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넝쿨이 퍼졌던 마당에
장미나무는 늙어서 죽었는지
호박 줄기가 꽃을 피웠고
우물은 자취가 없었다.
동생을 낳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옷가지를 태우던 기억,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소리치며 초혼을 했던지
50년이 넘은 기억은 가물거리며
골목길을 몇 번이고 맴돌았다.
돌아갈 수 없는 기억의 저편으로
소리치며 달려가고 싶었지만
뒷마당에서 사라진 살구나무처럼
내 몸도 밀려나고 있었다.
뒷길을 나서서 한없이 올라가면
맞닿은 태백준령이 동해를 막아선 곳에는
산길에서 비틀거리던 나무꾼 아비를
마중나간 아들이 울먹거리던 그림자가 남았고
아비도 없는 세상에서 아들은 늙었다.
신산스러웠던 삶의 적막을 헤치고
봄이면 종달새를 따라 올라가던 냇가에서
버들가지를 꺾고 보리밭을 바라보았지.
모두가 사라졌는지, 산속에 숨어버렸는지
잃어버린 것들은 기억에서 떠나고
용소(龍沼)에서 부들을 꺾었는데
아낙은 호미를 들고 콩밭에 들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