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영주/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11. 26. 22:19

esc

햇사과 한알 베어무니 버스 안 가득 사과향기

등록 :2015-11-25 20:31수정 :2015-11-26 14:34

 

경북 영주시 순흥면사무소 뒤의 봉도각과 연못.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경북 영주시 순흥면사무소 뒤의 봉도각과 연못.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여행
경북 영주시 풍기역 앞에서 순흥도호부 터·소수서원 거쳐 부석사까지
완행버스 여행 영주 풍기역~부석사
완행버스 여행 영주 풍기역~부석사

이병학 기자의 완행버스 여행
풍기역~부석사

영주시 풍기읍, 풍기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풍기인삼시장 앞에도 버스정류소 앞에도 할머니들이 사과·더덕·호박 들을 쌓아놓고 노점을 펼쳤다. “올핸 사과가 차암 싸다. 함 들어보소.” 깎아서 내미는 사과를 맛보니, 달고도 향기롭다. 비가 적었고 바람이 덜 불어 사과가 풍년을 이뤘고, 당도도 뛰어나다고 한다. 늦가을 풍기읍 여행에 버스가 제격인 것은 수확 마무리에 접어든 사과도 사과지만, 버스 노선은 단순한데 볼거리는 촘촘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풍기읍에서 순흥면 읍내리의 옛 순흥도호부 터, 소수서원·선비촌 거쳐 부석사까지 영주여객 버스를 타고 내리며 늦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버스 노선은 다르지만, 고택 즐비한 물돌이 마을인 무섬마을까지 넣는다면, 풍성한 1박2일 여정을 누릴 수 있다.

영주 무섬마을의 한 초가 벽에 걸린 꽈리.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영주 무섬마을의 한 초가 벽에 걸린 꽈리.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거리마다 좌판마다 큼직한 영주사과 산더미

이빨을 갖다 대면 쩍쩍 갈라지는 사과를 베어 물며, 약 1시간10분 안팎 간격으로 오는 27번 버스를 타고 순흥으로 향했다. 영주여객 27번 버스는 영주시 공용터미널에서 부석사까지 하루 13회 왕복하는 좌석버스다. 영주 시내버스 요금은 일반버스 1200원, 좌석버스 1500원이다. 서울 교통카드도 통용된다.

풍기읍내를 벗어나니, 도로확장 공사중인 길 좌우가 온통 사과밭이다. 물론 수확이 대부분 끝나고 사과는 일부만 남아 있다. 수확 끝난 밭이 썰렁하지 않은 건 까치밥들이 몇개씩 남아 있어서다. 승객 6명은 모두 할머니·할아버지들이다. “읍내 병원 쫌 다녀오느라고.” 단산면까지 가신다는 할아버지(80)는 빤질빤질 윤이 나는 지팡이를 지니셨다. 운전기사가 말했다. “승객은 다 노인네와 학생뿌이라. 그래도 이런 버스 덕에 요즘 노인네들이 쫌이라도 오래 사는기라. 병원 갈라 캐도, 자석들이 바빠 노이.”

순흥면 정류소삼거리 부근 한 가게 앞에서 사과를 씻고 있는 주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순흥면 정류소삼거리 부근 한 가게 앞에서 사과를 씻고 있는 주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주변 산자락의 삼국시대 고분을 옮겨 재현해 놓은 순흥읍내리벽화고분 입구를 지나면 순흥면소재지에 닿는다. 풍기역 앞에서 13분 거리다. 읍내리 정류소삼거리에서 내려, 걸어서 3분 거리의 순흥전통묵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거의 매일 메밀묵을 쑤어 손님상에 차려내는 묵밥집이다.

순흥 읍내리에 볼거리가 꽤 있다. 두 시간쯤 여유를 가지고 순흥도호부 관아 터와 비석들, 순흥읍성 흔적, 그리고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들을 둘러볼 만하다.

“올 사과 차암 달고 싸니더”
버스엔 병원·시장 오가는 어르신뿐
옛 순흥도호부 터의 수백년 묵은 고목
주춧돌·빗돌에도 늦가을 낙엽 수북
고택 들어찬 무섬마을도 들러볼만

부석사 범종루.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부석사 범종루.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흥망성쇠 거듭한 순흥에 남은 보석들

순흥은 조선 태종 때 도호부가 되었으나, 세조 때 이곳으로 유배된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의 단종 복위 사건으로 도호부가 폐지된 고장이다. 당시 참혹한 살육이 자행돼 시냇물 30리가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227년 뒤인 숙종 때 다시 도호부로 승격돼 명예회복이 이뤄졌으나, 구한말 일제에 의해 다시 고통을 겪게 된다. 을사늑약(1905년) 뒤 의병 수백명이 소백산 자락에 모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 순흥부가 의병을 도왔다는 이유로 일제는 마을에 불을 질러, 180여호가 전소됐다고 한다.

순흥부 관아 터에 남아 있는 옛 모습은 선정비·척화비 등 빗돌과 관아 주춧돌, 목이 잘린 석불입상, 그리고 옛 연못, 400년 된 느티나무들과 은행나무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읍내리를 한바퀴 걸어서 돌며 순흥교회 옆의 400년 된 은행나무 2그루, 골목길 안에 40m가량만 남은 순흥읍성, 그리고 순흥 안씨 후손들을 길러낸 우물이라는 사현정을 돌아봤다. 사현정의 ‘사현’은 안석·안축·안보·안집 4인을 가리킨다. 조선 인조 때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이름 붙였다고 한다. 옛 우물과 빗돌(1636년), 비각이 남아 있다.

