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초-고성군 화진포 여행/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18. 08:13

esc

버스 타고 갈아타고…기다리는 맛도 구수하네

등록 :2015-06-17 20:45

 

고성 화진포해변. 앞 섬이 거북을 닮은 금구도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고성 화진포해변. 앞 섬이 거북을 닮은 금구도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여행
새 연재 시내버스·마을버스 타고 방방곡곡 느리게 둘러보는 이병학 기자의 ‘완행버스 전국여행’
버스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마을버스·시내버스들이 산골마을·바닷가마을 구석구석을 시간 정해놓고 드나든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전국 여행이 가능해지는 밑바탕이다. 버스 여행. 좀 더디고 번거롭기는 해도 손수운전 여행 때와는 또 다른 풍경과 감흥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마을마다 드나들고 정류소마다 멈춰서는, 마을버스 갈아타며 굳세게 전진하는 ‘완행버스 여행’을 시작한다. 한달에 한두번꼴로 연재한다.

강원도 고성은 동해안 최북단이다. 부산에서 함경북도 온성을 잇는, 7번 국도의 남한 쪽 끝이다. 일반 차량은 현내면 명파리에서 차를 돌려야 한다. 속초~고성을 오가는 시내버스도 대부분 마차진에서 회차하지만, 막히면 에둘러 가고 또 되돌아 나가며, 주민과 여행자를 구석구석 데려다준다. 속초에서 출발해 고성 화진포호까지, 시내버스를 갈아타며 1박2일 동안 걷고 들여다보고 쉬었다. 해안을 따라 아담한 포구들과 깨끗한 해변, 크고 작은 문화유산들이 촘촘히 이어진다.

완행버스는 타는 맛보다 기다리는 맛

낯선 산골이나 바닷가 마을 정류소에서 한 30분 버스를 기다린다는 것. 자주 해도 싫증나지 않는 몇 안 되는 짓 중 하나다. 정류소 의자에 앉아 들꽃 구경하고, 뻐꾸기·개개비 소리 들으며 그저 먼 산 바라보는 일이다. 어느새 옆자리에 와 앉아 계신 할머니·할아버지, 어쩌다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는 학생들, 가끔씩 오고 가는 자전거 여행자들과 나누는 눈인사 들도 그렇다. 속초에서 고성까지 이런 버스 정류소들이 즐비하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 정류소에서 10분 안팎 간격으로 오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시내 기본요금은 1200원. 티머니 교통카드는 못 쓴다. 1000원짜리를 준비해야 한다. 탈 때는 운전기사에게 갈 곳을 말하고, 정류소 안내방송에 귀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시내 번화가인 로데오거리 지나 관광수산시장(중앙시장) 입구에서 내린다.

출출했더라도 일단 여기까지 참고 오는 게 좋다. 고소하고 쫀득한 닭강정이 이 시장의 명물이다. 견과류만 묻혀 내는 순살닭강정에서부터 깨범벅·고구마·더덕·청양고추 닭강정에다 황태강정·코다리강정까지 강정집들이 10여곳이나 된다. 닭강정뿐인가. 옥수수술빵·수수부꾸미, 호박·연근·감자 부각, 새우·홍게튀김에 씨앗호떡·아이스크림붕어빵까지 간식의 천국이다. 일부는 시식도 가능하다.

속초시내의 명물 갯배.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속초시내의 명물 갯배.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아바이들은 세상 뜨고 마을엔 촬영지 흔적만

닭강정·다시마튀김 시식한 뒤 시장 모퉁이 노점에서 “뒷산에서 직접 따왔다”는 달콤한 오디 한컵(2000원)을 사들고, 또다른 속초 명물 갯배를 타러 간다.

갯배는 중앙동과 청호동 아바이마을 사이의 50m 물길(청초호 수로)을 건너는 옛날식 도선이다. 배에 탄 승객들이 갈고리로 쇠줄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오가는 배다. ‘편도 200원’ 뱃삯을 받는 어르신들은 북청·단천 등에서 어린 시절 피난 온 함북 출신 아바이 2세들이다. “1세대는 다 떴지. 여태 살아있겠나?” 아바이마을은 옛집들마저 대부분 헐려 사라지고, 함흥냉면·가자미식해·오징어순대·명태순대 등 북한식 음식을 내는 식당 몇곳만 남았다. 아바이마을에 아바이들의 자취는 간데없고 드라마·방송물 촬영 흔적들만 소란스럽다.

