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하여

JTBC 손석희 인터뷰 다니엘 튜더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11. 23:55

JTBC TV

[앵커]

전해드린 것처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떴습니다. 선거마다 패해온 야당이 이번엔 환골탈태할 수 있을 것인가…한국의 야당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을 날리는 외국인이 있습니다. 다니엘 튜더 씨. 기억하시는지요? 대동강 맥주가 우리 맥주보다 낫다고 해서 잠시 파장을 일으켰고, 자신이 직접 맥줏집을 차려서 또 화제가 됐던 전직 이코노미스트 기자 다니엘 튜더 씨입니다. 이미 한국에 대한 소개서인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로 문제제기를 한 번 하더니, 이번에는 그보다 더 도발적인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란 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핵심은 한국 정치에는 좌파도 우파도 다 문제가 있다. 특히 야당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만나서 인터뷰했습니다.

맥줏집에 대해서 많이 들었는데 런던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왜 맥줏집이 잘 안됐습니까?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아홉 개 점포를 열었습니다. 7개월 전에 런던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런던에 있습니다.]

[앵커]

이번에 책을 아무튼 내고 오셨습니다. 제목이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여기에 대해서 와 닿기도 하고 왜 그랬을까 알긴 알겠는데 좀 더 설명을 듣고 싶군요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정치에 대한 절망과 실망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또 추문이 일어났구나", "부패가 일어났구나"라는 반응을 보이며 이런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정치란 게 '다 그런 거구나'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경향은 민주주의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잃게 되면 정치권에서는 자기들이 원하던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겠죠. 제목에서 희망에 대해 언급한 의미는 이렇습니다. 선거전을 펼칠 때 한국 정치인들은 항상 '희망', '소통', '미래'에 관한 어구를 쓰는데 이런 용어들이 매우 애매모호합니다. 긍정적인 단어이긴 하지만 애매합니다. 그래서 이런 어구들을 보면 저는 상당히 불편해집니다.]

[앵커]

어찌 보면 이 제목에 책 내용이 모두 담겨있다고 봐도 되겠다는 그런 느낌이 드는군요.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서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 자체를 싫어하더라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외국인으로서 이런 비평서를 내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이 바보는 누구야?", "이 사람은 대체 누군데?"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이 논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그래서 던진 문제제기 가운데 하나가 책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한국엔 보수, 진보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것 같지 않다, 조금 이상하다. 본래적 의미의 보수나 진보는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정치적 대립이 극심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분열은 다른 요소로 인한 분열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부족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 가장 큰 두 정당이 오랫동안 서로 반대해왔지만 진정한 좌파·우파로 나누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새누리당을 보면 GDP 등 오랫동안 경제적 지표에 집착해온 정당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특정한 철학이 없습니다. 항상 숫자로 대변되는 개발 모델을 지향해왔죠. 반면 새정치연합의 경우에는 새누리당이 하는 모든 일에 반대하는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1970~80년대에 시위했던 정신에 기인한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절실하고 가치가 있는 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20대·30대는 과거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젊은 층들은 '진짜' 진보 정책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 소수 계층이나 우리가 좀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취약계층에 관한 정책이 나오면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른바 보수 정부는 계속해서 통계지표에만 매달리고, 이른바 개발모델에만 매달린다는 거죠. 그리고 진보 정치세력은 진보적 아젠다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반대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라는 그런 인상을 받았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그 얘기는 저희들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또 지금 여당이든 야당이든 각자 이 얘기에 대해선 반론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 언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진단을 내린다면?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한국에서 외신기자로 일했을 때 저는 다른 한국 기자들이 누리지 못하던 자유를 누렸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을 보도할 수 있었는데, 한국 기자의 경우엔 잘못했다간 고소를 당할 수도 있고 감옥에 갈 수 있는 상황도 생겨나고 또 광고주들의 영향에서도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이코노미스트 기자로 일할 때 우리는 가끔 한국 기업으로부터 위협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 관해서 이렇게 나쁜 기사를 쓰면 광고를 빼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관점에서 봤을 때 단일 기업은 광고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수천 개 광고주 중의 하나일 뿐이었죠. "그래? 우린 괜찮아" 하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한 기업이 광고 수입의 1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치면 그때는 광고주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겠죠. 따라서 한국에서는 보도의 자유가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계 쪽도, 정치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한국이 표면적으로만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가는 것 같다 라는, 이것은 굉장히 도발적인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물론 좀 도발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약간 과장된 표현이기도 합니다. 한국이 독재주의 국가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거의 일당체제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큰 원인은 야권의 정치권이 경쟁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는 일본처럼 한 정당이 계속 집권하는 일당체제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또한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언론을 장악하려 하고 언론의 비판에 대해서도 제약을 가하려 합니다. 이렇게 되면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정부 입장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야권이 좀 더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야권의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야권이 좀 더 창의적이고 긍정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야권은 그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항상 네거티브에 몰두하고 의제설정에 있어서도 뒤처지고 있습니다. 경제민주화가 바로 좋은 예입니다. 야권은 경제민주화에서도 의제설정을 하지 못하고 뒷북을 치는 식으로 따라갔습니다.]

