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맛돼지’를 찾은 문정훈 교수(왼쪽)와 이은숙 편집장. 사진 박미향 기자
지글거리는 불판, 뿌연 연기, 왁자지껄한 소리, 어지럽게 흩어진 신발들, 부딪히는 소주잔….
삼겹살집 하면 흔히 떠오르는 풍경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는 달라!’를 외치면서 외식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삼겹살집들이 등장했다. 도포와 갓을 벗어던진 ‘모던 보이’의 탄생과 비견할 만하다. 최근 몇달 사이에 생겨난 이들 신개념 삼겹살집들은 공통점이 있다. 신발을 벗지 않는다. 간판이나 출입구, 메뉴판은 얄미울 정도로 고급 수제햄버거집이나 세련된 카페와 닮았다. 연기가 사라진 실내에는 감성 충만한 음악이 흐른다. 고기를 싸먹는 상추 따위는 얼씬도 못한다. ‘왜 싸먹어? 촌스럽게, 진한 고기 맛으로 충분해!’ 이들의 슬로건이다. 장기 숙성해 육향이 진한 돼지고기로 승부한다. ‘흥, 소주? 이제는 수제맥주나 칵테일이야’ 삼겹살의 친구가 달라졌다고 선언한다.
이들 카페풍 삼겹살집이 주목받은 데는 노희영 히노컨설팅펌 대표가 설계한 ‘삼거리 푸줏간’의 개업이 컸다. ‘호면당’, ‘마켓오’, ‘비비고’, ‘계절밥상’ 등을 성공시켜 외식업계의 유명인사인 그가 씨제이그룹을 떠나 스스로 ‘올인’했다고 자신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빅뱅, 지드래곤 등 와이지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의 이미지가 촉촉하게 오버랩되면서 단박에 화제가 됐다. 노희영과 와이지엔터테인먼트 대표 양현석이 손잡은, 정글 같은 홍대 상권의 삼겹살집. 서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삼거리 푸줏간과 비슷한 시기에 문 연 ‘바람맛돼지’, ‘진저피그’, ‘한남돼지’ 등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스테디셀러 외식 종목인 삼겹살집의 진화의 바람을 지난 6일, 34도까지 오른 무더위를 뚫고 음식전문지 <쿠켄>의 이은숙 편집장,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 문정훈 교수와 진단하러 떠났다. 돼지고기 불판의 온도는 평균 200도. 이열치열 투어다.
젊은 감성 맞춘 ‘삼거리 푸줏간’
카페풍·진한 고기맛의 ‘진저피그’
‘바람맛돼지’는 드라이에이징으로 승부
가족이 즐기기에도 편안한 ‘한남돼지’
삼거리 푸줏간 편백나무통에서 숙성한 충청도 암퇘지. 삼겹살과 목살 180g은 각각 1만3000원, 항정살 180g은 1만4000원이다. ‘푸줏간 한판’ 480g은 3만5000원이다. 대판은 720g으로 5만원이다. (서교동)
기자: 젊은 사람들을 잡아끄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많아 세련된 콘셉트를 지향하는 것 같네요. ‘대동강 페일 에일’ 같은 크래프트비어(수제맥주)나 소주 칵테일도 있어요.
문: 오른쪽 ‘핫도그바’와 왼쪽의 주방, 하이 체어(high chair)가 눈길을 끄네요. ‘나는 달라’ 하는데 자세히 보면 꼭 그런 것 같지 않군요. 돼지고기는 일부러 제거한 것처럼 지방이 적네요.
기자: 삼겹살은 지방 맛 아닌가요! 참살이, 다이어트층을 겨냥했나 봐요.
종업원은 구워주면서 “바삭할 정도로, 튀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혀 먹어야 맛있다”고 귀띔한다.
문: 스페인에서는 피 뚝뚝 흐르는, ‘레어’(rare), ‘미디엄 레어’(medium rare)로 돼지고기를 익혀 먹기도 해요. 우리는 바싹 익혀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죠.
이: 프랑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도 비슷한 요리가 있어요.
기자: 3~4년 전 레스토랑 ‘루이쌍끄’에서 그런 고기요리를 냈는데 손님들이 더 익혀 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없앴어요. 굽는 온도 관리 등 조리 과정의 통제가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문: 고기 자체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씹을 때 육즙이 탁 터지면서 감칠맛이 도는 것이 삼겹살의 매력인데 지방이 너무 없어서 그런지 맛이 약해요. 그동안의 성과를 생각한다면 노희영 대표 작품이라고 하기엔 아쉽군요.
기자: 씨제이그룹이나 오리온 직원들의 맨 파워, 조직 역량 등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새워 메뉴 개발하는 직원들의 노고 말이죠.
이: 동감입니다. 원래 바싹 구우면 고기의 구수한 맛이 더 증가해요. 가격도 결코 싸지는 않아요. 600g에 3만5000원 하는 곳도 많죠.
