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우 ‘bigh3’ 유전자 이상으로 인한 아벨리노 이영양증(제2형 과립형 각막이상증) 환자가 870명 중 1명꼴로, 약 6만명 정도다. 이들 중 유전자가 하나만 고장난 경우 각막 속의 과립이 쌓이는 속도가 느려서 별다른 자각 증상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하는데, 각막을 깎는 라식·라섹 수술을 받다가는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한 안과병원의 라식수술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하리하라 눈을 보다
(23) 안과 검진을 받으며
(23) 안과 검진을 받으며
눈에 액체가 떨어졌다. 안과 검진 전, 검사의 편의와 검사 대상의 편안함을 위해 산동제와 마취제가 든 안약을 눈에 넣는 것이었다. 톡.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액체가 눈에 떨어지는 느낌. 눈에 뭔가를 넣는다는 것은 그게 비록 액체 한 방울일지라도 그리 심상하지 않다. 아프지도 않고 무서운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눈꺼풀을 움찔하며 몸서리를 치게 되니까. 가능한 한 눈을 크게 뜨고 턱과 이마를 고정한 채 기계에 눈을 댄다. 기계에 각막이 눌리는 느낌이 묘하다. 검진을 받는다는 것은 증상의 유무와 상관없이 늘 긴장감을 내포한다. 혹시나 내 몸 어딘가 몸 주인의 눈을 피해 못된 침입자나 배신자들이 도사리고 있을까봐, 그래서 내 삶에서 원치 않는 쉬어감이나 방향 전환이 생길까봐 두렵다. 이 조마조마한 긴장감은 검사 결과를 통해 ‘아무 이상 없음’을 의사가 증명해줄 때까지 이어진다. 아무 이상도 없는데 괜히 비싼 검진비만 날렸다는 약간의 후회나 아쉬움과 자리바꿈한 뒤에야 말이다.
홍채로 질병 유무 판단하는 홍채진단학
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 번쯤은 안과 검진을 받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다 보니 결국 연재 마지막까지 오고야 말았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아 안과 검진의 기본 중 기본이랄 수 있는 시력 검진을 시작으로 정밀 시야 검사와 안압 측정, 백내장 검사, 홍채 검사, 각막의 두께 및 지형도 검사를 거쳐 안저 촬영까지 다양한 검사를 최근 받았다.
시력 검사표에서 읽을 수 있는 표지가 그렇지 못한 것보다 많다는 것에 일단 안심을 하고, 눈의 표면 사진을 찍었다. 기계와 연결된 대형 모니터에 가장자리에 핏발이 선 갈색 눈동자가 나타나서 나를 바라보았다. 커다랗게 확대된 내 왼쪽 눈동자가 날 바라보았다. 현미경을 이용해 물체를 확대해서 보면 평소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확대해서 마주한 내 눈의 홍채는 역시나 낯설었다. 홍채는 흔히 카메라의 조리개에 비유되고, 우리가 흔히 보는 조리개는 얇은 판이나 빗살들이 겹쳐지면서 틈새의 크기가 조절되곤 한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홍채의 모습 역시 그렇다고 상상을 하곤 했는데, 실제의 모습은 달랐다. 동공과 홍채는 마치 가운데만 구멍을 남기고 코바늘로 뜬 둥근 깔개처럼 보였다. 군데군데 구멍도 뚫린 듯한 모습. 저 구멍들은 도대체 뭘까.