[앵커]

혹시 토니 블레어 지지자이십니까?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이라크 참전을 제외하고는 그런 편입니다.]

[앵커]

그래서 토니 블레어가 주창한 이른바 제3의 길을 우리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그렇게도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한국의 방식이 돼야겠죠. 한국 사회에 토니 블레어가 있다면 어떨지 이를테면 복지를 예로 들겠습니다. 토니 블레어가 잘했던 것은 복지가 단지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입니다. 저도 영국 복지제도의 수혜자입니다. 저는 영국 복지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교육을 받았고, 또 아플 때는 무료로 병원을 이용했습니다. 또 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 부모님은 정부로부터 매달 아동 수당도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러한 복지 제도가 없었다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저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복지가 사람들에 대한 투자지 게으른 사람들한테 돈을 주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반값 등록금·무상, 이런 식으로 복지에 접근합니다. '무상', '반값' 이런 말은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대신에 "복지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복지 혜택을 받으시고 많은 돈을 모으면 세금을 더 많이 내십시오"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정부는 투자했던 것을 다시 회수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이것은 다 프레이밍 이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그 여야 할 것 없이 한국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유아 다루듯이 한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제가 그런 말을 한 이유는 한국에서 선거전이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드린 말씀입니다. 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선거철만 되면 사람들이 시장에 가서 아주머니들과 함께 어묵 국물을 먹는다든가 하는 서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안 하다가 선거를 코앞에 앞두고서만 그런 모습을 연출합니다. 그리고 '희망', '소통', '미래' 같은 슬로건을 보면 모두 다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허황된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쓰면서 국회의원들의 웹사이트도 방문해봤습니다. 비슷한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더군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전략이 먹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계속 그렇게 한다는 점입니다.]

[앵커]

아까 말씀하신 것을 다시 돌이켜보면 지금 이 상태들을 계속 갈 수밖에 없지 않으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경우에는 예를 들면 여당을 지지하는 분들은 매우 반가워할 얘기고 야당을 지지하는 분들은 매우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야당이 어떻게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안타깝게도 '야권이 변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거만 치르면 매번 지잖아요. 항상 네거티브에 몰두하고 조직력도 떨어집니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직력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조직력을 갖춘 야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정당이라면 선거에서 이길 줄 알거나 또는 확실한 아이디어, 핵심 정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둘 중 아무것도 못 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는 거죠.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전자를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둘 다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거에서 이길 줄 아는 정당이 하나밖에 없다면 당연히 일당체제로 가겠죠.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당에 도전할 수 있는 정당이 나와야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앵커]

한 가지 좀 어려운 질문입니다. 선거 때 여당인 새누리당은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습니다. 맞죠? 야당도 물론 내놓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야당이 내놓는 진보적인 정책보다는 여당이 내놓는 진보적인 정책에 더 표를 던집니다. 왜 그럴까요.

[다니엘 튜더/전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 : 앞서 언급한 조직력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는 진보적인 정책을 원하는 유권자가 상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젊은 층에서 그렇습니다. 진보적인 정책을 원하면서도 야권을 보면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진보정책을 제시한 것은 영리한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진보정책을 내놓았다가도 막상 집권을 하면 새누리당은 발을 뺍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진보정책을 제시해 51퍼센트의 유권자를 확보하고, 51퍼센트의 인구만 설득하면 선거에서 이기게 되죠. 그래서 중도 유권자들을 흡수하기 위해서 새누리당에서 진보정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원래 지지자층에 중도 유권자까지 흡수함으로써) 쉽게 새누리당이 이길 수 있는 거죠.]

[앵커]

한국 맥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에서 맥주를 직접 만드셨습니다. 한국의 정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정치를 직접 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영국인이시기 때문에. 그러나 가끔씩 이렇게 도발적 질문을 던져주시는 것은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손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