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우주배경복사/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11. 14. 09:19
 

과학과학일반

태초의 빛이 138억년의 비밀을 알려주리라

등록 :2015-11-13 15:01수정 :2015-11-13 20:28

 

지난해 10월 활동을 끝낸 유럽우주국(ESA)의 우주망원경 플랑크의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주 가스·먼지 지도.  유럽우주국·미국항공우주국 공동 제공
지난해 10월 활동을 끝낸 유럽우주국(ESA)의 우주망원경 플랑크의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주 가스·먼지 지도. 유럽우주국·미국항공우주국 공동 제공
[토요판] 별 / 우주론 ② 우주배경복사
▶ 성경에서 신은 세상을 창조하면서 가장 먼저 ‘빛’을 만든다. 정설로 굳어진 빅뱅 이론에서도 빛은 우주의 탄생과 형성 초기인 ‘우주력’ 38만년께에 만들어졌다. 이 ‘태초의 빛’은 아직도 우주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떠돌고 있다. 오늘날 우주에서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빛 중에도 이 태초의 빛이 섞여 있다. 우주의 비밀에 관한 실마리가 이 빛에 담겼다. 빅뱅 이론을 설명한 지난 회에 이어, 우주배경복사에 관한 이강환 박사의 우주론 두번째 글이다.

우주는 138억년 전 ‘빅뱅’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팽창을 계속한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우주의 나이는 100억~200억년이었다.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안다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략 140억년도 아니고, 138억년이라는 확실한 숫자가 등장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태양은 우주에 무수한 별 중 하나다. 인간은 그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 지구에 살면서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주는 실험을 할 수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 어떤 조작을 가할 수도 없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우주에서 오는 극히 미약한 빛을 관측할 뿐이다. 그런데 우주에서 오는 그 약한 빛 중 우주 탄생과 진화의 비밀을 가득 담고 있는 소중한 빛이 있다. 그 빛의 이름은 우주배경복사라 한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빛이기에 ‘태초의 빛’이라고도 불린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막 태어난 우주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좁은 영역에 서로 뒤섞여 있는 뜨겁고 복잡한 곳이었다. 이때의 우주는 온도가 너무 높아 입자들이 모두 빠르게 움직이는데다 밀도도 높아서 빛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빛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천천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초기 우주의 특정 시점에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우주가 태어난 지 약 38만년 뒤, 우주의 온도가 약 3000℃일 때, 각각 전하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던 원자핵과 전자들이 서로 결합해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가 만들어진다. 빛은 중성인 입자와는 상호작용을 잘 하지 않는다. 우주가 팽창해 입자들의 밀도가 낮아지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이런 이유 때문에 빛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됐다. 이 순간 자유롭게 빠져나온 빛을 우리가 지금도 관측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주배경복사다.

우주 온도는 우주의 팽창과 함께 식어서 지금은 절대온도(K) 3°(약 -270℃)가 됐다. 그래서 처음 방출될 때 가시광선과 적외선이었던 우주배경복사가 지금은 초단파와 전파로 관측된다. 이 빛은 우주가 태어난 지 38만년 이후에 나온 빛이지만, 이전에는 사실상 빛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초의 빛이라고 불린다.

우주배경복사는 처음 방출된 이후로 우주의 팽창 이외의 다른 원인에 의해서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 우주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해 우주의 과거 모습을 알 수 있고, 그것에 기반해 현재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우주배경복사를 우주론에 처음으로 등장시킨 사람은 빅뱅 이론을 처음 제안한 러시아 출신의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였다. 1948년 가모프는 제자인 랠프 알퍼와 박사후 연구원 로버트 허먼과 함께 빅뱅 당시 엄청난 고온 상태였던 우주가 팽창과 함께 냉각해 오늘날 절대온도 5° 정도에 이르게 됐다고 계산했다. 이 온도는 현재 우주에 고르게 퍼져 있어야 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복사는 우주배경복사의 형태로 지금도 관측이 돼야 한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들 연구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알퍼의 증언에 따르면 가모프조차도 이 계산 결과에 대해 미심쩍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복사를 보고 싶어했다 하더라도 당시로는 그것을 관측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다.

