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태양/ 윤신영/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4. 2. 13:15

과학과학일반

태양의 후예여, 나를 지나 어디로 가는가

등록 :2016-04-01 18:58수정 :2016-04-02 10:50

 

태양 표면에서는 태양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물질이 일시에 방출된다. 이렇게 시작된 태양폭풍은 지구 대기권 밖에서 활동하는 우주인과 전자장비에 교란을 일으킨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태양 표면에서는 태양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물질이 일시에 방출된다. 이렇게 시작된 태양폭풍은 지구 대기권 밖에서 활동하는 우주인과 전자장비에 교란을 일으킨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토요판]
태양 구조와 태양풍
▶ 태양이 달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는 일식이 일어나면 세상은 어둠에 휩싸인다. 한데 시커멓게 변한 태양 주변은 정작 희뿌연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태양이 왕관을 쓴 모습 같다고 해서 우린 그 빛을 코로나(왕관)라 부른다. 태양의 왕관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사실상 태양계 전체가 이 왕관이다. 우린 그 왕관 안에서 ‘태양의 바람’을 맞으며 살고 있다. 지구와 우리 자신이 진정 ‘태양의 후예’다.

지구의 범위는 어디일까. 발 딛고 서 있는 땅거죽(지각)까지일까, 공기가 있는 대기권까지일까. 대기권이라면 공기가 얼마나 희박해질 때까지가 지구일까. 천체의 경계를 확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모호하다. 태양과 같은 별(항성)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환하게 빛나는 구 모양의 표면부가 태양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혹시 아는가.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태양을 구성하는 또 다른 구조가 멀리까지 뻗어 있는지.

태양의 공에 붙은 실밥

일식이 있던 지난 3월9일 오전, 서울 용산의 회사 옥상에 있는 도심천문대에 올라갔다. 망원경에 햇빛을 걸러주는 필터를 달아 태양을 관찰하게 해주겠다는 천문대장의 말에 솔깃해서였다. 이날 태양이 달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은 인도네시아에서나 볼 수 있었고, 한국에서는 태양 전체 면적의 3% 남짓이 가려지는 부분일식만 볼 수 있었다. 비록 가려진 면적은 작았지만, 모처럼 태양을 관찰할 명분은 충분했다.

일식은 인류가 태양의 비밀을 푸는 열쇠 구실을 했다. 3월9일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부분일식.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식은 인류가 태양의 비밀을 푸는 열쇠 구실을 했다. 3월9일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부분일식.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오전 10시30분. 망원경으로 본 태양은 한쪽 구석이 제법 잘려나간 모습이었다. 그런데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마치 공에 붙은 실밥처럼, 태양 표면에서 무엇인가가 바깥을 향해 튀어나와 있었다. 망원경을 조정하던 김영진 천문대장이 ‘홍염’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시간, 인도네시아에 취재를 간 기자로부터는 “구름이 끼어 일식이 제대로 안 보인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사진을 보니 정말 구름이 끼어 일식이 일어나는 건지 구름에 가려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을 찾은 천체사진가 두 명으로부터 비교적 괜찮은 일식 사진을 받아 구경할 수 있었다. 태양이 있던 부분이 마치 파낸 듯 까맣게 변해버린 사진이었다. 일식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든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오준호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는 평소, 일식이 일어나는 순간을 “세상의 마지막 촛불이 꺼지는 느낌”이라고 묘사한다. 주변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고 사진기 조작도 하지 못할 정도의 어둠이, 마치 스위치를 딱 끈 것처럼 순간적으로 닥친다는 것이다. 사진을 보니 이해가 갔다. 한창 밝을 오전인데도 하늘과 태양이 한밤중처럼 까맸다.

이 사진에서도 특이한 점을 볼 수 있었다. 태양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하늘빛이었다. 태양과 마찬가지로 캄캄했지만, 그 정도가 조금 달랐다. 태양이 완전한 어둠인 반면, 주위는 약간 희뿌옜다. 마치 빛이 새나온 듯 보였다. 불 꺼진 방에서 휴대전화의 플래시 기능을 이용해 빛을 밝힌 뒤 멀리서 엄지손가락으로 광원을 가려보자. 엄지 주위는 속절없이 환할 것이다. 사방으로 퍼져 나오는 빛을 손가락으로 다 막지 못해서다. 하지만 일식 때 주위에 보이는 빛은 다르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지역에서, 달은 햇빛을 충분히 가린다. 하지만 태양 주위에 있는 어떤 물질에 산란(흩어지는 현상)한 빛은 가릴 수 없고, 이 빛이 태양 주위에서 희미하게 빛을 낸다.

