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이종걸 원내대표가 2월29일 밤 동료 의원에게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김종인 대표로부터 “이러다가 선거 망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라는 꾸지람을 듣고 필리버스터를 포기한 직후다. 현장을 지켜본 당 관계자는 “거의 국회의원이 보좌관 불러 놓고 야단치는 모습이었다”고 묘사했다. 김종인 대표는 지금 더민주의 ‘전제군주’다.
하지만 ‘왕정복고’에는 이 원내대표도 한몫 톡톡히 했다. 그는 문재인 대표 시절 ‘언론의 자유’를 맘껏 누렸다. 재신임 투표를 하려는 문재인 대표를 향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유신을 떠오르게 한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당의 질서는 붕괴됐고 대신 ‘절대왕정’이 들어섰다. 이 원내대표로서는 황당한 일일 것이다.
당황스럽기로는 문재인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비주류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받으면서도 “일점일획도 건드릴 수 없다”며 지켜낸 게 김상곤 혁신위가 만든 시스템 공천이었다. 하지만 김종인 대표의 말 한마디에 혁신안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구겨지고 말았다. 혁신안이 폐기되던 그 시각 혁신위원들의 단체 카톡방에서는 “지난여름 우리가 흘린 땀은 무엇이었나?”라는 자탄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문 전 대표는 그저 ‘벙어리 냉가슴’이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게 헛되도다.” 아마도 그는 혼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되뇌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망하기로 치면 안철수 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안 대표가 문재인 대표와 각을 세우기 시작한 시발점이 “혁신은 실패했다”는 선언이었다. 지루한 혁신 논쟁의 귀결은 탈당이었다. 그런데 김상곤 혁신안의 핵심인 20% 컷오프를 국민의당이 슬그머니 채택했다. 거꾸로 더민주에서는 20% 컷오프 대상자를 구제하기 위한 당규가 개정됐다. 처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한 달 전 안 대표는 “국민의당이 나오자 콘크리트 같던 새누리당의 지지율 40%가 35%대로 떨어졌다”고 득의만만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지지율은 8%다. 더민주에 있을 때의 지지도다. 격노하고 폭발하며 한참을 돌파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원점이다.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탈당했는데 지금 그는 친안 패권주의 소리를 듣고 있다. 무에 그리 분노스러웠는지 허탈하기만 하다.
국민의당에 있는 광주 출신 의원들을 보노라면 허탈함을 넘어 블랙코미디다. 더민주에 있을 때 이들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당을 흔들어댔고 마침내 국민의당을 만들어내는 성공신화를 써냈다. 당을 떠나면서는 온갖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스스로 만든 당에서 공천 탈락 1순위로 내몰리고 있다. ‘친노 피해 왔더니 이번엔 친안이냐’며 입이 댓 발은 나와 있다. 자신의 처지를 돌아볼 때 헛웃음만 나오지 않을까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 하지 마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열심히 싸우고 허물고 쌓아 올리면서 긴 세월을 달려왔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실패의 기록뿐”이라고 했다. 지금의 야당에 딱 맞는 말이다.
다 분열 때문이다. 뼈와 살이 서로 다투니 성한 곳이 하나 없다. 양희은의 노래 <작은 연못> 속 붕어 두 마리처럼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엔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큰 붕어가 죽는 거야 아깝지 않다. 그러나 그 연못에서 어쩌지 못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미물들은 어쩌란 말인가. ‘검은 물만 고인 채 한없는 세월 속을 말없이 몸짓으로 헤매다 수많은 계절을 맞’으란 말인가?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김의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