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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에게 ‘독도의 진실’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독도학술상 수상 재일동포 박병섭/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 24. 22:24

“일본인들에게 ‘독도의 진실’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등록 :2016-01-24 21:21

 

 왼쪽이  ‘독도학술상’ 수상 재일동포 박병섭씨.
왼쪽이 ‘독도학술상’ 수상 재일동포 박병섭씨.
[짬] ‘독도학술상’ 수상 재일동포 박병섭씨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독도가 어느 나라 영토인지 따져보자’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만일에 수용한다면 재판관은 누구 손을 들어줄까? 재일동포 독도 연구자 박병섭(74)씨는 ‘일본이 큰소리치지만, 실증적·논리적으로만 따진다면 절대 일본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다. “1954년이던가,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때 두 나라 대표들이 이 문제로 4번 왔다 갔다 했는데, 당시는 한국 정부 쪽이 거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그때는 일본 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기만 하면 이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 점차 독도에 관한 연구들이 진척을 보이고 태정관 자료까지 발굴되는 등 일본에 불리한 자료들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나온 자료들로 볼 때 이젠 일본 쪽이 훨씬 불리하다.”

지난 20일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호섭·오른쪽)이 수여한 제6회 ‘독도 학술상’을 받기 위해 서울에 온 박씨를 22일 만났다.

엔지니어 일하며 ‘반월성 통신’ 운영
2005년 ‘다케시마의 날’ 제정 계기
‘일본 독도 영유권 반박’ 집중 연구

외무성 누리집·교과서서 ‘독도 왜곡’
“방치하면 후대에 문제 심각해질 것”
‘대한제국 칙령’ 등 반증자료 찾아야

박씨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자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일본 국민들을 향한 (정치)선전용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결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관련 당사국들 간 합의 없이는 제소 자체가 불가능한데,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이에 합의하게 되면 독도가 국제적 분쟁지임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오히려 대내외 선전용으로 역이용하려는 일본 우파 지배세력의 주장 자체가 근거없는 것임을 논파할 수 있는 작업은 해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 맥락에서도 박씨의 연구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재단은 박씨가 “지난 20년간 일본에서 독도 관련 누리집 ‘반월성(半月城) 통신’(han.org/a/half-moon)을 운영하며 독도 관련 자료를 축적하고 <독도어업사><안용복 사건에 대한 검증>을 비롯한 저서와 논문을 다수 집필하는 등 한일 간 독도와 역사 갈등 현안을 꾸준히 연구하고, 해결 방안을 제안해왔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95년부터 운영 중인 ‘반월성 통신’에는 근현대사, 죽도=독도, 재일한국인, 고대-근세사 등 분야별로 그가 쓰고 모은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나이토 세이추 시마네대학 명예교수와 공저인 <죽도=독도 논쟁>은 일본 도서관협회 선정 추천도서가 됐다.

“일본에도 외무성 등 자국 정부의 독도 관련 주장의 진실성에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거기에 동조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일본인 대다수는 독도 문제에 거의 관심이 없다.” 박씨는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적어놓고 있지만 실은 그 근거가 매우 박약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또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외무성 주장을 그대로 믿고 있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들어 일본 정부가 외무성·방위성 홈페이지나 백서에 독도가 자국 영토임을 명기한 내용을 올리고, 학교 교과서에도 이를 싣는 등 “특히 교육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을 걱정했다.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기 시작하면, 독도를 당연히 자국 영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 것이고 10~20년 뒤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아르헨티나 앞바다에 있는 영국령 포클랜드제도(말비나스섬) 영유권을 둘러싸고 82년에 두 나라가 전쟁까지 벌인 것도 아르헨티나 쪽의 역사교육 효과라는 지적들이 있었다.

“해법은 진실을 알리는 것뿐”이라고 박씨는 말했다. 그는 우선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제시해놓은 두 가지 사실, ‘에도시대 초기 막부가 호키한(번) 민가에 울릉도·독도를 하사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막부가 울릉도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는 주장(1696년의 ‘다케시마 잇켄’) 역시 거짓이라고 반박한다.

박씨는 일본인의 도해를 금지하고자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영토로 표시해놓은 일본 막부의 공식 지도들을 비롯해 1869년 외무성 조사관의 보고서, 메이지 시대 정부 최고기관인 태정관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 외’라고 명기한 1877년 문서 등도 제시했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제로 2년 전 일본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독도 영유권 관련 공개 심포지엄에서 그는 ‘일본 정통 우익조직 잇스이카이(一水會) 회장’ ‘총련 쪽 연구자’와 3자 토론을 벌인 적도 있다. 그때 일본 쪽 잇스이카이 회장은 “거의 한마디도 제대로 대꾸하지 못했다”고 그는 전했다.

도쿄교육대(쓰쿠바대 전신) 석사 출신의 가스화학 분석 엔지니어인 그는 30년간 기업에서 일하면서 주로 사이버공간을 통해 위안부, 일본의 전쟁책임, 전후배상·보상, 야스쿠니, 재일한국인 차별과 인권·시민권 문제, 한일 역사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오다 2005년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자 독도 문제에 집중해왔다.

박씨는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1900년 10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 적시한 ‘석도’가 ‘독도’란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칙령은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울도군수가 관장하도록 법을 개정하면서 그 관할구역을 울릉 전도와 죽도(竹島)·석도(石島)로 규정해놓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