속초와 고성을 오가는 동해상사 1번 시내버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속초와 고성을 오가는 동해상사 1번 시내버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돌아 나와 갯배입구 정류소에서 1번 버스를 타고 영금정입구에서 내려 동명항 포구와 영금정·속초등대전망대를 둘러본다. 영금정은 과거 절경을 이뤘다는 해안 바위경치를 이른다. 정자 영금정이나 등대전망대에 올라, 일제강점기 항만건설 때 파괴됐다는 바위경치 일부를 감상할 수 있다. 영금정 입구에 ‘실버문화관광해설사’들이 대기한다.

낯선 산골이나 바닷가 마을 정류소
버스 기다리며 빈둥빈둥
이틀 동안 12번 갈아타며
버스삯·입장료 포함 2만5000원

버스 탈 때마다 가는 곳·찻삯 확인 필수

장사항을 지나면 버스는 고성군으로 접어든다. 이제 1번 또는 1-1번을 골라 타야 한다. 운행 간격도 15~30분(특히 주말·공휴일엔 30분 이상인 때도 있다)으로 늘어난다. 시간을 미리 넉넉하게 잡고, 마음도 느긋하게 먹는 게 좋다. 탈 때마다 버스기사에게 “○○까지 가나요? 얼마죠?” 물어봐야 한다. 기사분들은 어디서 타든, 구간별 요금을 10원 단위까지 정확히 말해준다. 영금정입구에서 청간정이 있는 청간리까지는 1450원이다.

전망 좋은 소나무숲 언덕에 자리잡은 청간정은 초석(돌기둥)들만 옛것이고 건물은 최근 것이다. 주변 바닷가 언덕에, 조선 전기 이전부터 있었던 정자가 퇴락하자 일제강점기 현 위치로 이전 복원했고, 30여년 전 새로 지은 것이다. 청간정 경치를 노래한 시인묵객들의 기록이 전해올 뿐이다. 들머리에 자료전시관이 있어 둘러볼 만하다.

고성 천학정 뒷산의 ‘천년송’.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바위를 가르고 자라올랐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고성 천학정 뒷산의 ‘천년송’.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바위를 가르고 자라올랐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고성 아야진리 거리의 벽화와 조형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고성 아야진리 거리의 벽화와 조형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볼거리로 치면 교암리의 천학정이 더 낫다. 버스는 회무침을 잘하는 식당이 있는 아야진마을을 거쳐, 생선조림 잘하는 식당이 있는 교암리로 들어간다. 교암2리의 천학정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절벽 위의 정자다. 정자 관리인 김근영(68)씨는 방문객들에게 일일이 정자 앞 바위무리에 숨은 손가락바위·코끼리바위·두꺼비바위 들을 일러준다. 뒷산 바위에 뿌리내린 거대한 소나무 ‘천년송’도 볼만하다. 산비탈엔 바위에 새긴 옛 글씨들도 남아 있다.

송지호 둘레길·왕곡마을길 자전거 산책

오호리·송지호해변입구 정류소에서 내리면 호젓하고 아름다운 호숫가길이 기다린다. 길 건너 죽왕초등학교 앞에서 국도변 투명차단막을 따라 잠시 걸으면 들꽃 핀 호숫가에 물새 날고 산새 우짖는 송지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데크길·흙길이 호수 둘레를 따라 만들어져 있다. 5㎞ 넘는 둘레길을 다 걷는 건 부담스러운데, 오고 가는 바이크족들이 부럽다고 느낄 때쯤 철새관망대 옆에 마련된 ‘자전거 무료 대여소’를 만나게 된다. 고성군이 6월초 문 연 자전거대여소다. 오전 11시~오후 4시(낮 12~1시는 점심시간, 월요일 휴무) 운영. 인적사항을 적고 신분증을 맡겨야 한다. 40~50분이면 자전거로 호수를 한바퀴 돌 수 있다.

송지호와 철새 관련 자료들이 전시된 철새관망타워(1000원)에 들른 뒤 자전거(헬멧 포함)를 빌려 타고 송지호 인근의 전통마을 왕곡마을로 향했다. 2.2㎞, 왕복 30분 소요.

국토 종주 자전거길과 일부 겹치는 송지호 둘레길은 소나무 울창한 흙길이다. 좌회전해 호숫가를 따라 시멘트길을 오르내리면 찻길 건너 초가·기와집 즐비한 왕곡마을에 이른다. 18~19세기에 지어진, 안방·사랑방·마루·부엌·외양간을 한 건물에 배치한 북방식 전통가옥 20여채가 모여 있는 강릉 최씨, 강릉 함씨 집성촌이다. 마을에선 토요일마다 오방팔찌·매듭 만들기, 제기 만들기, 비석치기, 굴렁쇠 굴리기 등 전통문화체험 행사가 열리고, 오후 6시엔 국악 공연이 벌어진다. 마을보존회 사무실에 해설사가 대기한다.

