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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뒤에서 군화소리가 들리고 있다"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20. 14:18

국제일본

“일본, 뒤에서 군화소리가 들리고 있다”

등록 :2015-06-19 19:50수정 :2015-06-19 22:15

 

일본의 유명 승려 작가인 세토우치 자쿠초가 18일 도쿄의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약 2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안보 법률 개정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일본의 유명 승려 작가인 세토우치 자쿠초가 18일 도쿄의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약 2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안보 법률 개정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일본 승려 작가 세토우치의 반전 목소리
“최근 상황을 보고 잠들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일본에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 뒤 죽자고 생각했다.”

18일 오후 6시 반, 도쿄 지요다구 중의원 제2회관 앞.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내릴 듯한 흐린 도쿄의 하늘 아래 검은 승복을 차려입은 세토우치 자쿠초(93)의 휠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 법제 개정작업을 저지하기 위해 연좌 농성을 벌이던 시민 2000여명이 따뜻한 박수로 그를 맞았다. 여승인 세토우치는 일본의 고대 소설 <원씨 이야기>를 현대어로 바꾼 밀리언셀러 작가이자, 평화와 반전을 위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그의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돼 소개됐다.

휠체어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세토우치가 전한 것은 자신이 직접 겪은 처참한 전쟁 경험과 여기서 우러난 평화와 반전의 목소리였다. 점점 전쟁에 가까워지고 있는 일본 사회를 향한 세토우치의 날카로운 ‘죽비소리’는 <아사히신문> 등 일본의 주요 신문 1면에 보도됐다. 폭주하던 아베 정권의 개헌몰이가 점점 국내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는 대표적 상징이었다.

밀리언셀러 작가이자 평화활동가
아베 총리 추진 ‘집단적 자위권’ 비판
휠체어 타고 몸소 겪은 전쟁 고발도
“일본에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토우치가 태어난 것은 1922년이다. 그는 이날 “난 전쟁의 한 가운데서 청춘을 보냈고, 베이징에서 종전을 맞았다. 돌아와 보니 도쿠시마의 고향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그때까지의 교육은 이 전쟁은 천황 폐하를 위한 것, 일본의 장래를 위한 것, 동양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좋은 전쟁이란 없다. 모두가 살인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이것(전쟁)은 인간의 가장 나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이끌어가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 대해 “최근 상황을 보고 있으면 전쟁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런 마음을 다른 이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전해, 젊은이들의 미래가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일본 사회가) 나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토우치는 2차대전 때 공습으로 할아버지와 모친을 잃은 개인적인 아픔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 때문에 이제 일본 사회에 얼마 남지 않은 ‘전전(戰前) 세대’(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반전과 평화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1991년 걸프전쟁이 터졌을 땐 ‘전쟁 중단’을 기원하는 단식을 했고, 이후 이라크를 방문해 약품과 우유 등의 구호물자를 전달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 땐 반전을 호소하는 신문 광고도 냈다.

<아사히신문>은 19일 세토우치가 “이대로라면 아이들과 손자들이 전쟁에 끌려가고 만다”며 이틀 전 집회 참석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척추를 다친데다 담낭암이 겹쳐 교토에서 요양 중이었다.

세토우치는 집회가 끝난 다음에도 주변에 몰려든 기자들에게 전쟁 위험을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현재 일본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바로 뒤에 군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아베 총리는 헌법 9조를 망가뜨리고, 일본을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최후의 힘을 다해 반대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