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강화/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11. 5. 08:54

esc

산꼭대기 오르면 북녘땅이 코앞에

등록 :2015-11-04 20:26

 

교동도 난정저수지의 쇠기러기떼. 물 위에 ‘새 을(乙)’자로 앉아 있다가 ‘여덟 팔(八)’ 자로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교동도 난정저수지의 쇠기러기떼. 물 위에 ‘새 을(乙)’자로 앉아 있다가 ‘여덟 팔(八)’ 자로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여행
다리로 이어져 당일치기 나들이 가능해진 강화 교동도 버스여행
이병학 기자의 완행버스 여행
강화읍~교동도

강화 교동도는 실향민들의 땅이다. 한국전쟁 전까지 황해도 연백 사람들이 수시로 오고 가던 섬이었다. “전쟁 끝나면 돌아가려고 잠시 머물다”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서로 기대어 살며 이룬 골목시장이, 요즘 젊은이들이 카메라 메고 셀카봉 들고 찾아드는 대룡리 대룡시장이다. 교동이발관·중앙신발·동산약방·교동철물·교동다방…, 1960년대 시장골목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영화·드라마 촬영지로도 이용되는 곳이다.

대룡시장 골목 풍경.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대룡시장 골목 풍경.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지난해 7월 강화도와 교동도 사이에 교동대교가 개통되며 여행자들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하지만 교동도 주민들에게 육지와 이어진 다리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아무 때고 드나들 수 있어 좋지만, 그래서 아쉽기도 하다. 대룡시장에서 만난 80대 할머니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자식)들도 왔다간 바로 가버려요. 아, 배 타고 들어올 때야 꼭 자고 나갔지.”

아무튼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교동면)는 이제 수도권에서 꽤 매력적인 당일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당연히 버스여행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버스 여행자들이 당일로 둘러보고 나가기엔 교동도에 볼거리가 너무 많다. 강화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교동도에 들어간 뒤, 마을버스로 갈아타거나 걸어서 볼거리를 찾아가는 1박2일 버스여행을 다녀왔다.

완행버스 여행/강화 교동도
완행버스 여행/강화 교동도

민간인통제구역 검문소 거쳐야

강화시외버스터미널엔 매표소가 없다. 청주·광주행(자동매표기)을 제외하곤 버스에 오를 때 교통카드나 현금으로 내면 된다. 시내버스삯은 균일가 1300원(카드 1250원)이다. 교동도행 버스는 오전 5시5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하루 10번 운행하는 18번 버스가 유일하다. 오전엔 대략 2~3시간 간격, 오후엔 대략 1시간30분 간격이다.

금요일 오후, 여섯명뿐인 승객은 다 어르신들이다. 운전기사는 “주말·공휴일엔 교동도 등산객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토요일 오전 9시30분 차 승객이 많다”고 했다. 꼭대기에 오르면 북녘땅이 넘어지면 코 닿을 듯 바라다보이는, 교동도 화개산(269m) 산행을 한 뒤 점심 먹고 바로 빠져나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는 문화유산의 보물창고다. 숱한 강화도 볼거리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교동도로 직행했다. 교동도는 민통선 안쪽에 있으므로 군검문소의 신분 확인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밤 12시~새벽 4시엔 교동대교 출입이 통제된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왕복 2차선의 교동대교를 건너 고구저수지 지나 잠시 달리면 교동도 여행의 거점이면서, 식당들이 몰려 있는 대룡리에 이른다. 교동도의 2개 노선(서한리 노선, 무학리 노선)을 하루 8차례, 동시에 한바퀴씩 도는 마을버스의 출발점도 이곳이다.