당연하게도 홍채는 신체의 구성조직이므로 플라스틱 판이나 나뭇조각이 아니라 근육과 교원질(아교질·콜라겐) 섬유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공의 크기를 조절하기 위한 주름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본 구멍들과 성긴 조직들은 홍채주름을 중심으로 한 근육들의 모습이었다. 3차원 입체적으로 쌓인 구조물을 단면만 촬영하다 보니 홍채주름이 마치 구멍이 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홍채주름이 개인을 구별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홍채는 임신 6개월쯤부터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동공 쪽 ⅓ 지점에 홍채주름이 있으며 이곳을 기준으로 안쪽에는 동공조임근(괄약근)이, 바깥쪽에는 동공확대근(산대근)이 존재한다. 동공조임근 영역은 특히나 무늬가 복잡하게 나타나는데, 이게 사람마다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후 8살 정도가 되면 홍채주름이 완전히 자리잡히면서 그 패턴이 일정하게 정해진다. 즉, 처음에는 주름잡히지 않았던 쥘부채를 같은 방향으로 자꾸만 접었다 폈다 하면 주름골이 생겨서 고착되는 것처럼 말이다. 생체인식 분야에서 지문이나 정맥 시스템과 함께 홍채 인식 프로그램이 개발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문은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개인 인식 방법이지만, 손을 많이 사용하거나 습진을 앓게 되면 마모되곤 하며, 상처를 입기 쉬운 손의 특성상 흉터 등으로 인해 변형되기도 쉽다.(실제로 필자의 집게손가락 지문도 출산 이후 한동안 고생했던 습진이 남긴 영향으로 거의 지워져 버렸다.) 하지만 눈은 상대적으로 다치거나 변형되는 일이 적은 부위이므로 마모되기 쉬운 지문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홍채가 이처럼 개인의 구별 기준이 된다는 사실에 기반해 근래에는 홍채진단학이라고 하여 홍채의 주름 패턴을 통해 건강 상태를 파악하거나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눈은 몸의 창이니 몸의 상태가 눈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은 매우 솔깃한 이야기다. 하지만 주류 의학계에서는 ‘건강상의 이상이 눈의 이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사실일 수 있지만, 타고난 홍채의 주름이 신체적 특성을 반영한다는 인과적 증거는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창문은 어디까지나 내부를 들여다보게 도와주는 것이지, 창틀의 모양이 집의 실내장식을 결정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눈이 크다’라는 말을 들으면 동그란 아기의 눈이나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여배우의 큰 눈망울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눈이 큰 것이 아니라, 눈꺼풀에 의해 열린 부분의 면적이 넓다는 것이며, 실제로 안구가 크다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바로 근시다.
각막에 과립형 덩어리 생겨나는
아벨리노 이영양증 환자가
각막 깎는 라식·라섹 수술하면
덩어리 폭발로 엄청난 후유증
요즘은 미리 유전자 여부 검사 시력 1.0에 백내장 등 징후 없는
‘정상 시력’ 결과를 받은 나
그러나 눈이 좋았던 사람일수록
빨리, 심하게 노안 증상 느끼며
정신적 충격과 불편 호소한다고 ‘눈이 커서’ 초점이 앞에 생기는 근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근시는 ‘가까운 것은 잘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잘 안 보이는 것’, 원시는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지만 가까운 것이 잘 안 보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즉, 근시나 원시를 개인이 느끼는 증상의 차이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과적인 측면에서 근시는 ‘빛의 굴절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이 커서 발생하는 현상’이고, 원시는 반대로 ‘빛의 굴절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이 작아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각막을 지나 동공을 통과해 눈 안으로 들어온 빛은 수정체에 의해 꺾여 초점을 맺고 우리는 이 초점에 맺힌 상을 본다. 그런데 이 초점은 반드시 망막의 중심와(황반)에 정확히 맺혀야 의미가 있다. 초점이 흔들린 사진은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것처럼 망막의 중심와에 맺히지 않은 초점은 시야를 크게 왜곡시킨다. 이때 초점이 망막에 닿기 전에 앞에서 맺히는 것이 근시, 망막을 넘어서 뒤쪽에 맺히는 것이 원시다. 근시의 경우, 수정체가 지나치게 두꺼워서 빛을 보통보다 큰 각도로 꺾어서 초점이 망막 앞에 맺혀서도 발생하지만, 수정체는 제대로 빛을 꺾었는데 안구 자체가 가로로 길어서 초점이 망막까지 도달하지 못해서 생기기도 한다. 전자를 굴절성 근시, 후자를 축성 근시라고 구분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굴절성이든 축성이든 간에 근시는 빛에 모이는 초점에 비해 망막이 뒤쪽에 있어서 생기는 것이므로, ‘눈이 커서’ 초점이 앞에 생긴다는 의미로 보면 이해가 쉽다. 