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해서 발 못 떼는 그 맛…인제 가면 언제 다시 | |
[한겨레 특집] 인제포토워크숍 | 인제 맛 | |
박미향 기자 | |
고흐의 명화가 튀어나왔나 그 풍경이 고스란하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일상이다 그 중에서도 감자투생가 일품 첫사랑처럼 씹을수록 깊은 맛이다
어계탕이라고 들어나 보셨나
1능-2표-3송, 이건 뭘까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명작 중에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있다. 힘겨운 노동을 마친 농부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먹고 있는 그림이다. 명화는 명화다. 감자는 손이 델 정도로 뜨거워 보이고 향은 화폭을 뚫고 나온다. 강원도 인제는 예부터 고흐의 명작 속 풍경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논이 적고 밭이 많은 강원도의 감자사랑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인제도 역시 강원도였다.
15년 넘게 향토음식 한 길
지난달 9월29일 새벽 6시. 부스스한 눈을 부릅뜨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인제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잠에 취해 버스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러다니니 감자가 따로 없다 싶었다. 2시간20분 만에 도착한 인제 시외버스터미널은 알싸한 초가을 바람이 잔뜩 기를 펴고 있었다. 인제군생활개선회 내린음식연구 회장인 유옥선(57)씨를 찾아 나섰다. 그는 15년이 넘게 인제의 향토음식을 붙잡고 있는 이다. 그가 들려주는 인제의 옛 음식이야기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처럼 정겨웠다.
유씨는 “감자떡, 감자옹심이, 감자부침개는 기본이죠, 감자투생이 아나요?” 유씨가 알려주는 인제 감자투생이는 특별하다. 감자투생이는 원래 간 감자의 건더기와 녹말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강낭콩을 섞어 쪄먹는 음식이다. 인제의 감자투생이는 감자전분으로 반죽해서 큰 수제비 덩이 정도로 빚어 익힌다. 그것을 살짝 익은 감자 덩이 위에 강낭콩과 함께 얹어 “한 번 더 푹 익혀 먹는” 음식이었다.
설탕은 노! 별다른 간을 하지 않는다. 첫 맛은? 미숙한 이의 첫사랑처럼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분자분 씹다보면 ‘엄청난 담백한 맛’이 몰려온다. 그것이 바로 인제 감자투생이의 매력이다. 욕심이 사라진다.
옥수수 음식은 또 어떤가. 말린 옥수수를 절구에 빻아 껍질을 벗기고 팥과 함께 삶으면 떡이 된다. 찰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도 있다. 거친 노동을 한 뒤에 한 잔 걸치는 술이다. 옥수수전분으로 만드는 올챙이국수나 칡잎 위에 옥수수가루와 설탕, 강낭콩을 얹고 쪄먹는 옥수수칡잎떡도 향기로운 인제의 음식이다.
소박한 도토리다식에 입이 개운 가을이 되면 지천에 널린 도토리를 주워서 도토리밥을 만들어 먹었다. 유씨는 전통음식을 더 발전시켜 도토리다식을 개발했다. 도토리가루로 만든 다식은 도시의 유명한 디저트카페의 부드러운 맛에 소박함을 얹었다. 다식 위에 냉큼 올라간 잣은 고소하다.
그는 ‘요리천국’(033-461-8774)이라는 한정식집을 운영한다. 집에서 직접 담근 장으로 맛을 낸다. ‘어계탕’은 신기하다. 붕어를 뼈가 죽처럼 물러질 때까지 삶은 뒤에 토종닭을 넣어 한 번 더 삶는 일종의 삼계탕 같은 것이다. ‘어계탕’은 2005년 ‘강원도 관광음식요리경연대회’에서 금상을 타기도 했다.
한참을 소박한 맛에 취해있을 때쯤 빨간 고추장에 저린 송이를 내온다. 아! 그 말로만 듣던 금송이! “예전에는 흔했어요. 고추장 항아리에 쿡쿡 박아두고 겨울내내 먹었어요.” 지금 송이는 산림청과 계약을 맺은 송이 채집인만 딸 수 있다. 그 옛날 인제사람들은 그저 뒷산 소나무 아래서 심심하면 캐먹던 것이었다. 현재 인제 송이 채집인은 15명이다.
송이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임산물이다. 소나무 아래서만 자라기 때문에 귀하다. 재배가 안 되고 수요가 많아 가격도 비싸다. 송이가 생산되는 국유림은 송이철이 되면 통제를 한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절기상 백로(9월8일)부터 10월 중순까지다. 인제는 송이로 유명한 양양보다 열흘 먼저 송이채집이 가능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인제사람들이 제일로 치는 버섯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자연산 능이버섯이다. ‘1능-2표-3송’이라는 말이 있다. 맛이 능이버섯, 표고버섯, 송이버섯 순이란다.
경매는 전국 동시 오후 5시에
송이하면 강원도 양양이나 경북 봉화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인제 송이는 그 질과 향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상급이다. 인제산림조합 심만섭 과정은 “인제 송이는 전국 송이 생산량의 10% 미만이지만 향만큼은 최고”라고 말한다. 올해 송이는 풍년이다. 지난해에는 날씨가 좋지 않은 탓에 채집량이 적어서 1등급 송이 1kg당 130만원(2009년 강원 양양송이공판가격)이 넘기도 했다. 올해는 비의 양이 많았던 탓에,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송이의 양이 늘어난 것이다.