‘태초의 빛’이라 불리는 우주배경복사를 최초로 관측해 1978년 노벨상을 수상한 아노 펜지어스(오른쪽)와 로버트 윌
슨. 뒤쪽으로 이들이 사용한 미국 뉴저지 벨 연구소의 전파망원경이 보인다. theskyscrapers.org 제공
‘태초의 빛’이라 불리는 우주배경복사를 최초로 관측해 1978년 노벨상을 수상한 아노 펜지어스(오른쪽)와 로버트 윌 슨. 뒤쪽으로 이들이 사용한 미국 뉴저지 벨 연구소의 전파망원경이 보인다. theskyscrapers.org 제공
우주배경복사가 우주론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빅뱅 이론과 정상상태 이론이 팽팽하게 맞서던 1960년대였다.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벨 연구소의 연구원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은 통신 위성의 신호를 받던 안테나를 전파망원경으로 개조해 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전파망원경은 우주에서 오는 전파신호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너무나 강한 잡음이 섞여 있었다. 이 잡음은 모든 방향에서 감지됐기 때문에 처음에 그들은 잡음이 우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망원경의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망원경을 모두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기도 하고, 망원경의 표면에 묻어 있는 비둘기의 배설물까지 닦아냈다. 하지만 잡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야 알게 된 우주 나이는
138억년…우주는 줄곧 팽창중
우주력 38만년에 빠져나온 빛
초기 우주 모습 그대로 간직한
‘태초의 빛’ 되어 떠돌고 있어

1960년대 우주배경복사 발견
“신의 얼굴 보는 것과 같다”
우주의 과거·나이 등 알게 돼
우주망원경 3대나 쏘아올려
우주 이해하는 ‘희망의 빛’

노벨상 안긴 ‘잡음’

그러던 중 펜지어스는 학회에서 만난 동료 천문학자에게서 불과 60㎞ 떨어진 프린스턴대학의 천문학과 교수 로버트 디키와 그 연구원들이 우주에서 오는 잡음과 비슷한 신호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펜지어스는 프린스턴대학으로 연락을 했고, 디키는 자신의 팀원들과 연구실에서 점심 모임을 하던 중에 전화를 받았다. 펜지어스에게서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감지되는 신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디키는 곧바로 그것이 바로 자신들이 찾던 우주배경복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전화를 끊은 디키는 자기 팀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가 한발 늦었습니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했고 그 공로로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의 상사인 벨 연구소의 이반 카미노프는 그들의 행운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들은 똥을 찾다 금을 발견했다. 우리들 대부분의 경험과는 정반대다.”

하지만 펜지어스와 윌슨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우주배경복사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았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데이비드 윌킨슨은 그들의 업적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들은 정말 기가 막힌 장비를 만들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전파망원경 전문가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말았을 상황에서도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사실 1978년 노벨 물리학상에 대해 가장 억울해야 할 사람은 우주배경복사를 처음으로 예측했던 랠프 알퍼였다. 우주배경복사 발견이 노벨상을 수여할 만한 대단한 업적이라면 그것을 이론적으로 예측한 업적에도 노벨상이 수여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안타깝게도 알퍼는 펜지어스가 노벨상 시상식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언급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과학자들의 다음 목표는 균일한 우주배경복사에 숨어 있는 미세한 온도 차이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배경복사는 전체적으로 균일해야 하지만 완벽하게 균일해서는 안 된다. 우주 전체가 완벽하게 균일하다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은하나 별들이 만들어질 수가 없었고 결국 우리 자신도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주배경복사에는 현재 우주의 은하와 별들의 ‘씨앗’이 되는 미세한 온도 변화가 남아 있어야만 한다. 이 미세한 온도 변화는 밀도의 미세한 차이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인데 여기서 밀도가 미세하게 높은 부분이 성장하여 은하와 별들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 미세한 온도 변화를 관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온도 변화는 평균 온도에서 약 10만분의 1 정도의 차이로 나타나는데 이 정도의 정밀도로 관측을 하기 위해서는 우주망원경이 필수적이다. 1989년 11월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온도 변화를 찾기 위해서 코비(COBE)라는 우주망원경이 발사됐다. 코비는 3년에 걸친 관측으로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온도 변화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이 온도 변화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이것의 발견은 빅뱅 이론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 것이었다.

