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우주를 지배하는 암흑물질이라는 유령/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7. 18. 12:23

과학과학일반

우주는 유령이 지배한다, 암흑물질이라는 유령이…

등록 :2015-07-17 19:19수정 :2015-07-18 11:57

 

우리 은하에서 17만광년가량 떨어진 왜소은하인 ‘대마젤란은하’. 2013년 1월24일 허블망원경이 촬영했다. 이런 왜소은하 중엔 별 대신 ‘암흑물질’로 내부가 꽉 차 있는 은하들이 있다.  나사(NASA) 제공
우리 은하에서 17만광년가량 떨어진 왜소은하인 ‘대마젤란은하’. 2013년 1월24일 허블망원경이 촬영했다. 이런 왜소은하 중엔 별 대신 ‘암흑물질’로 내부가 꽉 차 있는 은하들이 있다. 나사(NASA) 제공
[토요판]
은하계의 어떤 미스터리
▶ 우주의 시공은 끝없이 광활합니다. 광활한 우주를 지배하는 물질은 인류가 지금까지 접한 어떤 것과도 다릅니다. 다른 물질과는 섞이지도, 반응하지도 않고 빛도 그냥 통과합니다. 단지 중력만 있는 이 물질을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이라 부릅니다.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할 때도 등장하는 이 물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우주는 보이지 않는 유령이 지배하는 걸까요?

지금 당신 옆에 어떤 존재가 다가와 있다고 해보자. 전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명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옷이나 머리카락이 그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려봐도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를 하나 알고 있다. 유령이다. 하지만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므로 유령은 답이 아니다. 놀랍게도 답은 우주에 있으며, 유령과 달리 과학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 은하를 예로 들어보자. 빛의 속도로 10만년을 달려야 끝에서 끝에 다다를 수 있는, 납작하고 둥근 계란 프라이 형태를 하고 있다. 가운데에는 비교적 도톰한, 계란 프라이로 치면 노른자에 해당하는 부분도 있다. 우리 은하는 태양을 비롯한 1000억개 이상의 별과 거기에 딸린 행성, 위성, 기타 소천체와 가스로 이뤄져 있다. 가장 가까운 은하는 빛의 속도로 250만년 가야 도달하는 안드로메다은하이며, 두 은하는 서로를 향해 맹렬히 다가가 약 40억년 뒤에는 충돌할 예정이다. 여기까지가 잘 알려진 은하의 모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초밀집 왜소은하’

그런데 우리 은하의 모습이 최근 많이 변하고 있다. 우선, 주변에 보이지 않는 ‘유령’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래 은하 주변에는 크기가 작은 은하인 왜소은하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천체사진가들의 단골 촬영 대상인 대마젤란은하와 소마젤란은하다. 우리 은하 주위에는 이런 왜소은하가 20~30개 있다. 그런데 이런 왜소은하 중에, 마치 유령처럼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은하가 있다. ‘초밀집 왜소은하’(ultracompact dwarf galaxy)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부분 크기가 우리 은하의 1만분의 1 이하로 아주 작고 어둡다. 흥미로운 것은 성분인데, 별이 별로 없는 대신 관측이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물질로 내부가 꽉 차 있다.

이 물질은 인류가 지금까지 지구와 우주에서 접해온 어떤 물질과도 성질이 다르다. 물질과는 섞이지 않고, 만나도 소 닭 보듯 스쳐 지나간다. 둘 사이에는 어떤 ‘케미’(화학반응)도 없다. 보이지도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 미지의 물질에 은유적으로 ‘암흑물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실 암흑물질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암흑이라는 말은 어둡거나 검다는 뜻이다. 어둡거나 검은 물질은 대부분 빛을 잔뜩 흡수한다. 빛을 반사하지 않으니 어둡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밀집된 왜소은하를 메우고 있는 미지의 물질은 이런 성질이 없다. 흡수나 반사는커녕 마치 투명인간처럼(혹은 유령처럼) 빛을 그냥 통과시킨다. 한마디로, 빛을 완전히 무시한다(중력에 의한 효과로 빛이 휘긴 하지만 그건 물질과 빛 사이의 반응이 아니므로 논외로 하자).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아는 우주의 어떤 물질과 만나도 거의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우리 주위에 암흑물질이 있어도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스르륵 통과해 지나쳐 버릴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암흑물질이 우리 몸을 통과해 유유히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령처럼.

우리의 머리로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이 미지의 물질에 놀랐다면, 놀라움의 규모를 좀더 키워보자. 암흑물질은 은하의 뒤꼍이나 조그마한 ‘미니’ 은하의 그늘에 숨어 있는 미약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거대한 은하의 주인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우리 은하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성분 역시 우리가 볼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 암흑물질이다. 별, 가스 등을 다 합친 것보다 대략 10배 정도 많은 암흑물질이 우리 은하를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초밀집 왜소은하는 이 비율이 대략 100배 이상으로 월등히 높다). 이 암흑물질 덩어리를 ‘암흑물질 헤일로’라고 부르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은하 속 별과 가스는 그 속에 콕 박힌, 마치 단팥빵에 든 단팥 같은 존재다. 우리는 지금까지 단팥 부분만 보고 그게 빵(은하)의 전체인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단팥빵 모양의 은하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천체물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먼저 우주에 거대한 암흑물질 덩어리가 모였다. 암흑물질은 중력이 강하기 때문에 서로 잘 뭉친다. 일단 뭉치고 나면 중력은 더 강해지고, 별과 가스 등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물질이 그곳으로 모인다. 이것은 움푹 파인 땅에 빗물이 흘러들어와 고이는 현상에 비유할 수 있다. 강한 중력을 내는 암흑물질이 몰려 있으니 우주에 일종의 ‘중력의 구덩이’가 만들어졌고, 거기로 물질이 흘러들어와 고인 것이다.