오후 4시30분이 되면 어김없이 인제산림조합 경매장이 소란스러워진다. 채집인들이 새벽 5시부터 산속을 돌며 따온 송이들을 가져온다. 송이향이 진동한다. 꼴깍, 저절로 고인 침이 목을 넘어간다. 무뢰배로 가장해서 그저 입속으로 쑥 집어삼키고 싶어진다.
송이 분류작업을 시작됐다. 길이가 8cm 이상, 갓이 거의 퍼지지 않고 굵기가 균등한 것이 1등급이다. 1등급보다 크기는 작고 갓이 조금 퍼진 것이 2등급, 크기가 작고 성장이 멈춘 것이 3등급이다. 갓이 넓게 퍼지고 손상된 것은 등외품으로 친다. 경매는 정확히 오후 5시에 시작된다. 전국이 같다. 가격조작을 막기 위해서다. 이날 1등급 송이는 1kg당 15만3천9백원에 낙찰되었다. “동대문, 14 점 30, 다음~.” 무게를 다는 소리가 이어진다. 입찰현장은 인제의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직접 볼 수 있다. 인제 약초상회에 가면 자연산송이를 싸게 살 수 있다. 추석 이후 가격이 더 내린다.
용대리 조금만 벗어나도 제맛 안 나
인제에는 안흥찐빵마을만큼 유명한 마을이 있다. ‘황태마을’(북면 용대리)이다. 인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달리면 마을 들머리가 보인다. 황태가 걸려 있다. 찐빵모형 인형이 걸려 있어 재미있는 느낌을 주던 안흥찐빵마을이 생각난다. 이곳은 신이 내린 땅이다. 인제는 황태를 잡는 곳이 아니라 건조하는 곳이다. 황태란 명태를 얼리고 녹이는 것을 반복해서 만들어진다. 매서운 바람과 적당한 햇볕이 필요하다. 용대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황태건조장으로 적당하지 않다.
황태마을의 시작은 약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용바위식당’(033-462-4079)을 운영하는 연영숙(57)씨가 황태전문점을 연 것이 마을의 기원이다.
서울에서 안응수(59)씨와 연애하던 연씨는 인제가 고향이었던 안씨를 따라 1975년 용대리로 내려왔다. 인제는 70년대 이미 황태건조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남편 안씨는 황태를 건조하는 일을 했다. 연씨는 5년간 토종닭 음식점을 운영했다. 남은 황태로 찜이나 구이를 해서 가게 반찬으로 내놓았는데 인기를 끌었다. 연씨는 15년 전 황태음식전문집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당시는 알프스스키장이 생겨 덕을 좀 봤지요.” 그는 2007년 황태명인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용대리에는 약 20여 곳의 황태전문점이 들어서 있다. 그래도 지금도 연씨 음식점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많다. 비결은 새콤달콤하면서 살결이 쫄깃한 황태구이와 술꾼의 진정한 친구 황태해장국 때문이다. “국은 황태를 볶다가 끓이면 안돼요. 찢은 황태에 물을 넉넉히 넣고 들기름 한 숟가락 떨어뜨려 끓이죠. 한번 세게 끓어오르면 진한 색이 나올 때까지 40분 더 끓여요, 사골국물 우리듯이. 3인분이다 하면 우린 국물에 물 3인분 양을 추가한 뒤 생감자를 더 넣어 한 번 더 끓입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있는 이름난 북어국집보다 더 진하다. 술꾼들에게는 딱이다. 이곳에서 건조시키는 황태는 모두 원양어선이 잡아온 명태들이다. 기온의 상승으로 우리네 바다에서는 거의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슬프지요 뭐.” 연 씨는 직접 덕장을 운영한다. 기계로 말리지 않고 옛날 방식 그대로다. 저온저장고도 마련했다. 1년 내내 같은 맛을 내기 위해서다.
한국 시집 온 일본인도 한몫
황태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1시간 조금 넘게 차를 달리면 산이 아름다워 ‘미산’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우리음식하면 역시 장맛이다. 장은 우리음식의 시작이자 끝이다. 미산리에는 맛난 장이 있다. ‘자연발효 미산청국장’, ‘자연발효 미산된장’, ‘자연발효 미산간장 등. 2003년부터 미산리부녀회원들은 미산리 콩으로 장을 만들어 브랜드화했다.
이곳 된장은 막장이다. 날메주를 가루로 빻아서 소금물을 넣고 숙성시키는 장이다. 막 담아 먹는 장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간장의 단계가 없는 셈이다. 회장 이미숙(43)씨는 “보리밥과 고추씨도 넣어 6개월 이상 숙성시킨다”고 말한다. 인심이 후해보이는 이씨 옆에서 부회장 마쓰다 요시에(43)씨가 한마디 거든다. “우리 장 좋은 이유, 물이 좋아요. 방태산 물줄기죠.” 마쓰다씨는 인제로 시집온 일본사람이다. 15년이 넘었다. 최근에는 마된장을 개발했고 곧 고로쇠간장도 세상에 나올 예정이란다. 부녀회가 운영하는 된장공장은 규모는 작지만 맛나다. 이곳에서 장을 구입하면 인제농협의 판매가격보다 싸게 살 수 있다. (033-463-7785)
지는 해 사이로 아쉬움이 남기 시작한다. 3대가 고기를 굽고 있는 ‘일미정’(033-461-2396), 깔끔한 산채가 맛깔스러운 ‘한국관’(033-461-2139), ‘서호순메밀국수’(033-461-2078)를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련이 남아야 다시 찾게 마련이다. 내린천 맑은 물이 시원하게 달릴 때 다시 오련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mh@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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