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

폐로에 천문학적 비용 들어/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13. 11:37

경제경제일반

폐쇄 과정 ‘숨은 비용’ 천문학적…원전 확대 ‘재논의’ 힘 받을 듯

등록 :2015-06-12 19:50수정 :2015-06-12 22:12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자력발전소 모습이다. 맨 오른쪽이 영구 가동 정지 권고를 받은 국내 첫 원전 고리 1호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자력발전소 모습이다. 맨 오른쪽이 영구 가동 정지 권고를 받은 국내 첫 원전 고리 1호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첫 ‘폐로 권고’ 배경과 전망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원자력발전소의 영구 정지를 권고 결정한 것은 앞으로 줄줄이 이어질 노후원전 처리 문제를 비롯해 원전 확대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하는 데 기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원전 확대론은 원전이 발전 단가가 싸고 온실가스 배출 부담이 적어 친환경적이란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폐로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숨은 비용의 문제가 전면화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12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린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는 고리 1호기 수명 재연장과 관련해 경제성과 안전성 모두 의문이 제기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고리 1호기의 경제성과 관련해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수명을 한번 더 연장할 경우 영구 정지할 때보다 이용률(80~85%)과 판매 단가 등에 따라 1792억~2655억원이 이득이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여기에 지역 주민에게 제공할 지원금은 계산에 반영하지 않아 사업자의 경제성 추산에 의문이 제기됐다. 2007년 한차례 수명 연장 뒤 고리 1호기 관련 지역 지원금으로 1310억원이 들어갔다. 고리 1호기의 설비 용량이 587㎿로 전체 설비예비율의 0.6%에 불과한 점도 경제성 판단에 고려됐다.

안전성 문제에서도 한수원의 분석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한수원은 2014년 7월~2015년 5월 안전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 원자력안전법 기준인 158개 항목에서 모두 ‘만족’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리 1호기는 그간 잦은 고장으로 부산 주민의 불안감을 키워왔다. 전체 운영중인 23기 원전의 고장 사례 690여건 가운데 19%인 130여건이 고리 1호기에서 발생했다.

한수원에선 안전하다지만
원전고장 690건 중 130건 19%
잇단 납품비리로 신뢰 잃고
후쿠시마 사고도 불안 키워
폐로기술 개발 ‘발등의 불’

고리 1호기 해체 계획 및 일본 도카이발전소 실제 사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여기에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원전 안전성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진 점, 잇따른 원전 납품 비리로 2013~2014년 전·현직 한수원 임직원 100여명이 기소되는 등 사업 당사자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점도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안전성의 세부적인 문제는 고도의 기술적 내용이라 위원회 회의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되진 않았지만,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볼 때 이미 신뢰가 크게 무너지지 않았냐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밝혔다.

이러한 논의 과정을 볼 때 이번 결정으로 그간 단기적인 경제성 논리에 묻혔던 원전 산업의 장기적 안전성과 경제성 등을 둘러싼 논의가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 상업운전 원전인 고리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뒤 지난 37년간 국내 원자력 발전 산업은 확대 일로를 걸어왔다. 값싼 전력 생산 비용에 이산화탄소 등 대기 오염 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장점 덕에 이명박 정부 때는 20%대 수준인 전력생산의 원전 비중을 2035년까지 41%로 높이는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그러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으로 원전의 위험성에 문제 제기가 본격화했고, 2014년 들어 2035년 원전 비중 목표를 29%로 축소 수정했다. 2014년말 현재 원전 비중은 23.5%다.

그럼에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현 정부의 기조는 유지 또는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당장 월성 1호기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2월 한차례 운영 기간을 연장했으며 지난 10일 재가동을 최종 승인해 이달 중 가동된다. 지난 8일 발표된 7차 에너지수급기본계획에서 산업부는 석탄화력 발전 4기 건설 계획을 포기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원전은 2기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원전은 현행 23기에서 향후 35기까지 늘어난다.

폐로는 많은 비용이 드는 작업으로, 원전산업에서 새로운 단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부족한 폐로 기술 개발과 전세계적 수요가 대두되고 있는 원전 해체 산업의 육성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환경운동연합은 “고리 1호기를 안전하게 폐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전문가, 지역주민, 환경단체 등이 폭넓게 참여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