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지 마라. 오히려 안정될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왈츠가 살아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왈츠는 더 많은 국가가 핵무기를 가지면 오히려 평화가 온다고 말했다. 그의 ‘핵 평화론’에서 핵무기란 ‘보복당할 줄 알기 때문에 공격할 수 없는’ 그래서 ‘미치지 않고서야 사용할 수 없는 무기’다. 물론 ‘너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왈츠의 이론은 틀렸다. 세상은 합리적이지 않고 정부는 이성적이지 않다.
당장 한반도를 봐라. 핵무기는 절멸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데, 그래서 있는 불씨라도 꺼야 하는데, 오히려 재래식 충돌의 가능성을 높인다. 북한의 핵 억지력은 오히려 지역의 불안정을 격화시킨다. 외교가 사라진 지 8년이 넘었지만, 해결할 생각이 없고 비난만 한다. 대북정책을 수정한다고 하는데, 언제 대북정책이 존재한 적이 있는가? ‘반미’할 것도 아니면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수준 이하의 정치인도 꼭 한두명 등장한다. 평상시에는 중국 봉쇄에 나섰던 국가들이 북한이 핵실험만 하면 중국만 바라본다. 중국의 대응이 과거와 다를 거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유엔 안보리의 제재 수준은 중국이 받아들일 만큼에서 결정된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면 미국은 다시 방관하고 한국은 뚱딴지같은 통일 얘기를 계속할 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기술적 결함을 보완해서 5차 핵실험에 나설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겪었고, 앞으로 겪을 북핵문제다. 이 ‘빌어먹을’ 연속극의 재방송에서 달라지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바로 북한의 핵능력이다. 핵물질과 핵무기의 수는 늘고, 조만간 미사일에 탑재할 만큼 핵무기는 소형화될 것이다. 이렇게 북한의 핵 보유를 구경만 해야 하는가?
핵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려는 이유는 과거 한국의 박정희 정부나 대만의 장징궈 정부가 핵무기를 개발하려던 동기와 다르지 않다. 두려움 때문이다. 침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말이다. 그래서 북한의 핵무기는 한반도 냉전체제의 산물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관계의 성격이다.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핵무기를 가져도 재래식 제한전쟁이 일어나고, 반대로 양국 관계가 나아지면 핵무기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처럼 친구가 되면 서로 핵무기를 가질 이유가 없다.
힘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일방적이고 근거가 없고 비현실적이다. 2003년 리비아가 혹은 2015년의 이란이 어떻게 핵무기를 포기했는가? 강력한 제재의 효과를 말하지만, 분명히 다른 측면이 있었다. 핵을 포기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 말이다. 협상의 본질은 선후의 문제도 아니고 돈의 힘도 아니다. 신뢰를 쌓아서 두려움을 해소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비핵지대화도 그런 인내의 과정을 거쳤다.
북핵문제가 걸어온 길을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협상의 실패를 말하지만, 언제 인내심을 갖고 협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지난 25년의 북핵 역사에서 협상은 짧았고 제재는 길었다. 협상은 자주 깜박거렸지만, 제재의 불빛은 한번도 꺼진 적이 없다. 제재는 북한을 핵무기 개발로 재촉했을 뿐이다.
전쟁은 어렵고 제재는 효과가 없다. 구경꾼이 아니라 해결의 당사자가 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야당도 정신 차려야 한다. 평화가 시대정신이고, 무능의 역주행을 막아야 한다. 황혼이 지면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개를 편다고 했는데, 왜 권력의 ‘개’들만 저리 요란하게 짓는가?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