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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의 '돈스쿨' 논란과 사법시험 존폐론/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24. 21:13

사회사회일반

로스쿨 ‘돈스쿨’ 논란에 사법시험 존폐론 가열

등록 :2015-06-23 22:27수정 :2015-06-24 15:12

 

지난 1월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44기 수료식에서 수료생들이 법조인 선서를 하고 있다.  고양/뉴시스
지난 1월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제44기 수료식에서 수료생들이 법조인 선서를 하고 있다. 고양/뉴시스
로스쿨 도입 7년
③ 혼돈의 법조인 시장
도입된 지 7년째를 맞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순기능을 하는지를 놓고는 회의적 평가가 만만찮다. 비싼 학비 탓에 ‘돈스쿨’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다 임관이나 취업 관련해서도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 사법시험(사시)에 대한 향수가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2017년 2차 시험을 마지막으로 폐지가 예정돼 있는 사법시험의 존치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존치론
“로스쿨 고비용 구조 계층이동 막아”
“빈부·배경 등 관계없이 법조인 가능”

폐지론
“사시도 이미 고액 사교육에 물들어”
“대박 꿈이 대학 황폐화시켜”

서민층 장학금·명문대 집중 해소 등
로스쿨이 해법 제시해야

■ “계층 이동 사다리는 사법시험”

사시 존치론자들은 로스쿨의 ‘고비용 구조’가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 사다리를 아예 없애버렸다고 주장한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대토론회’에서 국민대 이호선 교수(법학)는 “로스쿨은 고가의 등록금이 책정된 대학원이라는 제도상 한계가 있어 계층 간 이동을 막고 사회(계층)의 폐쇄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로스쿨들의 재정난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며 “사시가 폐지되면 로스쿨들이 등록금을 올리거나 장학금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시의 ‘공정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변협은 지난달 28일 성명에서 “사시는 56년간 시행되면서 단 한 차례도 공정성 시비가 발생하지 않은 공정 경쟁의 상징이며, 누구나 노력하면 빈부·배경·나이·학력과 무관하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힘을 보태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사시 존치 관련 법안 5건이 계류돼 있다. 하지만 노철래·김학용·오신환 의원 등 새누리당에서 주도하는 이들 법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주요 대학과 소속 교수들이 망라된 로스쿨 진영의 강력한 반발을 감수해야 해 그 자체로 부담이 크고, 2016~2017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에 밀려 뒷전에 놓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사법시험도 고비용 사교육에 기대”

사시 존치론자들의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는 반론도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울 신림동 고시촌을 중심으로 대형 학원과 독서실, 식당, 숙소까지 연계된 맞춤형 사교육 서비스가 등장해 사시도 고비용 구조로 바뀐 지 오래라는 것이다.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친 한 법조인은 “고도의 사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아 단기간에 고득점으로 사시에 합격하는 시스템이 2000년대 들어 완성됐다”며 “2005~2006년 이후로는 ‘강남 출신-특목고 졸업-어린 여학생’들이 연수원 안에서도 단연 두각을 드러냈다”고 했다.

최근 서울대 이재협·이준웅·황현정 연구팀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논문에서 2008년 이후 로스쿨과 사시 출신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차이가 크지 않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로스쿨들의 연합체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최근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시 존치론’에 적극 대응키로 했다. 이들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국회, 변호사단체, 언론사 등 사회 일각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허울뿐인 계층 사다리를 내세워 사시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며 “고작 2.94%만이 합격하는 사시에 소위 ‘대박’을 꿈꾸며 도전하는 일은 대학 교육을 황폐화시켰으며, 불합격자 65만명은 사시 낭인으로 전락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로스쿨(1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시 출신 변호사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서 로스쿨 출신들을 ‘로퀴벌레’라고 부르고 있다”며 “1등 변호사인 사시 출신과 2등 변호사인 로스쿨 출신을 구분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의도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법조계 내부 분란으로도 이어져

양쪽 진영의 분란은 법조계 내부도 갈라놓고 있다. 지난 1월 변협 회장으로 선출된 하창우 변호사는 ‘전관예우 철폐’와 더불어 ‘사시 존치’를 내세워 당선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유력 후보가 ‘로스쿨 보완론’을 펼치며 양쪽 진영을 감싸안으려는 태도를 보인 반면, 하 회장은 머릿수에서 열세인 로스쿨 출신들과 선을 긋고 가장 두터운 표밭인 사시 출신 변호사들을 공략하는 전략으로 변협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 한 변호사는 “사시 출신 젊은 변호사들의 지지를 받던 변호사가 막판에 하 후보를 지지했는데, 그 변호사가 동원한 표만큼 차이로 하 후보가 당선됐다는 게 정설”이라고 말했다.

하 회장은 당선 뒤 반로스쿨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 회장이 ‘사시 존치’ 성명을 내자, 로스쿨 출신 변협 대의원 100여명이 지난 17일 변협 집행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해 변협 내부 분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법조계 내부 갈등이 타협 불가능한 지경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결국 해법은 법조인 양성을 독점하게 되는 로스쿨이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인권법)는 “최하위 소득층이 아닌 서민층은 장학금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로스쿨 합격자들의 명문대 집중 현상 역시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인 것은 분명하다”며 “이런 현상은 애초 제도 도입 취지와 역행하는 모습인 만큼 로스쿨이 앞장서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쿨 스스로 사시와 차별성을 보이지 못한다면 사시 존치론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끝>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