1992년 이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이 발견을 주도한 조지 스무트는 “만일 당신이 종교를 믿는다면 이것은 신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신의 얼굴을 보다’라는 제목으로 주요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이 발견의 공로로 코비 프로젝트를 주도한 존 매더와 조지 스무트는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우주망원경 코비를 통해 큰 성공을 거뒀지만, 우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더 정밀한 우주배경복사 관측이 필요했다.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온도 변화는 밀도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고 이것 때문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은하와 별들이 만들어졌다. 우주배경복사에서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온도 변화가 있는 지점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관측해야 했다. 코비를 통해 일단 미세한 온도 변화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온도 변화가 있는 지점의 크기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코비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 우주망원경이 필요했다. 2001년에 발사된 더블유맵(WMAP·우주배경복사탐사위성)은 우주배경복사에서 온도 변화가 있는 지점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 우주망원경이었다. 우주배경복사에서 온도 변화가 있는 지점의 크기를 측정해 이 패턴을 그린 그림을 ‘파워 스펙트럼’이라고 하는데, 관측으로 구한 파워 스펙트럼과 이론적으로 계산한 결과를 비교하면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플랑크 위성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 동안 우주 초기 빛의 흔적인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우주배경복사 파장의 차이, 가스와 먼지의 성질과 분포, 은하의 구조 등에 대한 정밀한 분석은 우주 탄생에 대한 실마리로 이어진다. 유럽우주국·미국항공우주국 공동 제공
플랑크 위성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 동안 우주 초기 빛의 흔적인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우주배경복사 파장의 차이, 가스와 먼지의 성질과 분포, 은하의 구조 등에 대한 정밀한 분석은 우주 탄생에 대한 실마리로 이어진다. 유럽우주국·미국항공우주국 공동 제공

코비·더블유맵·플랑크

우주배경복사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우주의 과거 모습, 현재 우주의 에너지 분포 비율, 우주의 나이 등이다. 한마디로 우리 우주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우주배경복사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우주에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얼마나 있는지, 우주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됐다. 우주배경복사에서 정보를 얻어내는 데 중요한 것은 온도 변화가 있는 지점의 크기인데, 더 작은 크기까지 정밀하게 관측하면 더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 ‘플랑크’는 온도 변화가 있는 지점의 크기를 더블유맵보다 더 정밀하게 관측하기 위해 발사된 우주망원경으로, 유럽우주국(ESA)이 주도해 2009년에 발사됐다. 우주배경복사만을 관측하기 위한 우주망원경이 불과 20년 사이 3대나 발사된 것이다.

플랑크의 관측 결과로 우리는 우주에 대한 정보를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됐다. 우리 우주의 나이는 2000년대 중반부터 137억년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더블유맵이 관측한 우주배경복사를 분석해 얻은 결과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138억년이 우리 우주의 공식적인 나이가 됐다. 플랑크가 우주배경복사를 더 정밀하게 관측해 우주의 나이를 더 정확한 값으로 수정한 것이다. 우리 우주를 이해하는 데 우주배경복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플랑크는 지금도 우주배경복사를 계속 관측해 정밀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플랑크는 우주배경복사의 편광 관측을 통해 빅뱅 직후에 일어난 인플레이션의 증거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주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나온 태초의 빛은 우리가 우주의 신비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희망의 빛이기도 하다.

이강환 국립과천과학관 천문우주전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