경관이 좋기로는 옛 관아 터(조양각·순흥면사무소) 뒤쪽의 봉도각과 연못이다. 영조 때 순흥부사 조덕상이 이곳에 승운루라는 누각을 짓고, 서쪽에 연못을 파 가운데 섬을 쌓아 봉도각이란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건물들은 옛것이 아니지만, 연못 주변으로 수백년 된 느티나무와 소나무들이 울창하다.

다시 정류소삼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소수서원으로 향한다. 한 정거장, 2~3분 거리다. 소수서원에서 내리면, 고려 때 유학자 안향의 위패를 모신 국내 첫 서원이자 첫 사액서원인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그리고 선비촌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입장료 3곳 3000원. 선비촌은 조선시대 전통가옥들을 본떠 지어 모아놓은 유교문화 체험관이자, 테마파크다. 931번 지방도 길 건너 쪽엔 금성대군신단과 순흥향교가 있다.

금성대군신단은 사육신 등과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 이곳에 유배돼 있던 금성대군이 부사 이보흠 등과 다시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돼 죽임을 당한 곳이다. 제를 올리는 제단은 숙종 때 단종 복위 및 순흥부 복읍 뒤 1719년 마련됐다. 금성대군신단 옆에 솟은 거대한 은행나무도 감상해볼 만하다. 순흥과 흥망성쇠를 함께해온, 1100년여 됐다는 나무다. 단종 복위 실패 뒤 이 나무도 불에 탔으나, 밑동에서 다시 줄기가 자라오르면서 순흥부도 다시 설치됐다고 한다. 은행잎이 오리발을 닮았다 해서 ‘압각수’로 불린다.

부석사 종점에 도착한 영주여객 27번 버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부석사 종점에 도착한 영주여객 27번 버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선비촌 앞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단산면 지나 부석면소재지로 들어선다. 지역명이 고찰 부석사에서 비롯했다. 부석은 ‘뜬돌’을 뜻한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화엄종 근본도량으로, 국보와 보물들이 즐비한 사찰이다. 부석사 들머리도 사과 노점이 지천이다. 무량수전(국보 18호), 조사당(국보 19호) 등 5점의 국보가 아니더라도, 부석사 경내엔 보석 같은 볼거리들이 많아 두세 시간쯤 여유를 갖고 둘러볼 만하다. 부석사에서 풍기로 가는 27번 막차는 저녁 8시30분에 출발한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고택들과 외나무다리 기다리는 무섬마을

영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물돌이 마을인 무섬마을까지는 시내버스 간격(6시15분, 9시50분, 13시20분, 15시, 18시40분 하루 5회 왕복)이 뜸해 다소 불편하지만, 20분이면 닿는다(오후 무섬마을~영주 버스는 다른 곳 경유해 40분 소요). 서너 시간 머물며 정말 각양각색인 한옥들을 둘러보거나,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모래 많기로 이름난 내성천 물길을 들여다볼 만하다. 총 43채의 가옥 중 28채에 주민이 대를 이어 살고 있다. 해설을 신청하면, 마을과 각 고택들에 얽힌 흥미로운 옛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영주/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풍기역~부석사 버스 여행정보

대중교통
서울 청량리역~영주 풍기역을 열차가 하루 9회(무궁화 7회, 새마을 2회) 운행한다. 새마을 2시간20분 소요, 1만8500원. 무궁화 2시간35분 소요, 1만2400원(특실은 1만4300원). 서울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20~30분 간격, 강남버스터미널에서는 1시간30분 간격(하루 10회)으로 영주행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영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풍기역까지는 시내버스로 약 25분 소요. 풍기에서 내릴 경우, 풍기나들목 나오자마자 주유소 건너편에서 고속버스가 정차한다. 여기서 1시간 안팎 간격으로 번갈아 정차하는 23번 영주 버스와 예천 버스를 타고 풍기역으로 갈 수 있다.

먹을 곳 풍기역 앞 한결청국장의 부석태 청국장, 풍기역 앞 골목 안 서부냉면의 냉면과 불고기, 순흥면소재지 순흥전통묵집의 메밀묵밥, 무섬마을 안 골동반의 비빔밥, 선비촌 뜨라네의 뜨라네정식 등.

묵을 곳 무섬마을 고택 숙박 방 1실에 크기·시설에 따라 5만, 7만, 10만원. 선비촌 숙박 2인실 4만9500원, 4인실 7만7000원. 풍기읍에 풍기관광호텔이 있고, 남원천변에 모텔들이 모여 있다.

좀 더 가볼 곳 소백산 자락에 규모는 아담하면서도 볼거리가 있는 사찰이 몇곳 있다. 죽계구곡의 초암사와 배점마을 위쪽 성혈사는 모두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창건했던 절이다. 성혈사 나한전(보물)의 문창살에 새겨진 연꽃·학·게 등이 매우 아름답다. 토요일에 영주 일대를 여행할 예정이라면 영주역에서 아침 9시30분에 출발하는 당일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할 만하다. 1코스(선비여행)는 무섬마을·선비촌·소수서원·부석사를 둘러보고, 2코스(힐링여행)는 무섬마을과 죽령옛길을 찾아간다.

여행 문의 영주시청 관광산업과 (054)639-6621, 소수서원 (054)639-5852, 선비촌 (054)638-5831, 무섬마을 (054)63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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