보통의 경우, 가까운 물체를 볼 때에는 수정체가 두꺼워지고 먼 곳을 볼 때는 수정체가 얇아진다. 일반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물체는 눈보다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여기에서 반사된 빛은 눈에 넓은 각도로 들어오기 때문에 초점을 맺기 위해서 빛을 많이 꺾어줘야 하므로 수정체가 두꺼워지는 것이고, 먼 곳에 있는 물체는 정확히 이와 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근시는 수정체가 두꺼워진 상태에서 굳어진 경우이므로 가까운 곳은 그나마 잘 보이지만, 먼 곳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원시는 수정체가 얇아져 빛이 꺾이는 각도가 작아져 초점이 뒤로 밀리거나, 수정체는 보통인데 안구의 가로 길이가 짧아서 초점이 뒤로 넘어가기 때문에 생기는데 어쨌든 간에 초점이 망막 뒤에 맺히게 되므로 근시와 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눈이 길거나 수정체가 두꺼우면 빛이 급격히 꺾여서 먼 곳이 흐릿해지고, 눈이 짧거나 수정체가 얇으면 빛이 적게 꺾여서 가까운 곳이 어른거린다. 타고난 눈의 크기 자체를 늘리거나 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정체의 두께를 강제로 바꿀 수도 없으니 이들을 조절해 시야를 확보하는 건 쉽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수정체 앞에 놓인 각막의 두께를 변화시켜 빛이 꺾이는 각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즉, 각막을 오목렌즈 형태로 깎아서 처음부터 수정체로 들어가는 빛의 각도를 변화시켜 초점의 위치를 뒤로 밀어 망막에 닿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라식이나 라섹과 같은 시력교정술이다. 라식과 라섹은 각막을 깎아서 오목렌즈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라식이 각막 상피를 뚜껑처럼 얇게 잘라 열고 그 안의 각막 실질을 깎고 뚜껑을 다시 덮는 것이라면, 라섹은 뚜껑 자체를 깎아버리는 차이가 있다. 세부 방법이야 어쨌든 각막을 깎아내서 눈에 직접 오목렌즈를 만들어주는 원리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타고난 각막이 얇을수록 깎아내기가 어렵고, 근시가 심할수록 각막을 더 많이 깎아내야 하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각막이 지나치게 얇거나 혹은 후천적으로 질환 등으로 인해 얇아진 경우는 당연히 시력교정술을 받기 어려우며, 매우 심한 고도근시라면 시력교정술을 받고 나도 시력이 생각만큼 호전되지 않을 수 있다. 유리창이 두껍고 어른거리니 갈아서 얇게 만드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갈게 되면 유리창 자체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막을 깎아 시력을 조정하므로 이들에게 야간의 빛 번짐과 눈부심은 필연적인 부작용이 될 수밖에 없다. 시력교정술에서는 각막 전체를 깎는 것이 아니라, 각막 중심부만 깎는다. 그래야 오목렌즈 모양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빛이 밝은 낮에는 홍채가 오므라들고 동공이 좁아지므로 빛은 각막의 깎인 부위로만 통과할 수 있어 세상이 환하게 잘 보인다. 시력교정술을 받은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심봉사가 눈을 뜬 느낌’일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밤이 되면 달라진다. 밤이 되면 빛이 부족해지므로 자연스럽게 홍채가 이완되어 동공이 커지기 마련이고, 이렇게 커진 동공은 깎아내지 않은 각막 가장자리 부분까지 커지게 된다. 그럼 동공의 가장자리 부분을 통해 들어온 빛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위치에 초점을 맺지 못하니 빛이 번져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몇 년 전인가,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젊고 똑똑한 젊은이가 시력 교정을 위해 라식 수술을 받았다가 부작용으로 시력을 잃고 실명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였다. 좀 더 맑고 깨끗한 세상을 보기 위해 받았던 시력교정술이 그나마 볼 수 있던 흐릿한 세상마저 앗아가 버렸다니. 이토록 끔찍한 악몽은 다시 없을 듯하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시력교정술이 도입된 초기에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눈이 숨긴 작은 지뢰, 아벨리노 이영양증 때문이었다. ‘bigh3’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각막질환 아벨리노 이영양증이라 이름 붙은 다소 낯선 이 병명은 1988년 이탈리아 아벨리노 지방에서 이민 온 가족들에게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제2형 과립형 각막이상증’이다. ‘bigh3’라는 이름의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유전성 질환으로,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경우 맑고 투명해야 하는 눈의 각막에 작은 과립형 덩어리들이 생겨나게 된다. 