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갈음이해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여행
버스 안내양이 관광지 해설해주는 충남 태안읍~만대항 이원반도 버스 여행
버스 안내양이 관광지 해설해주는 충남 태안읍~만대항 이원반도 버스 여행
완행버스 전국여행
태안읍~만대항, 태안읍~신진도 충남 태안군 태안읍 버스터미널. 시내버스(농어촌버스) 승차장 앞 의자에 단정한 옷차림의 30~40대 여성 셋이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다. 파란색 상의에 검은 바지, 팔엔 토시를 끼고 목에 이름표 목걸이를 걸었다. “만대항이요? 저쪽 두번째 버스요. 어서 타세요. 놓치면 두시간 기다려야 하니까.” 차에 오르고 잠시 뒤, 여성 하나가 따라 오르더니 버스 뒷문 옆에 선다. 문 옆의 지주형 손잡이를 한 팔로 감고, 다리를 적당한 간격으로 벌려 야무지게 버텨 선 안정된 자세. 태안군 농어촌버스 ‘특급 도우미’, 버스 안내양이다. 이번 완행버스 여행은 버스 안내양이 이끌어준다. 친절하고, 지리와 여행지에 밝으며, 힘도 센데다, 어르신들 비위도 잘 맞추는 주부 안내양들이다. 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되풀이하던 지난주, 1박2일 일정으로 태안읍~만대항 노선과 태안읍~신진도 노선을 탔다. 603번 지방도다.
학생 반 어르신 반, 안부인사 나누며 느린 여행
30㎞ 거리에 1시간 걸리는 태안읍~만대항의 이원반도 버스 노선. 총 정류소 60개에 전체구간 요금 3700원이었다. 7월1일부터는 새 요금제가 적용되어 15㎞ 이하 거리는 1300원, 이상은 1500원으로 통일됐다. 마을마다 정류소가 있지만 내리고 탈 사람이 없으면 통과한다.
“재잘재잘, 안녕하세요.” “어서들 와라.” 여중생들이 버스에 오르며 안내양에게 인사한다. 상점들이 모여 있는 구터미널 정류소에선 보따리를 두세개씩 든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올라오신다. “손잡이 꼭 잡고 한분씩 올라오세요.” 안내양은 어르신 팔을 잡아드리고, 무거운 짐은 받아 의자 옆까지 날라준다.
“이게 일인걸요. 엄마·아버지 같은 어르신 돕는 보람이 크죠.” 1년6개월째 안내양 일을 하고 있는 김선(36)씨는 어르신들과 스스럼없이 농담도 나눈다. “아이고 엄마, 오늘은 뭔 일루다 이렇게 많이 사셨대유?” 두 아이를 둔 주부 김씨는 할머니들을 엄마라고 부르고, 어르신들은 그런 김씨를 좋아한다. “아유, 짐 들어주지, 부축해주지, 얘기도 잘 해주지, 참 잘해요.”
“손잡이 꼭 잡고 한분씩 올라오세요”
안내양은 어르신 팔 잡아드리고
무거운 짐은 받아
의자 옆까지 날라준다
대학생 여행자들
생전 처음 보는 버스안내양 신기해 솔바람 부는 해안 따라 구비구비 솔향기길 신두리해안으로 과 엠티 참가하러 가는 여대생 둘(세종시)과 할머니 몇 분을 원북면 소재지에서 내려주고, ‘박속낙지탕’을 내는 식당이 많은 이원면 소재지 지나 농촌체험마을로 이름난 관리 볏가리마을을 지나자 차 안은 다소 한적해졌다. 어르신들 말소리가 들려온다. “고구마 심궜수?” “아이고, 다 말랐시유. 클났네.” “인제 비 오니께 걱정 마유. 뿌리만 살아 있으면 되니께.” 빗방울 흩뿌리는 차창 밖으로 촉촉하게 젖은 감자밭·고구마밭·콩밭 들이 지나간다.
이원반도는 태안반도에서 북으로 뻗은 가늘고 긴 반도다. 왼쪽은 해수욕장·절벽해안이 이어지는 태안해안국립공원 지역이고, 오른쪽은 갯벌과 염전이 깔린 가로림만이다. 꾸지나무골해변은 돌아나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잠시 더 달려 내2리(목로골)에서 버스를 내렸다. 용이 승천했다는 용난굴 보고 솔향기길 1구간을 걷기 위해서다. 정류소에서 펜션단지 지나 용난굴까지는 걸어서 10여분 거리. 바닷가 절벽 밑에 뚫린 용난굴은 깊지는 않지만, 서늘한 기운 쐬며 땀을 식힐 만하다.
이원반도 서쪽 해안을 따라 조성된 솔향기길 1구간은 총 5개 구간 중 해안 경치가 가장 돋보이고 소나무숲이 울창한 아기자기한 해안길이다. 꾸지나무골해변에서 용난굴 거쳐 만대항까지 약 10㎞, 용난굴에서 만대항까지는 약 6㎞다. 여섬전망대, 가마봉, 당봉전망대 등에서 바라보는 해안 경치도 볼만하지만, 소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향기롭다. 하지만 여섬전망대 부근 일부 소나무숲이 불에 탄 모습이고, 일부 구간에선 소나무들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어 안타깝게 한다.