자전거를 반납한 뒤엔 다시 걸어야 한다. 송지호 북동쪽 끝 7번 국도 건너편에 왕곡마을입구 정류소가 있지만, 죽왕초등학교 쪽 오호리 정류소로 되돌아가는 길이 빠르다.

“버스가 너무 안 와” 말씀에 “자꾸 타줘야죠”

다시 15~30분 간격으로 오는 1번 또는 1-1번 시내버스를 타면, 젊은 여행객들이 해물짬뽕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중화반점이 있는 공현진마을 거쳐, 자연산 물회로 이름난 가진마을을 지나 고성군청이 자리한 간성읍에 닿는다. 여기서 거진·화진포·대진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운행 간격이 30분으로 늘어난다.

간성읍에서 1번 시내버스로 화진포호 입구까지 가는 동안 할머니 서너분이 함께 타셨다. 운전기사와 버스 운행시간 얘기를 나누신다. “누가 태워다준댔는데 그냥 버스 탔다우.” “암 그래야죠.” “근데 버스가 너무 안 와. 너무 기다려.” “아, 자꾸 버스를 타주셔야 운행시간이 줄죠. 텅 빈 채 다녀봐요. 자꾸 차를 줄일 수밖에.”

대진중·고등학교 앞에서 내린다. 화진포호수 들머리다. 화진포 해변의 눈부신 모래밭과 짙푸른 바다 건너에 엎드린 금구도 모습이 그림 같다. 삼국시대 옛 성 흔적이 남아 있고, 일설에 광개토대왕릉이라고도 전해오는 거북 모양의 섬이다. 해변과 호수 사이 산자락에 옛 김일성 별장이 있어 들러볼 만하다. 이기붕 별장, 생태박물관도 옆에 있다. 3곳 묶어 관람료 3000원.

이틀에 걸쳐 12번 버스를 갈아탔다. 버스삯·입장료 포함해 약 2만5000원이 들었다.

속초·고성/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완행버스 여행 정보

대중교통(서울 기준) 서울 강남~속초 우등고속버스 30분 간격 운행, 2시간40분 소요, 1만8100원. 동서울~속초 우등 약 1~2시간 간격 하루 9차례 운행, 2시간20분 소요, 1만7200원(대학생 20% 할인 1만3800원). 고성군 간성읍~동서울은 우등(2시간30분 소요) 하루 6회, 준고속(3시간 소요) 11회 운행.

좀더 가볼 만한 곳 고성의 고찰 건봉사. 조선 4대 사찰로 꼽혔던 명찰. 1878년 산불로 당우 3000여칸이 전소됐고, 복원 뒤 다시 한국전쟁 때 600여칸이 전소돼 불이문(1919년)과 돌기둥 등 석물들만 남았다. 버스편은 없고, 간성읍(시외버스터미널 옆)에서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왕복 2만원. 최북단 마을 명파리와 통일전망대. 간성읍에서 명파리까지 하루 6차례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명파해수욕장은 7월 중순 개장 예정. 통일전망대는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 신고 뒤 자기 차량으로 들어갈 수 있다.

먹을 곳 속초 동명동 이모네식당(생선찜), 고성 봉포 영순네(물회), 교암 녹원식당(생선찜·조림), 아야진 유리식당(회무침), 공현진 수성반점(해물짬뽕·짜장면), 가진 광범이네(물회) 등. 왕곡마을에도 마을과, 마을 입구 저잣거리에 비빔밥·막국수 등을 파는 식당이 1곳씩 있다.

묵을 곳 고성 왕곡마을 고택 민박(화장실·샤워실 공용). 비수기 1박 2만5000원~5만원. 성수기(7월11일~8월16일)엔 두 배. 속초 엑스포타워 주변에 모텔이 많다. 고성 화진포호 인근 초도리 민박촌은 비수기 평일 3만~4만원. 고성 마차진 금강산콘도 비수기 평일 6만5000원부터.

여행 문의 속초시청 관광과 (033)639-2545, 고성군청 관광문화과 (033)680-3361, 동부고속 (033)631-3181, 동해상사(속초~고성 시내버스) (033)636-2162, 고성택시(간성읍) (033)681-2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