문: 개인적으로 음악이 애매하단 생각이 드네요. 식당의 음악은 중요합니다. 템포가 빠르면 손님들은 더 빨리 먹는다고 하잖아요. 저희 랩 실험의 한 예를 말씀드릴게요. 한 와인바에서 프랑스 와인 주문을 유도하기 위해서 샹송을 틀고 테이블 종이에 에펠탑, 프랑스 국기, 치즈를 그려 넣었더니 전보다 훨씬 프랑스산 와인 주문이 늘었어요. 이미지도 주문에 영향을 미칩니다.
진저피그 8일간 드라이에이징(건조숙성)한 국내산 암퇘지. 삼겹살(180g), 항정살(170g). 목살(180g)이 모두 1만3000원이다. 초벌구이 해서 나온다. (서교동)
이: 수제햄버거집인 줄 알았어요. ‘필스너 우르켈(우어크벨)’이나 ‘버니니’ 같은 젊은층이 좋아할 술이 있군요.
문: 향이 좋습니다. 드라이에이징을 한 돼지고기라는 점이 독특하군요.
이: 고기향이 강하지만 조금 느끼해요.
문: 지방이 끈적거린다고 할까! 좀 느끼합니다. 자연스럽게 김치와 먹게 되네요.
이: 드라이에이징의 특징 아닐까요. 드라이에이징을 하면 고기는 육향이 강해지고 농축미가 올라갑니다. 두꺼워서 더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자: 느끼한 맛은 삼겹살의 미덕 아닌가요!(웃음) 삼겹살 첫맛은 지방 맛이 확 돌아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항정살은 그다지 호감이 안 가요.
문: 음악이 홍대상권의 분위기와 잘 맞고 실내가 전반적으로 밝아 좋네요. 반찬바를 둬서 비용 절감을 하고 있군요. 실리콘 젓가락 재밌습니다.
기자: 김치는 돼지고기 불판에 굽다 보면 돼지기름이 배서 맛있잖아요. 여기 김치는 그냥 반찬처럼 아삭한 것을 올려놓기만 했네요.
바람맛돼지 30~60일간 드라이에이징한 돼지고기. 서동한우 세컨드 브랜드. ‘300’(삼겹살, 목살, 특수부위 등 모둠)이 2만2000원이다. 100g당 7300원인 셈. ‘600’은 3만9000원. 100g당 6500원인 셈. ‘통립’ 9000원, ‘생립’은 1만4000원. (상암동)
이: 주방과 이어지는 가운데 통로가 양쪽 식탁의 손님을 모두 서비스할 수 있게 되어 편리하군요. 두 명만 서빙을 하는데 불편함을 못 느끼겠어요.
문: 독상처럼 나오는 종지 등은 좋은데 의자는 좀 불편합니다.
기자: 맥주 애호가들에게 인기있는 ‘플래티넘 크래프트 비어’가 있군요.
문: 두께가 다 얇아요.
사장 고광혁씨는 “드라이에이징을 하면 육즙이 많이 안 빠진다”며 “두께가 얇아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기자: 진저피그와 같은 건조숙성인데 기간과 두께가 달라 두 집의 맛의 차이가 나는군요. 소리가 울리고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어요.
이: 진저피그보다 숙성기간이 기니 두께는 얇아야 할 거 같아요. 쫄깃한 돼지고기 식감 마음에 듭니다. 토마토고추장무침도 호감이 가요.
문: ‘돼지고기 쫄깃함의 극단’을 보여주네요. 우리는 차진 맛을 좋아하죠. 찰토마토, 찰옥수수가 맛있다고 하잖아요. 나이가 많은 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거 같군요.
기자: 간판과 외관이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삼겹살집인지 모르겠어요. 카페 같아요.
한남돼지 2주간 숙성한 목살, 숙성 오겹살, 갈매기살, 가브리살, 항정살, 오소리감투 각각 150g의 가격은 1만7000~1만9000원. (한남동)
기자: 진한 맛의 에일류 맥주와 와인까지 있군요. 상추가 있긴 한데 구색 갖추기로 양이 너무 적어요. 초창기 유명인 마케팅을 잘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 칼집을 낸 점이나 두께 등 시각적인 면이 돋보이는군요.
문: 실내가 모두 방이란 점, 손님 중에 동네 주민도 섞여 있는 점, 파무침 등이 달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군요. 우리 외식업체들 전반적으로 좀 달잖아요. 이탈리아 등만 봐도 디저트 빼고는 그리 달지 않아요. 자녀들과 가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총평>
문: 다양한 맛의 삼겹살집이 생겨나는 것은 외식시장에 긍정적입니다. 비슷한 제품들(삼겹살)이 한 시장에서 경쟁하면 소비자는 저렴한 것을 선택합니다. 기업은 품질보다는 가격을 내리거나 영업에만 집중합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안게 되죠. 다양한 품종은 사라지고 대량생산 가능한 품종만 남아요. 지금의 변화는 축산농가의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어요.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소비감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 맛은 바람맛돼지, 인테리어는 진저피그가 좋아요. 삼거리 푸줏간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속담이 떠올라요. 한남돼지는 최근 몇년 사이 많이 회자되는 먹자골목인 한남오거리에서 틈새를 노려 성공한 케이스 같군요.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