황해도 사람 수시로 오고 가다
한국전쟁 뒤 생이별한 실향민의 섬
1960년대 시장골목 풍경 그대로
영화·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

읍내리 버스정류소.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읍내리 버스정류소.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실향민마을 대룡리, 섬 탐방의 거점

우선 종점인 월선포까지 가본다. 대룡리에서 등산객 두명이 내리고 버스는 텅 비었다. 마을엔 주황빛 감들을 매단 감나무들이 그림 같고, 추수 끝난 들판엔 억새들이 눈부시다. 월선포는 교동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강화도(창후리선착장)를 오가는 여객선 선착장있던 곳이다. 멀리 교동대교가 바라다보이는 월선포구에 배는 한 척도 보이지 않고(교동도의 세 척뿐인 배는 모두 남산포에 정박해 있다.) 낚시꾼들만 늘어서서 반짝이는 물살을 바라보고 있다. 15분 머물다가 강화터미널을 향해 떠나는 버스를 다시 타고 화개사입구 정류소에서 내렸다. 화개사는 화개산 산행길에 찾기로 하고, 읍내리비석무리·교동향교, 그리고 교동읍성을 걸어서 둘러본다.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 때(1629년) 쌓은 성으로, 현재는 남문(유량루)의 홍예(무지개 다리) 석문 부분과 좌우 일부 석축이 남아 있다. 무너져내린 남문을 지키는 건, 빗돌을 지고 있었던 듯 등에 홈이 파인 수수한 모습의 돌거북 하나다.

다음 버스를 타고 대룡리로 나와 시장골목으로 들어섰다. 몇년 전에 비해 일부 간판이 깨끗해지고 골목에 벽화들도 그려졌지만, 대체로 오래된 시장골목 모습 그대로다. 평일인데도 쌍쌍의 젊은 남녀들이 골목골목 기웃거리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호프집 앞 골목이 소란하다. 대형 고무함지박을 늘어놓고, 도토리(상수리)묵을 담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올해 상수리가 엄청나요. 이런 풍년 20년 만에 첨이에요.” 호프집 주인 전의분(66)씨는 “나무 한두그루 밑에서 한가마니를 주울 정도”라고 했다. 가물면 상수리가 풍년을 이룬다고 한다.

화개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녘땅. 갯벌과 바다 건너 북한 황해도 해안의 마을이 보인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화개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녘땅. 갯벌과 바다 건너 북한 황해도 해안의 마을이 보인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화개산 정상에 서면 북녘땅 코앞에

이튿날 아침, 화개산에 올랐다. 교동면사무소에서 정상까지 45분 걸린다. 면사무소 옆으로 오르다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걸으면 풍물시장 위쪽을 지나 화개산 등산로 입구를 만난다. 산길 옆에서 연산군 유배지(교동도 내 연산군 유배지로 추정되는 세곳 중 한곳으로, 지금 전시관 공사중)와 조선시대 한증막도 만날 수 있다. 완만한 길을 잠시 오르면 약수터와 효자묘 거쳐 정상에 이른다. 실향민들이 찾아와 북녘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곳이다. 북녘땅을 살필 수 있는 망원경도 한대 세워져 있다. 망원경이 아니더라도, 폭이 3㎞ 남짓이라는 물길 건너편의 북한지역 마을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연무 낀 북녘 하늘 멀리 가느다란 점선이 나타났다. 철새떼다. 남쪽 하늘로 넘어온 철새들은 아득히 교동도 서쪽 하늘로 사라져갔다.

하산길은 봉수대 쪽이다. 정상 바로 밑에서 선사시대 신앙의 흔적인 암각(성혈과 선각)을 본 뒤 봉수대 거쳐 바윗길을 한동안 내려오면 길이 완만해지고, 곧 화개사로 내려서게 된다. 화개사는 작은 규모지만, 고려시대의 학자 목은 이색이 머물며 공부했다는 유서 깊은 절이다. 여기서 산자락을 따라 면사무소까지 이어진 1.5㎞ 길이의 산길을 걸어볼 만하다. 막바지 가을빛을 내뿜는 활엽수 숲 사이로, 낙엽을 수북이 덮고 굽이치는 완만한 오솔길을 걷는 맛이 아주 청량하다.