이 해안은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일어난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건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 솔향기길 1구간은 당시 주민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해안의 기름 제거 작업을 위해 오르내리던 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해안 탐방로다. 해안의 돌 하나하나가 이들의 손으로 닦인 것들이다.
솔향기길 걷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만대항에 있는 횟집 세곳이 모두 ‘솔향기길 픽업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당에서 식사하면, 어디서든 태워오고 태워다준다. 시원한 물회 한그릇을 비운 뒤, 버스 도착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식당 제공 차를 이용해 꾸지나무골해변으로 갔다. 꾸지나무골해변은, 소나무숲이 있는 북쪽은 모래해변이고, 오토캠핑장과 독살(돌로 쌓아 만든 전통그물) 체험장을 낀 남쪽은 바위해변이다. 돌밭해변에서 소라·게 따위를 잡는 아이들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캠핑장에서 15분쯤 걸어나가 내3리 정류소에서 만대항에서 나오는 막차(7시45분)를 타고 태안읍으로 향했다. 하루 7회 운행 중 첫차·둘째차와 막차엔 안내양이 타지 않는다.
신진도 종점에서 유람선 갈아타고 섬 탐방
이튿날 아침엔 태안읍 터미널에서 근흥면 신진도행 버스를 탔다. 신진도(마도 종점·버스로 30분 거리)행은 하루 19회, 30~4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데, 이 중에서도 채석포·연포해변을 거쳐 신진도까지 4차례 운행하는 버스에만 안내양이 탄다. 오전 9시50분 차가 안내양이 타는 첫차다.
10년 경력의 베테랑 안내양 정화숙(48)씨는, 태안여객 안내양 중 ‘정년’을 1년 남긴 최고참이다. 어떤 어르신이 어디에서 타고 내리는지 대충 꿰고 있을 정도다. “기사님, 뒷문 열어주세요.” 할머니·할아버지들 자리를 봐뒀다가, 내릴 때 가까운 문을 열어드린다.
대학생 한쌍이 연포해수욕장에서 탔다. “시험 끝나고 여친이랑 바람 쐬러 왔어요. 자가용이 없으니 버스·기차 여행을 많이 하죠. 안내양 있는 버스는 첨 타봐요.” 둘은 정류소 알려주고, 차비 받고, 어르신들 부축해드리는 안내양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고 했다.
이 노선엔 해수욕장이 두곳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연포해수욕장과, 한적하고 아담해 가족 피서객이 많이 찾는 갈음이해수욕장이다. 연포해변은 정류소에서 가깝고, 갈음이는 603번 도로에서 20분쯤 걸어야 한다. 갈음이를 드나드는 버스가 있지만 하루 3차례뿐이다.
안흥 성안 정류소에서 내려, 도로변 육모정 앞에 모아놓은 선정비·불망비들과 17세기에 쌓은 석성인 안흥성(안흥진성), 백제 때 창건됐다는 절 태국사를 둘러본다. 안흥성은 서문인 수홍루와 성곽 일부가 복원돼 있다. 태국사에 볼거리는 없으나, 절 앞 언덕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옛 포구인 안흥항은 내항, 새로 개발된 신진도항은 외항(신항)으로 불린다. 신진도의 안흥외항은 충남 서해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어항이자, 바다낚시로 이름난 항구다.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섬들을 둘러보는 유람선도 있다. 1시간·1시간30분짜리 코스와 등대섬 옹도 코스를 정해진 시간 없이, 사람이 모이면 운항한다. 1시간을 기다려 1시간30분 코스를 탔다. 1만5000원. 원추리 군락지 목개도, 가마우지 서식지 정족도, 유인도인 가의도에 딸린 독립문바위, 그리고 사자바위·코바위·여자바위 등 선장의 구수한 설명을 들으며 어른들이 유람하는 동안, 아이들은 줄기차게 따라오는 갈매기들을 향해 과자를 던져 먹이는 재미에 빠져든다.
식당·모텔이 몰린 신진도항은 차량들이 몰려 매우 혼잡하다. 유람선을 타거나 식사를 하려면 신진도 마도입구 정류소에서 내리면 된다. 유람선 선착장까지 3~4분 거리.
