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명품섬 여수 안도와 신안 영산도/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25. 08:49

esc

주민 손으로 빚은 명품섬, 이름값 하네

등록 :2015-06-24 20:42

 

여수시 안도에 딸린 섬 바깥삼도(외삼도)의  ‘선녀탕’. 빗물·바닷물이 섞여 고인 천연 노천탕인데, 최근 가뭄으로 수량이 줄었다. 번식한 해초를 주민들이 치우고 있다.
여수시 안도에 딸린 섬 바깥삼도(외삼도)의 ‘선녀탕’. 빗물·바닷물이 섞여 고인 천연 노천탕인데, 최근 가뭄으로 수량이 줄었다. 번식한 해초를 주민들이 치우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명품 섬마을 기행
여행객 발길 뜸하던 전남 여수 안도와 신안 영산도는 어떻게 ‘명품 섬마을’로 거듭났나
멀리 떠나는 여행이 꼭 더 즐거운 건 아니다. 하지만 먼 곳, 외진 곳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긴 여정을 무릅쓸 만큼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붐비지도 않으면서, 투박하지만 푸근한 주민의 정을 만날 수 있는 외딴섬 여행이 그렇다. 물론 섬 여행에도 품질이 있다. 여행이 고행이 되는 섬이 있는가 하면, 편의를 위해 지나치게 개발하고 꾸며서 본모습을 잃은 섬도 많다. 이런 가운데 최근 주민들이 힘 모아 경관·전통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매력적인 도시민 휴식처로 가꿔나가는 섬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명품 섬마을’로 선정한 전남 여수의 안도와 신안의 영산도가 대표적이다. 갖가지 어려움을 이기고 매력적인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는, 다도해국립공원 안의 두 섬마을로 간다.

7~8가구 살던 안도 동고지마을
50대 청년들 주축으로 변신
‘착한 아저씨 돌담집’
‘토박이 할머니집’ 등
주인 특징·성격으로 문패 단 민박집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도 준비

안도 동고지마을 주민들이 방풍나물전·전병을 안주로 막걸리를 들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안도 동고지마을 주민들이 방풍나물전·전병을 안주로 막걸리를 들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퇴락해가다 명품 섬마을로 거듭난 안도 동고지마을

여수시에서 돌산대교 건너 차로 30분, 돌산도 신기항에서 배 타고 금오도까지 30분, 다시 차로 30분 달려 연륙교(안도대교)를 건너야 만나는 섬이 안도다. 지난 4월 명품 섬마을 간판을 내건 동고지(동곶)마을은 안도 포구에서 다시 차로 10분쯤 비좁은 해안 시멘트길을 따라 섬의 동북쪽 끝으로 들어가야 한다.

“작년 4월에 전국 명품마을 공모사업에 응모해서 1등을 차지한 마을이죠.” 왜 명품마을인가를 묻자 민박·식당 주인인 김성수(53) 마을위원장의 구수한 설명이 이어졌다. “에, 우리 마을로 말할 것 같으면, 어민 3세대와 방풍나물과 머윗대를 재배하는 농민 8세대가 합심해 오순도순 사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년 전까지도 이 마을은 폐가와 버려진 밭이 즐비한 오지 마을이었다. 1970년대엔 500여명이 살던 큰 마을이었지만 하나둘 떠나면서 7~8가구가 사는 외딴 동네로 쪼그라들었다. 국립공원 지역에 속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주민수가 급감한 탓에 국립공원 타당성 조사를 통해 시행된 마을·농경지 공원지역 해제 혜택에서도 탈락했다. 20가구 이상 마을만 해제됐기 때문이다.

이랬던 마을이 다채로운 경관과 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공모를 통한 국립공원관리공단 지원의 명품 섬마을로 새단장하게 된 것이다. 초기엔 회의론도 만만찮았다고 한다. 심요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금오도분소장은 “일할 사람도 없는데 무슨 명품마을이냐며 반대하기도 했고, 추진 과정에 소외된 분들의 반발도 있었다”며 “서로 마음을 열고 회의를 거듭하며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마을의 주축은 5명의 ‘50대 청년’들이다. 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집과 돌담을 옛 모습대로 단장해 민박 시설을 들이고, 마을을 도는 산책로도 마련했다. 집마다 ‘착한 아저씨 돌담집’, ‘이발사 아저씨 집’, ‘토박이 할머니집’, ‘시원한 파도 아저씨집’ 등 집주인의 삶과 성품을 담은 문패도 달았다. 단체여행객을 위한 펜션 2개동도 이미 문을 열었고, 주민이 직접 잡은 해산물을 방문객들에게 차려낼 식당 ‘어가식당’도 7월 중에 문을 열 계획이다.