평소엔 눈에 보이지 않던 어떤 물질이 태양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데 주목하자. 우리가 몰랐던 태양의 구조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미지의 구조에 ‘코로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라틴어로 ‘왕관’이라는 뜻으로, 일식 때 관찰되는 희뿌연 모습이 마치 왕관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플래시 가려도 새어나온 빛처럼
우리에게 드러난 태양의 구조
매초 수백t씩 사방으로 내뿜으며
초속 400~800㎞로 지나가는
‘태양의 바람’을 맞는 지구

꼬인 자기력선 ‘버럭’ 폭발
코로나 질량의 대량 방출
흑점이 많으면 활발해지고
태양폭풍으로 전자장비 피해
우리는 ‘태양의 왕관’에서 산다

100만℃의 수수께끼

태양은 중심부에서 핵융합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때 만들어진 에너지는 태양 내부에서 헤매다 태양 표면(광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빛 알갱이의 형태로 뚫고 나와 직진운동을 시작한다. 우리가 태양을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빛 덕분이며, 그래서 이 표면을 태양의 경계라고 여긴다.

태양 내부에서 에너지를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에, 광구에서는 온도가 5500℃ 정도로 비교적 낮다(핵융합이 일어나는 중심부는 1500만℃가 넘는다). 그런데 이때부터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용광로 같은 태양 내부에서 벗어났는데 온도는 오히려 높아지는 역전현상이 나타난다. 광구 바깥에는 ‘채층’이라는 엷은 대기 구조가 있다. 높이가 약 2천㎞ 정도로, 태양이 워낙 크다 보니 마치 사과의 껍질처럼 얇게 느껴지는 부위다. 이 영역에서 태양의 온도는 2만℃까지 급격히 올라간다. 채층 바로 위에는 ‘전이영역’이 있는데, 이곳에서 온도는 다시 100만℃까지 가열된다. 채층과 전이영역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온도 상승 현상은 태양 물리학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미스터리다. 최근에는 태양 표면에서 자기력선이 끊겼다가 재결합하는 현상이 유력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데, 아직 좀 더 연구해야 한다.

코로나는 전이영역의 바로 위 영역이다. 태양의 가장 외곽에 존재하는 구조로, 사실상 태양계 전체를 포함한다. 태양은 빛 알갱이만 내뿜는 게 아니라 물질 알갱이도 내뿜는다. 이 물질은 온도가 대단히 높기 때문에 온전한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전자와 이온으로 산산조각이 나 있다(이를 플라스마라고 한다). 태양은 이런 물질을 매초 수백t씩 사방으로 내뿜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이 물질이 차지하는 영역 모두가 코로나다. 코로나는 태양을 중심으로 모든 방향에 형성돼 있으며, 코로나를 이루는 플라스마는 지금도 지구 주위를 초속 400~800㎞에 달하는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고 있다(지구 자기장이 방어막처럼 작용하기에 이 태양 플라스마는 지구를 비껴간다. 극히 일부만 극지방에서 대기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게 오로라다).

태양에서 나온 입자의 흐름은 마치 바람과 비슷하다. 그래서 태양풍이라고 부른다. 태양풍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속도가 빠르지만 어느 지점(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의 약 120배 정도 지점)부터는 외부의 다른 별이나 은하에서 날아오는 성간물질의 바람(성간풍)을 만나 속도가 줄어들고, 서로 섞인다. 이 지점 전까지가 태양이 자신의 힘으로 외계로부터의 물질 ‘침범’을 막을 수 있는 영역인 셈이다. 이 지점은 태양계의 경계인 동시에, 태양의 경계다.