태안/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태안읍~만대항, 태안읍~신진도 충남 태안군 태안읍 버스터미널. 시내버스(농어촌버스) 승차장 앞 의자에 단정한 옷차림의 30~40대 여성 셋이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다. 파란색 상의에 검은 바지, 팔엔 토시를 끼고 목에 이름표 목걸이를 걸었다. “만대항이요? 저쪽 두번째 버스요. 어서 타세요. 놓치면 두시간 기다려야 하니까.” 차에 오르고 잠시 뒤, 여성 하나가 따라 오르더니 버스 뒷문 옆에 선다. 문 옆의 지주형 손잡이를 한 팔로 감고, 다리를 적당한 간격으로 벌려 야무지게 버텨 선 안정된 자세. 태안군 농어촌버스 ‘특급 도우미’, 버스 안내양이다. 이번 완행버스 여행은 버스 안내양이 이끌어준다. 친절하고, 지리와 여행지에 밝으며, 힘도 센데다, 어르신들 비위도 잘 맞추는 주부 안내양들이다. 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되풀이하던 지난주, 1박2일 일정으로 태안읍~만대항 노선과 태안읍~신진도 노선을 탔다. 603번 지방도다.
태안여객 버스기사 강봉규(53)씨와 안내양 김선(36)씨.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안내양은 어르신 팔 잡아드리고
무거운 짐은 받아
의자 옆까지 날라준다
대학생 여행자들
생전 처음 보는 버스안내양 신기해 솔바람 부는 해안 따라 구비구비 솔향기길 신두리해안으로 과 엠티 참가하러 가는 여대생 둘(세종시)과 할머니 몇 분을 원북면 소재지에서 내려주고, ‘박속낙지탕’을 내는 식당이 많은 이원면 소재지 지나 농촌체험마을로 이름난 관리 볏가리마을을 지나자 차 안은 다소 한적해졌다. 어르신들 말소리가 들려온다. “고구마 심궜수?” “아이고, 다 말랐시유. 클났네.” “인제 비 오니께 걱정 마유. 뿌리만 살아 있으면 되니께.” 빗방울 흩뿌리는 차창 밖으로 촉촉하게 젖은 감자밭·고구마밭·콩밭 들이 지나간다.
꾸지나무골해수욕장 남쪽의 자갈밭해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태안읍~만대항 버스의 주고객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이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안흥 태국사 앞에서 바라본 해넘이.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신진도에서 유람선을 타고 둘러볼 수 있는 독립문바위.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완행버스 여행 정보
대중교통 서울 남부터미널, 강남터미널, 동부터미널에서 태안읍까지 하루 총 35회 고속버스가 운행된다. 일반고속은 9000원, 우등고속(강남)은 1만3200원. 강남 직통은 2시간 소요, 동서울 직통은 2시간30분 소요, 남부터미널의 서산 또는 당진 경유 노선은 3시간 소요.
먹을 곳 이원면 만대항에 제철 해산물을 내는 ‘어촌계횟집’ ‘만대수산’ ‘운영수산’ 등 대형 횟집이 세곳 있다. 물회(1만3000원)·회덮밥(1만원)은 1인분도 가능. 원북면·이원면 소재지엔 박속낙지탕을 전문으로 내는 식당이 많다. 신진도 안흥외항엔 생선회와 구이·꽃게장 등을 내는 횟집·식당들이 즐비하다. 멍게솥밥·홍합솥밥·꽁치조림을 내는 ‘행복한아침’ 등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많다. 근흥면 용신삼거리 부근 근흥생고기촌은 소머리해장국·바지락칼국수 등을 낸다. 태안읍내엔 ‘바다꽃게장횟집’ 등 꽃게장정식과 우럭젓국·게국지백반(사진) 등 토속음식을 차려내는 식당이 많다.
묵을 곳 이원반도 일대와 각 해변 주변에 펜션들과 민박집이 많지만 다소 비싼 편. 펜션은 15만~20만원대, 민박도 해변 옆은 7만원부터 부른다. 태안읍 버스터미널 부근에 모텔이 몇곳 있고, 신진도 안흥외항에도 모텔과 관광호텔이 모여 있다.
태안군 농어촌버스 안내양 제도 태안군은 최근 일부 지자체들로 확산되고 있는 ‘버스 안내양 제도’를 10년 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관광객에게 관광지 안내를 해주고, 연로한 지역 주민의 승하차를 돕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현재는 관광 안내보다는 농어촌 주민의 안전한 이동을 돕는 구실을 한다. 태안군 관내 농어촌 버스 10여개 노선 중 만대항, 신진도, 만리포, 안면도 방면 4개 노선에서 안내양이 함께 타는 버스를 운행한다. 태안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노선들이다. 안내양 3명이 각 코스를 6개월씩 번갈아 탄다. 안내양이 각 노선의 모든 운행회차 버스에 타는 건 아니다. 만대항 노선의 경우 하루 7회 중 4회, 신진도 노선은 19회 중 4회(채석포·연포)만 안내양이 탄다. 휴일엔 쉬고, 토요일엔 2회만 탑승한다. 이들 노선 버스 옆면에는 ‘오라이, 추억으로 가는 포구여행’이란 글씨가 안내양 그림과 함께 붙어 있다.
여행 문의 태안군청 문화관광과 (041)670-2414, 국립공원관리공단 태안해안사무소 (041)672-9737, 태안시외버스터미널 (041)674-7202, 태안여객(농어촌버스 문의) (041)675-6674.
게국지백반.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