마을버스 타고 내리며 쇠기러기떼 감상

교동도 안에선 마을버스(20인승) 2대가 2개 구간을 하루 8차례 운행한다. 삼선리·인사리·지석리·무학리 등 섬 서북쪽 구간을 도는 버스와 양갑리·난정리·서한리·동산리를 돌아오는 서남쪽 구간 버스다. 양쪽 구간 모두 수확 마친 광활한 들판(논)을 지나 마을들을 한바퀴 돌아오게 된다. 각각 30분 소요. 모두 대룡리가 출발점·도착점이다.

교동도 수정산 자락의 조선시대 한증막.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교동도 수정산 자락의 조선시대 한증막.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서북쪽 구간은 북녘땅을 바라보며 제를 올리는 망향대 말고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지만, 남서쪽 구간 버스를 타면 쇠기러기떼 등 철새들이 바글거리는 난정저수지와 또다른 조선시대 한증막(교동도엔 옛 한증막이 세곳 남아 있다.)을 만날 수 있다. 난정1리 난곳정미소 정류소에서 내리면 걸어서 5분 거리에 저수지 제방이 있다. 제방 왼쪽 길로 올라 저수지를 오른쪽에 보며 비포장길을 잠시 걷다가 왼쪽 수정산 자락으로 50m 오르면 돌문이 뚫린 무덤처럼 생긴 한증막이 나타난다. 교동도의 한증막 중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전돼온 한증막이다.

난정1리에 사는 황애분(82) 할머니 말씀. “그거 아주 오래된 거유. 아이구, 나두 젊어서 한증 많이 했지. 소나무 장작불 때서 숯 끄집어내고, 생솔가지 깔구선 옷이나 가마니 뒤집어쓰고 들어가 앉었는 거여.” 할머니는 “거기가 가재골인데 물이 맑아서 가재가 엄청 많았다”고 기억했다.

교동도 들판의 주인공은 철새들이다. 이제 막 철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쇠기러기떼가 장관이다. 난정저수지가 쇠기러기들의 베이스캠프 구실을 하는 곳인데, 최근 가뭄으로 수량은 크게 줄어든 상태다. 하지만 쇠기러기들은 저수지에서 수시로 날아올라 이 들판 저 물길로 수천마리씩 무리지어 이동하며 멋진 떼춤을 보여준다. 물론,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고, 운이 좋으려면 기다려야 한다. 난정저수지 북쪽 제방 옆 들판이 쇠기러기들이 자주 모여드는 곳이다. 마을버스 차 시간 잘 기억해둔 뒤, 쇠기러기 군무 제대로 감상해 보시길.

교동도(강화)/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교동도 완행버스 정보

대중교통
서울 신촌(현대백화점 앞·홍익대 앞 등)에서 3000번 버스가 강화시외버스터미널까지 10분 간격으로 다닌다. 영등포역 앞에선 88번 버스가 15분 간격으로 다닌다. 강화버스터미널에서 교동도까지는 18번 버스가 하루 10차례 다닌다.

먹을 곳·묵을 곳 대룡시장 주변에 와글와글(갈치조림 등)·소풍(백반·분식 등)·자연산고추장추어탕(추어탕 등) 등 식당 10여곳이 모여 있다. 숙소는 대룡리에 교동모텔 등 허름한 여관과 여인숙·민박집들이 있다.

강화나들길 강화도와 주변 섬들에,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19개 구간의 역사·문화·생태 탐방로 ‘강화 나들길’이 조성돼 있다. 교동도에는 9코스·10코스가 만들어졌다. 월선포에서 화개사·화개산·대룡시장·남산포·교동읍성 등을 잇는 9코스(교동도 다을새길·16㎞·6시간 소요)를 걷는 이들이 많다. 10코스(교동도 머르메 가는 길·17.2㎞·6시간 소요)는 난정저수지·한증막·수정산·머르메 등을 거친다.

여행 문의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032)930-3524, 강화터미널 관광안내소 (032)930-3515, 교동면사무소 (032)930-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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