 사실이니까 이를 쓴 것이다. 이는 (당시 자민당을 포함한) 모든 각료의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어 각의결정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대담은 한국과의 가장 큰 외교 현안이 된 위안부 문제로 이어졌다. 고노 전 장관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995년 내놓은) 아시아여성기금이 해산됐지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고통을 받은 분들이 계속 돌아가시고 있지만 생존자분들에게 (일본이) 속죄의 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힘이 될 만한 것들을 어떻게 시행할지, 일·한 쌍방이 함께 생각해 가능한 시행 안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도 “위안부 문제는 역시 일본이 (한국과) 정상회담을 열어 어떻게든 해결했으면 한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한-일 간에) 큰 문제가 없다. (1990년대에도 무라야마 담화 등이 나온 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 나와 양국 관계가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