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前총리 "아베, 사죄문 대독시킨건 잘못"
[日 오이타 시골서 만난 무라야마 "韓日 위안부합의 꼭 지켜야"]- 흰눈썹 추켜올리며 쓴소리 아베의 생각 한국에 전달안돼, 나였다면 내가 직접 읽었다..양국합의 정말 간신히 온 것.. 한국도 제발 일본 善意 인정을- 日 우경화 점점 더 심해질 것 올해 극우파 '역사검증본부' 도쿄전범재판 검증한다지만 할 테면 해보라고 하라.. 우경화 맞서는 흐름도 강해질것조선일보오이타/김수혜 특파원입력2016.02.01. 03:09
"한국에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한 일이니까 일본이 사죄를 하고 확실하게 성의를 보이고 해결해야지요. 아베 총리가 어떻게든 해결하고 이야기를 진전시켜 가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명확하게 한국에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무라야마 전 총리가 이처럼 아베 총리를 꾸짖는 건, 아베 총리가 직접 한·일 국민 앞에 나서지 않고 총리 명의 사죄문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에게 대독시킨 뒤 자기는 나중에 전화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죄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나였다면 직접 확실하게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사회당(현재 사민당)이 낳은 첫 총리다. 그는 "나는 총리가 되고 싶다고 노려서 된 사람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밀려가서 된 사람이고, 그렇다면 나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게 일본의 식민 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 발표였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한 '아시아여성기금' 조성이었다. 그는 자기 나라 일본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그와 똑같은 강도로 "한국 역시 제발 일본의 선의를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다.
"위안소는 일본 정부가 군대 작전상 필요해서 만들었습니다. 다만 군대가 직접 만들 수는 없으니까 민간에 위탁했지요. 그래도 만들게 한 책임은 정부에 있으니까 나라의 책임을 인정하고 어떻게든 배상하고 싶다고 총리 재임 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일협정으로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니까, 어떻게든 해보려고 일본 국민이 모금을 한 겁니다."
요컨대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동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우리로선 그때나 지금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무라야마 전 총리가 "식민 지배는 잘못"이었다고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분명하게 밝혀뒀기 때문에, 그 뒤 20년간 온갖 일이 다 벌어졌어도 한·일 관계가 '최악의 파국'만은 면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혹시 미래도 과거만큼 어려울까. 무라야마 전 총리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아쉽지만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정말, 간신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아베 총리가 평화 헌법 개헌을 시도할 때 한국이 반대해야 할지 침묵해야 할지에 대해 무라야마 전 총리는 "나는 개헌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한국도 역시 반대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예를 들어 중국이 군비 확장을 하고, 미국이 거기 대항하는 전력을 키우면, 위기를 높일 뿐입니다. 아베 총리가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는데, 나는 (전력을 키우고 위기를 부추기는 행동을 하면서) '평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베 총리가 '가치관 외교'라는 말을 쓰는데, 그건 독선적 내셔널리즘입니다. 중국은 법치국가가 아니고 일본과 가치관이 다른 국가라는 얘기인데, 그런 말 밑바탕에는 '일본이 중국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한국과 안보 협력을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데 대해 "군사협력을 늘리는 것보다, 한·일이 (지금까지처럼 의사소통이 막히지 않게) 소통이 잘되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올해 한·일 관계를 위협하는 복병 중 하나가 자민당의 이른바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생각하는 본부'(이하 역사검증본부)다.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극우 매파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자민당 정조회장이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을 단죄한 도쿄전범재판을 검증하자고 제안해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청일전쟁·러일전쟁도 검증 타깃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런 게 바로 일본의 우경화인데, 사실 이런 건 앞으로도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검증하고 싶으면 검증하라고 해요. 하지만 (아무리 극우파라 해도) 도쿄재판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도쿄재판을 받아들임으로써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성립했고, 그 위에서 지금의 일본이 있으니까요. 우경화 흐름도 강해지겠지만, 그럴수록 우경화에 맞서는 흐름도 강 해질 겁니다. 어때요, 오이타까지 온 보람이 있소?"
[전직 총리 집인데… 초소·초인종도 없었다]
- 평범한 2층 자택의 무라야마
수행원 없이 혼자 외출·인터뷰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를 인터뷰하러 간 날 두 번 놀랐다. 전직 총리가 사는 집인데 초소도 경호원도 없었다. 문패를 보니 이 집이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초인종이 없었다. 알고 보니 원래 현관만 걸고 산다고 했다.
그가 사는 집은 오이타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회색 기와를 이고 있는 평범한 2층 단독주택이었다. 지금은 별세한 한 살 아래 부인이 오이타 현청에서 25년 이상 식당을 운영하며 정치하는 남편 대신 살림을 도맡았다. 남편이 유명해진 뒤에도 부인이 이웃과 소박하게 어울려 평이 좋았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장화 신고 물건 떼러 나가는 생활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부인은 "남편이 돈벌이는 무리인 양반"이라고 했었다. 총리 재임 시절엔 부인 대신 둘째딸이 도쿄에 올라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도 동네 식당이건, 외신 인터뷰건, 사민당 유세장이건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닌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한·일 기자들이 전화하면 본인이 직접 받아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논평한다. 최근 국내에 '무라야마 도미이치 회고록'(한국외대지식출판원)이 출판됐다.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한 세기에 가까운 인생 역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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