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의 첫 국가장에 현직 대통령이 불참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나타난 사회적 추모 열기 속에서 박 대통령은 혼자 ‘외딴섬’처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어느 틈엔가 ‘김영삼’의 반대말이 ‘박근혜’처럼 되어버렸다. 그것은 단지 김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악연이나, 고인과 박 대통령 사이에 형성된 과거의 껄끄러운 관계 탓만은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 꽉 막힌 불통의 리더십이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업적과 매력적인 인간적 면모가 추앙될수록 박 대통령이 초라해지는 상황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를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최근의 국무회의 발언 등을 보면 추모 열기를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이런 기류는 김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읽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일제 잔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세우기” 등은 말하면서도, 정작 고인의 최대 업적인 반독재 민주화 투쟁, 군정 종식 등에 대한 헌사는 거의 없었다. 민주화의 산증인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애써 외면하는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등이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꼴찌”라는 자신의 과거 발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시대 분위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열기는 보여준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이제 박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려 할수록 마이너스 효과가 빚어지게 됐다는 점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온 국민이 과거 독재정치 시절에 대한 ‘산 역사공부’를 하게 되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겨냥하고 있는 박정희 시대의 미화라는 목표도 허망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긍정적 유산 못지않게 마이너스 유산도 많이 남긴 정치인이다. 박 대통령이 진정 김 전 대통령을 이기고 싶다면 고인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경계하려고 노력할 일이다. ‘통 큰 리더십’은 본받고, ‘1인 보스 정치’의 폐해는 떨치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거꾸로만 가고 있다. 냉정하고 속 좁은 깨알 리더십은 영결식 불참에서도 확인됐다. 다음 총선에서 친박 세력들을 공천하려고 발벗고 나서는 등 여전히 철 지난 보스 정치에도 매달리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경시의 문제점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다. 박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자신의 말을 거꾸로 새기길 바란다. 이대로 가다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꼴찌”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음을 말이다.
[사설] 끝까지 김영삼의 ‘민주화’ 정신 외면한 박근혜 정부
등록 :2015-11-26 18:34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해 운구를 지켜보며 고인을 배웅하는 것으로 대신했을 뿐이다. 해외순방에 따른 감기와 피로누적 등 건강상의 이유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건강보다는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쓴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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