안도포구의 당산숲.
안도포구의 당산숲.
이 마을 50대 청년들의 면면을 보면, 농어촌 결혼 문제의 애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부가 함께 사는 집은 한 집뿐이고 3명은 이른바 ‘돌싱’(돌아온 싱글), 1명은 “완전 숫총각”이다.

유일하게 부인과 함께 사는 김성수 위원장 역시 1년 전 돌싱을 면한 처지다. “음, 난 말하자면 네번째 결혼한 몸인디, 흐유, 겨우 여자를 데려와도 쫌 살다가 이런 촌구석에선 도저히 못 살겠다는데 어쩔 수가 있어야지, 원.” 그러나 위원장의 부인은 당당했다. “살 만해요. 공기 좋고 경치 좋고 사람들도 좋고.” 마을의 유일한 젊은(50대) 여성인 그는 지금 일식요리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중이다. 마을에 곧 문 열 ‘어가식당’에서 각종 해산물 요리와 마을의 대표 작물인 방풍나물과 머윗대 등을 이용한 전병·부침개 음식을 선보일 예정이다.

동고지마을엔 볼거리도 많다. 마을 앞 바위절벽 해안이 근사하다. 풍어제를 올리던 널찍한 바위(도짓마당)도 있고, 파도 칠 때마다 차르르르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몽돌해변도 있다. “언제 썼는지 알 수도 없이 오래된” ‘글쓴바위’도 눈길을 끈다. 글쓴바위엔 바위벽에 희미하게 남아 해독이 불가능한 크고 작은 여러개의 한자 붓글씨들이 보인다. 일부 주민은 이 글씨가 “진시황 때 불로초를 구하러 온 사람”이 썼고 “그 불로초가 다름 아닌 방풍나물일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또다른 볼거리로, 30년 경력의 이발사이자 어부인 김안일(53) 부위원장이 멋쩍어하며 소개한 ‘공알비통’(여성 성기를 닮은 바위굴)도 있고, 김성수 위원장이 “세상 아무도 모르는 곳”이라며 털어놓은 바깥삼도(외삼도)의 천연 노천탕 ‘선녀탕’도 있다. 마을 뒷산엔 마을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올려온 옛 사당과 제관이 머물던 집도 남아 있다.

신안군 영산도의 명물 석주대문(코끼리바위).
신안군 영산도의 명물 석주대문(코끼리바위).

홍도·흑산도 그늘 벗고 홀로 선 영산도

1004개의 섬을 보유한 신안에서도 최근 각광받는 섬이 흑산도 옆에 딸린 작은 섬 영산도다. 역시, 예로부터 ‘영산 8경’이 전해올 만큼 경관 빼어난, 다도해국립공원에 속한 섬이다. 70년대까지 2개 마을에 주민 430여명이 살던 이 섬은 잇단 태풍으로 멸치어장 등이 초토화되면서 주민들이 섬을 떠나기 시작해 몇년 전까지만 해도 무인도가 될 처지였다고 한다.

“무인도가 되는 건 어떻게든 막아보자 해서 시작한 게 명품 섬마을 사업이었죠.”(최성광·50·마을위원장)

22가구 43명 중에서 위원장과 사무장(47) 빼곤 다 70~80대인 이 섬이 무인도 위기에서 되살아난 건, 젊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할머니·할아버지들이 힘을 모았기 때문이다. 신안군과 공단 지원 아래 집과 길을 새로 다듬고 펜션을 짓고 식당을 만들었다. 18명의 70~80대 부녀회원들이 운영하는 부뚜막식당에선 제철 해산물을 솜씨있게 조리해 선보여 인기를 끌고 있다. “한번 다녀간 분들이 다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방문율이 50% 가까워요.”(국립공원관리공단 박승기 담당관)

청정 섬 유지와 건강한 공동체 복원에 애쓴 주민들의 단합이 큰 몫을 했다. 2년 전엔 방송 프로그램 <1박2일> 촬영 요청을 주민회의를 거쳐 거절하기도 했다. “방송이 나간 다른 지역을 보니까, 인파가 몰려 아수라장을 이루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어 촬영을 사양했죠.”(최 위원장)

주민들이 단합해 환경 보전에 나서고, 펜션 정원만큼만 들어올 수 있게 해 청정 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명품 섬마을을 언제든 찾아가 머물 수 있는 건 아니다. 올 10월까지 이미 숙박예약이 끝났기 때문이다.

안도(여수)/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