낯선 이름과는 달리 매우 흔한 유전자 이상이어서, 우리나라의 경우 약 870명 중 1명꼴로 이 고장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이라고 하면 약 6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유전정보를 한 세트씩 물려받기 때문에 동일한 유전자를 2개 1쌍씩 지니게 된다. 아벨리노 이영양증의 원인이 되는 ‘bigh3’ 유전자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이 유전자가 하나 혹은 두개 모두 고장난 경우 눈 안에 좁쌀 같은 덩어리들이 발생한다. 과립들이 한두개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들이 점차 쌓이게 되면 결국에는 각막을 가득 메워 시야를 가리게 된다. 유전자 두개가 모두 고장난 경우에는 유아기부터 눈에 과립이 쌓이기 시작해 빠른 속도로 눈이 혼탁해져 금방 드러나지만, 유전자가 하나만 고장난 경우에는 10대가 지나면서 과립이 한두개씩 만들어지고 쌓이는 속도도 느려서 대부분 별다른 자각 증상을 느끼지 못한 채 평생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문제가 될 수 있다. bigh3 유전자 두개가 고장난 경우 육안으로도 각막이 혼탁해진 것이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력교정술을 시도할 가능성이 낮지만, ‘bigh3’ 유전자가 하나만 고장난 경우에는 자칫 한두개의 과립을 못 보고 지나쳐 수술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벨리노 이영양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라식이나 라섹 수술은 눈 속의 지뢰를 터뜨린 것과 같다. 이들의 경우, 각막에 상처가 나면 이 상처를 중심으로 과립들이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기 때문이다. 라식이든 라섹이든 어쨌든 각막을 깎아 상처를 내는 것이므로, 이는 혼자라서 얌전히 숨죽이고 있던 아벨리노 이영양증 유전자를 깨워 날뛰게 만든다. 라식과 라섹이 도입되던 초기에는 아벨리노 이영양증과 시력교정술의 연관성이 미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병증을 가진 사람들도 종종 수술을 받았고, 그로 인한 엄청난 후유증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시력교정술을 꺼릴 필요는 없다. 현재는 이와 관련된 유전자가 밝혀졌고,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를 가리는 간단한 검사법도 나와 있어서 수술을 받기 전에 미리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불행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있으니까. 어느덧 검사가 끝나고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도 내 눈은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나안(맨눈) 시력 ‘1.0’이니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각막의 두께와 곡률도 적당해 어디 튀어나오거나 얇아진 곳도 없고, 백내장이나 녹내장의 징후도 없고 망막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 그야말로 ‘정상 시력’을 가진 상태였다. 하지만 의사는 말했다. 이렇게 정시인 사람, 소위 말해 ‘눈이 좋았던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노안의 증상을 빨리, 더욱 심하게 느끼게 된다고. 젊었을 적에 근시로 고생했던 이들일수록 오히려 노안 증상을 덜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책을 보면 약간씩 흐리게 보이던 것이 노안의 초기 증상인 모양이었다. 또한 눈이 좋았던 사람일수록 갑자기 찾아온 노안 증상으로 인해 받은 정신적 충격과 평생 안 쓰던 안경을 써야 하는 불편감을 더 크게 호소한다고, 그래서 세상은 공평하다고 말이다. 그 말을 전해주던 안경 속 의사의 눈동자가 짓궂게 빛나는 듯했던 건 나만의 느낌일 뿐이었을까.
이은희 과학 작가
▶ 하리하라 본명 이은희. 생물학을 전공해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우연히 인터넷 블로그에 썼던 글들이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등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과학언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현재는 과학작가이자 강연자로 살고 있다. ‘하리하라’라는 인터넷 아이디를 필명으로, 세상에 퍼져 있는 과학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걷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에서 격주로 ‘인간의 눈’과 본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아벨리노 이영양증 환자가
각막 깎는 라식·라섹 수술하면
덩어리 폭발로 엄청난 후유증
요즘은 미리 유전자 여부 검사 시력 1.0에 백내장 등 징후 없는
‘정상 시력’ 결과를 받은 나
그러나 눈이 좋았던 사람일수록
빨리, 심하게 노안 증상 느끼며
