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이 빚어내는 ‘죽음’은 단지 비유적 수사에 머물지 않는다. 꽃다운 아들딸들을 차가운 바닷속에 수장한 슬픔과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역병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이 이어진다. 경기가 죽고, 관광 산업이 죽고, 시장이 죽고, 국가 경제가 죽어간다. 사회의 활력이 죽고, 믿음이 죽고, 낙관과 희망도 함께 시들어간다. 지도자의 무능은 그래서 독약이다.
“무능의 문제점은 본인이 그것을 인식할 능력이 없다는 데 있다.”(오린 우드워드) “가장 위험한 역설은, 자신의 무능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다는 사실이다.”(아미트 칼란트리) 무능에 대한 이런 통렬한 경구들을 박근혜 대통령만큼 충실히 ‘실천’하는 예가 또 있을까. 무능의 반대편에 있는 ‘유능’의 개념을 ‘업무에 대한 이론적·실무적 지식, 인지 기능, 행동, 가치의 조합’이라고 정의할 때, 대통령 무능의 배경과 원인은 더욱 확연해진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문제에 관한 한 박 대통령은 별다른 현장 경험이나 이론의 축적 없이 그 자리에 올랐다. 세월호 참사 때의 ‘7시간 잠적 미스터리’나 메르스 사태 초기의 ‘스스로 격리조처’에서 확인되듯이 상황 인지 능력이나 반응 속도, 행동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자신이 무능하다고는 눈곱만큼도 여기지 않는다. 오직 삼성병원을 질책하고, 언론에 화를 내고, ‘괴담’을 때려잡으라고 다그치기 바쁘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지도자에게는 자화자찬이라는 또 다른 병통도 있다. 미국 코넬대의 데이비드 더닝, 저스틴 크루거 교수가 1999년에 발표한 ‘능력 없는 사람들의 특징’, 이른바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의 첫번째 항목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 이론의 훌륭한 입증 사례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그 이론마저 뛰어넘는다. 무능력자의 네번째 특징은 ‘훈련을 통해 능력이 나아지고 난 뒤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인정한다’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통령은 앞선 사건에서 교훈을 얻는 법도 없고, 훈련도 되지 않고, 나아지지도 않는다.
무능의 그늘 아래서 무성하게 피어나는 것은 아첨의 꽃이다. 박 대통령의 서울 동대문시장 방문을 전하는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보도자료를 보라. 언론에서 잔뼈가 굵은 홍보수석과 대변인이라는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에서 “대통령 대박!” 등의 낯뜨거운 홍보가 국민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그런 닭살 돋는 글을 버젓이 내놓는 이유는 뭘까. “각하! 모든 국민은 변함없이 각하를 사랑하고 있으니 걱정 놓으십시오!” “저희들은 각하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대통령 홍보’가 아니라 ‘대통령을 향한 자신들의 홍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각종 엉터리 관광 대책도 단순한 탁상행정의 결과물이 아니다. 장차관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책의 실질적인 효과가 아니라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고 열심히 일하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일이다. 무능과 아첨의 상호 화학작용 속에 치명적 칵테일의 독성은 더욱 높아져만 간다.
김종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