우리 은하 주변엔 ‘유령’이 여럿
유령은 물질과 반응 않는 암흑
보이지도, 섞이지도 않는다
암흑물질 모여 만든 구덩이로
별 같은 물질 모여 우주를 형성

암흑물질은 존재 자체가 가설
도입 안해도 된다는 이도 있지만
많은 관측·이론이 지지한다
암흑물질은 물질의 5배 이상
보이지 않는 세상, 존재할까?

그러나 아직 정체를 모른다고?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1928~). 은하의 회전 속도에 관한 연구로 ‘암흑물질’의 이론적 바탕을 만들었다. 카네기연구소 제공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1928~). 은하의 회전 속도에 관한 연구로 ‘암흑물질’의 이론적 바탕을 만들었다. 카네기연구소 제공
이쯤 되면 암흑물질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 그 정체를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존재 자체도 아직은 가설이다. 암흑물질은 1960~70년대에,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의 연구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루빈은 은하의 회전 속도를 계산하고 관측했는데, 이론과 실제 사이에 차이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론대로라면 은하 중심에서 먼 곳은 중력이 약하므로 회전 속도가 느려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두 결과가 일치하려면 은하에 중력을 강하게 만드는 물질이 많이 숨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제안된 게 암흑물질이다. 관측되지 않았다는 게 이 가설의 가장 큰 약점인데, 행인지 불행인지 이 물질의 가장 대표적인 특성이 바로 빛이나 물질과 반응하지 않고 따라서 관측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설명하기 위해 미지의 존재를 도입한다. 그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요약하면 이런데, 어딘가 익숙하다. 일상에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일어났을 때 ‘유령이 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암흑물질을 도입하는 과정이 그리 허무맹랑한 일은 전혀 아니었지만, 굳이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학자가 있긴 하다. 이들은 암흑물질이 없어도 은하의 회전 속도 등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은하 규모의 먼 우주에서는 태양계 내에서와 중력이 아주 다르게 작용한다는 가설이 있다. 뉴턴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중력(자유낙하 등)과 태양계 천체의 움직임을 일으키는 중력은 근본적으로 같은 힘이다. 이른바 ‘만유인력’이다. 하지만 만약, 그보다 훨씬 먼 은하 규모에서는 뉴턴역학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뉴턴역학을 통해 계산한 은하의 회전 속도와 실제 속도가 다른 게 당연해진다. 학자들은 뉴턴역학을 수정했고, 이를 ‘수정뉴턴역학’이라고 불렀다. 이런 과학자들이라면 암흑물질에 대해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흑물질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선 수많은 천체물리학의 관측 결과와 이론이 암흑물질의 존재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도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세워졌다. 입자물리학도 암흑물질을 위한 빈자리를 만들어 놓고 열심히 그 후보 입자를 제안하고 있다. 2012년에 힉스 입자의 존재를 관측하면서 인류가 만든 가장 정교한 이론이라는 표준모형이 완성됐다. 당시 연구를 주도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롤프디터 호이어 전 소장을 인터뷰했는데, 이야기의 절반은 새로운 업적인 힉스 입자 관측에 대한 것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암흑물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미 힉스 입자 다음으로 암흑물질을 지목하고 연구를 시작했던 것이다.

우주 팽창시키는 암흑에너지

이제 규모를 더 키워보자. 우주 전체다. 암흑물질은 은하의 지배자일 뿐만 아니라 우주의 지배자다. 각종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현재 우리 우주에는 물질보다 암흑물질이 5배 이상 많다. 그럼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는 전체 우주의 약 6분의 1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암흑물질보다 다시 두세배 많은 양의 미지의 에너지가 우주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 에너지에도 은유적인 이름을 붙였다. ‘암흑에너지’다. 암흑물질은 강한 중력원으로 물질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데, 암흑에너지는 반대로 우주를 지속적으로 밀어 점점 빠르게 팽창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장 최근의 측정 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물질 4.9%, 암흑물질 26.8%, 그리고 암흑에너지 68.3%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이용하는 모든 물질들, 생명들, 생각, 사랑, 그리고 밤하늘을 가득 메운 무수한 별과 은하는 다 합쳐도 전체 우주의 5%도 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머지 95%의 우주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어둠보다 깊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여기까지는 현대과학이 알려주는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없고 느낄 수도, 관여할 수도 없는 미지의 물질에 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상상의 영역으로 이끈다. 혹시 미지의 물질로 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별과 은하가 존재하지는 않을까. 우리 은하와 중첩된 채 나름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암흑의 별과 은하 말이다. 그곳은 보이지 않는 빛으로 충만하고, 그들만의 화학규칙에 따라 몸을 이룬 생명체로 소란스러운 곳일지도 모른다. 우리와는 영원히 만날 수도, 포옹할 수도 없는 존재들의 세상이다. 영원한 불통과 어긋남은 서로 다른 두 물질계에 사는 우주적 존재의 속성이자 숙명일 것이다. 허황된 상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니 자못 서글퍼진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