정신적 충격과 불편 호소한다고 ‘눈이 커서’ 초점이 앞에 생기는 근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근시는 ‘가까운 것은 잘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잘 안 보이는 것’, 원시는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지만 가까운 것이 잘 안 보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즉, 근시나 원시를 개인이 느끼는 증상의 차이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과적인 측면에서 근시는 ‘빛의 굴절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이 커서 발생하는 현상’이고, 원시는 반대로 ‘빛의 굴절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이 작아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각막을 지나 동공을 통과해 눈 안으로 들어온 빛은 수정체에 의해 꺾여 초점을 맺고 우리는 이 초점에 맺힌 상을 본다. 그런데 이 초점은 반드시 망막의 중심와(황반)에 정확히 맺혀야 의미가 있다. 초점이 흔들린 사진은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것처럼 망막의 중심와에 맺히지 않은 초점은 시야를 크게 왜곡시킨다. 이때 초점이 망막에 닿기 전에 앞에서 맺히는 것이 근시, 망막을 넘어서 뒤쪽에 맺히는 것이 원시다. 근시의 경우, 수정체가 지나치게 두꺼워서 빛을 보통보다 큰 각도로 꺾어서 초점이 망막 앞에 맺혀서도 발생하지만, 수정체는 제대로 빛을 꺾었는데 안구 자체가 가로로 길어서 초점이 망막까지 도달하지 못해서 생기기도 한다. 전자를 굴절성 근시, 후자를 축성 근시라고 구분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굴절성이든 축성이든 간에 근시는 빛에 모이는 초점에 비해 망막이 뒤쪽에 있어서 생기는 것이므로, ‘눈이 커서’ 초점이 앞에 생긴다는 의미로 보면 이해가 쉽다. 보통의 경우, 가까운 물체를 볼 때에는 수정체가 두꺼워지고 먼 곳을 볼 때는 수정체가 얇아진다. 일반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물체는 눈보다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여기에서 반사된 빛은 눈에 넓은 각도로 들어오기 때문에 초점을 맺기 위해서 빛을 많이 꺾어줘야 하므로 수정체가 두꺼워지는 것이고, 먼 곳에 있는 물체는 정확히 이와 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근시는 수정체가 두꺼워진 상태에서 굳어진 경우이므로 가까운 곳은 그나마 잘 보이지만, 먼 곳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원시는 수정체가 얇아져 빛이 꺾이는 각도가 작아져 초점이 뒤로 밀리거나, 수정체는 보통인데 안구의 가로 길이가 짧아서 초점이 뒤로 넘어가기 때문에 생기는데 어쨌든 간에 초점이 망막 뒤에 맺히게 되므로 근시와 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눈이 길거나 수정체가 두꺼우면 빛이 급격히 꺾여서 먼 곳이 흐릿해지고, 눈이 짧거나 수정체가 얇으면 빛이 적게 꺾여서 가까운 곳이 어른거린다. 타고난 눈의 크기 자체를 늘리거나 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정체의 두께를 강제로 바꿀 수도 없으니 이들을 조절해 시야를 확보하는 건 쉽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수정체 앞에 놓인 각막의 두께를 변화시켜 빛이 꺾이는 각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즉, 각막을 오목렌즈 형태로 깎아서 처음부터 수정체로 들어가는 빛의 각도를 변화시켜 초점의 위치를 뒤로 밀어 망막에 닿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라식이나 라섹과 같은 시력교정술이다. 라식과 라섹은 각막을 깎아서 오목렌즈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라식이 각막 상피를 뚜껑처럼 얇게 잘라 열고 그 안의 각막 실질을 깎고 뚜껑을 다시 덮는 것이라면, 라섹은 뚜껑 자체를 깎아버리는 차이가 있다. 세부 방법이야 어쨌든 각막을 깎아내서 눈에 직접 오목렌즈를 만들어주는 원리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타고난 각막이 얇을수록 깎아내기가 어렵고, 근시가 심할수록 각막을 더 많이 깎아내야 하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각막이 지나치게 얇거나 혹은 후천적으로 질환 등으로 인해 얇아진 경우는 당연히 시력교정술을 받기 어려우며, 매우 심한 고도근시라면 시력교정술을 받고 나도 시력이 생각만큼 호전되지 않을 수 있다. 유리창이 두껍고 어른거리니 갈아서 얇게 만드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갈게 되면 유리창 자체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막을 깎아 시력을 조정하므로 이들에게 야간의 빛 번짐과 눈부심은 필연적인 부작용이 될 수밖에 없다. 시력교정술에서는 각막 전체를 깎는 것이 아니라, 각막 중심부만 깎는다. 그래야 오목렌즈 모양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빛이 밝은 낮에는 홍채가 오므라들고 동공이 좁아지므로 빛은 각막의 깎인 부위로만 통과할 수 있어 세상이 환하게 잘 보인다. 시력교정술을 받은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심봉사가 눈을 뜬 느낌’일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밤이 되면 달라진다. 밤이 되면 빛이 부족해지므로 자연스럽게 홍채가 이완되어 동공이 커지기 마련이고, 이렇게 커진 동공은 깎아내지 않은 각막 가장자리 부분까지 커지게 된다. 