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원료공급지화’ 과정 담긴
1934년작 ‘북선의 양을 말하다’ 등
러시아서 2편·독일서 5편 새로 나와
일제 강점기 조선의 사회상을 담은 희귀 기록영상이 러시아와 독일에서 새로 발굴돼 일반에 공개된다. 당시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며, 일제의 경제수탈 정책의 현장을 기록한 것도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5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일제 강점기 기록영상 공개 언론시사회’를 열고 미공개 기록영상 7편을 공개했다. 이는 1920~30년대 우리의 생활상과 일제의 경제정책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러시아와 독일에서 각각 2편, 5편을 발굴한 것이다.
2010년 러시아영상자료원에서 발굴한 일제의 기록영화 <북선(北鮮)의 양을 말하다>(1934)는 22분 분량으로 양떼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조선으로 수입되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일제는 당시 섬유수출에서 영국과 경쟁하고 있었는데, 조선을 그들의 원료공급지로 만들고자 ‘남면북양’ 정책을 실시했다. 조선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남쪽은 면화를 재배하고, 북쪽은 양을 기르도록 한 것이다.
영화는 1934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배편으로 수입된 양떼가 ‘북선 3항’ 가운데 하나인 함경북도 웅기에서 하역된 뒤, 철도로 경원의 동척목장으로 옮겨져 사육됐음을 기록하고 있다. 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은 일제의 대표적인 수탈기구였는데, 동척 산하에 목장까지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는 “양모 수입을 위해 매년 2억엔이 쓰인다. 수입대체를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의 자막도 보인다. 송규진 고려대 교수(한국학)는 “남면북양 정책과 관련해 ‘북양’ 쪽은 연구가 너무 부족했다. 이번 영상물 발굴이 새로운 연구의 계기가 될 듯하다”고 했다.
함께 발굴된 5분 분량의 ‘황해도 축산공진회 영상’(제목 미상)은 1924년 10월 황해도 사리원에서 열린 공진회장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에서 촬영한 영상이다. 공진회는 각종 제품을 한곳에 모아놓고 품평하는 대규모 상업행사인데, 황해도에선 축산물만 따로 취급한 행사가 열린 것이다.
이와 함께, 독일에서 발굴한 5편의 영상기록은 독일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찍은 것이다. 베버 신부는 1925년 5개월 동안 서울과 원산, 금강산, 만주를 여행하면서 조선의 풍물을 촬영했다.
이들 가운데 장편기록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1927)의 고해상도 컬러 착색본도 포함돼 있다. 2009년 한국에서 디브이디로 출시된 적이 있는 작품으로, 이번엔 4시간 분량의 편집 전 원본 필름이 새로 발굴된 것이다. 나머지는 <한국의 결혼식> 등 20분 안팎 분량의 단편이다. 베버 신부가 원장으로 있었던 독일 뮌헨 성오틸리엔 수도원의 지하실에서 발굴해 낸 것이다. 영상자료원은 오는 3월1일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 코파(KOFA)에서 일반에 무료로 공개할 예정이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일제 기록영화 <북선의 양을 말하다>(1934).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독일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촬영한 단편 <한국의 결혼식>. 한국영상자료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