그럼 동공의 가장자리 부분을 통해 들어온 빛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위치에 초점을 맺지 못하니 빛이 번져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몇 년 전인가,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젊고 똑똑한 젊은이가 시력 교정을 위해 라식 수술을 받았다가 부작용으로 시력을 잃고 실명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였다. 좀 더 맑고 깨끗한 세상을 보기 위해 받았던 시력교정술이 그나마 볼 수 있던 흐릿한 세상마저 앗아가 버렸다니. 이토록 끔찍한 악몽은 다시 없을 듯하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시력교정술이 도입된 초기에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눈이 숨긴 작은 지뢰, 아벨리노 이영양증 때문이었다. ‘bigh3’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각막질환 아벨리노 이영양증이라 이름 붙은 다소 낯선 이 병명은 1988년 이탈리아 아벨리노 지방에서 이민 온 가족들에게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제2형 과립형 각막이상증’이다. ‘bigh3’라는 이름의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유전성 질환으로,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경우 맑고 투명해야 하는 눈의 각막에 작은 과립형 덩어리들이 생겨나게 된다. 낯선 이름과는 달리 매우 흔한 유전자 이상이어서, 우리나라의 경우 약 870명 중 1명꼴로 이 고장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이라고 하면 약 6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유전정보를 한 세트씩 물려받기 때문에 동일한 유전자를 2개 1쌍씩 지니게 된다. 아벨리노 이영양증의 원인이 되는 ‘bigh3’ 유전자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이 유전자가 하나 혹은 두개 모두 고장난 경우 눈 안에 좁쌀 같은 덩어리들이 발생한다. 과립들이 한두개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들이 점차 쌓이게 되면 결국에는 각막을 가득 메워 시야를 가리게 된다. 유전자 두개가 모두 고장난 경우에는 유아기부터 눈에 과립이 쌓이기 시작해 빠른 속도로 눈이 혼탁해져 금방 드러나지만, 유전자가 하나만 고장난 경우에는 10대가 지나면서 과립이 한두개씩 만들어지고 쌓이는 속도도 느려서 대부분 별다른 자각 증상을 느끼지 못한 채 평생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문제가 될 수 있다. bigh3 유전자 두개가 고장난 경우 육안으로도 각막이 혼탁해진 것이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력교정술을 시도할 가능성이 낮지만, ‘bigh3’ 유전자가 하나만 고장난 경우에는 자칫 한두개의 과립을 못 보고 지나쳐 수술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벨리노 이영양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라식이나 라섹 수술은 눈 속의 지뢰를 터뜨린 것과 같다. 이들의 경우, 각막에 상처가 나면 이 상처를 중심으로 과립들이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기 때문이다. 라식이든 라섹이든 어쨌든 각막을 깎아 상처를 내는 것이므로, 이는 혼자라서 얌전히 숨죽이고 있던 아벨리노 이영양증 유전자를 깨워 날뛰게 만든다. 라식과 라섹이 도입되던 초기에는 아벨리노 이영양증과 시력교정술의 연관성이 미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병증을 가진 사람들도 종종 수술을 받았고, 그로 인한 엄청난 후유증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시력교정술을 꺼릴 필요는 없다. 현재는 이와 관련된 유전자가 밝혀졌고,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를 가리는 간단한 검사법도 나와 있어서 수술을 받기 전에 미리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불행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있으니까. 어느덧 검사가 끝나고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도 내 눈은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나안(맨눈) 시력 ‘1.0’이니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각막의 두께와 곡률도 적당해 어디 튀어나오거나 얇아진 곳도 없고, 백내장이나 녹내장의 징후도 없고 망막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 그야말로 ‘정상 시력’을 가진 상태였다. 하지만 의사는 말했다. 이렇게 정시인 사람, 소위 말해 ‘눈이 좋았던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노안의 증상을 빨리, 더욱 심하게 느끼게 된다고. 젊었을 적에 근시로 고생했던 이들일수록 오히려 노안 증상을 덜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책을 보면 약간씩 흐리게 보이던 것이 노안의 초기 증상인 모양이었다. 또한 눈이 좋았던 사람일수록 갑자기 찾아온 노안 증상으로 인해 받은 정신적 충격과 평생 안 쓰던 안경을 써야 하는 불편감을 더 크게 호소한다고, 그래서 세상은 공평하다고 말이다. 그 말을 전해주던 안경 속 의사의 눈동자가 짓궂게 빛나는 듯했던 건 나만의 느낌일 뿐이었을까.
이은희 과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