코로나와 이름이 비슷해 혼동되는 용어가 하나 있다. ‘코로나 질량 방출’(CME)이라는 현상이다. 코로나 질량 방출은 태양 표면에서 엄청난 규모의 물질이 일시에 방출되는 현상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등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태양이 남아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물질이 일시에 격렬히 뿜어져 나간다. 이 역시 원인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온도 급상승 현상과 마찬가지로 태양 표면의 자기력선 재결합 현상이 유력한 원인으로 꼽힌다.

태양의 중심부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는 태양 속 물질을 뜨겁게 만들어 대류현상을 일으킨다. 봄날 따뜻한 햇빛이 아스팔트를 데우면 아스팔트가 지표 바로 위 공기를 데워서 공기로 하여금 상공으로 올라가게 한다. 이 현상이 대류다. 이와 똑같은 일이 태양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태양은 워낙 크기 때문에 대류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물질의 움직임이 태양 표면의 자기력선을 마구 뒤틀어 꼬는 일이 벌어진다.

자기력선이 꼬이면, 마치 고무줄이 잔뜩 꼬였을 때와 비슷하게 불안정한 에너지가 축적된다. 꼬이고 꼬인 고무줄이 맞을 수 있는 운명은 그저 갑자기 끊어지는 것뿐이다. 심성이 꼬인 사람도 결국 버럭 화를 내며 ‘폭발’한다. 태양 표면의 자기력선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풀리거나 끊어지면서 다량의 에너지를 일시에 우주를 향해 방출한다. 이때 태양 표면의 자기력선은 물질 입자를 가득 머금고 있는데(마치 빨랫줄에 빨래집게가 걸려 있듯이 갇혀 있다), 이 현상이 일어나면 입자 역시 방출되며 무척 강하고 빠르게 우주로 뻗어나간다. 이게 코로나 질량 방출이다.

태양폭풍 막는 지구 자기장

코로나 질량 방출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 태양에서 마치 커다란 거품이나 고리가 자라다 터지는 듯 보인다. 고리 아래에서 불꽃이 함께 보이기도 한다. 고리는 자기력선을 따라 만들어지는 구조다. 일식이 일어날 때 태양망원경에 비친 홍염도 코로나 질량 방출을 일으키는 이런 고리 중 하나다. 불꽃은 플레어라고 불리는데, 태양 표면에서 채층까지의 표면이 갑자기 밝아지는 현상이다. 태양 표면의 자기장이 반대인 지점끼리 맞닿은 경우 주로 발생한다. 코로나 질량 방출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함께 관찰될 때가 많다.

코로나 질량 방출이 격렬히 일어날 때는 태양의 플라스마가 지구 주위를 초속 1천㎞ 이상의 맹렬한 속도로 지나간다. 일반적인 코로나보다 강렬하기 때문에 지구에서도 영향을 받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실제로 강한 코로나 질량 방출이 있는 경우, 에너지가 높은 태양 입자가 지구 자기장과 부딪혀 지자기폭풍이라는 교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코로나 질량 방출을 ‘태양폭풍’이라고 부르며 매우 위험한 현상으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지구 자기장이 대부분의 태양 입자를 막아주기 때문에 지상에서 피해를 볼 일은 거의 없다. 다만 대기권 밖에서 활동하는 우주인이나 인공위성 등의 전자장비는 입자에 노출될 수 있는데, 이 경우도 피해를 입을 정도로 강력한 방출 현상은 그리 흔치 않다.

코로나 질량 방출과 플레어 등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태양 표면에 있는 어두운 점무늬의 구조인 ‘흑점’과 관련이 깊다. 흑점은 태양을 이루는 물질의 밀도가 낮아 온도가 낮은 지역으로, 대신 자기장이 다른 지역보다 강력하다. 자기력선 때문에 일어나는 코로나 질량 방출과 플레어 등이 일어나기 좋은 조건이다. 실제로 흑점의 수가 많을 때는 태양의 활동이 활발하고, 적을 때는 활동이 적다. 흑점 수는 11년 주기로 늘었다 줄어드는데, 2014년 최대치 이후 지금은 다시 줄어드는 시기다.

태양계는 태양과 그 부속 천체인 행성, 위성, 소행성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밖의 공간도 비어 있는 게 아니다.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 입자로 가득 차 있다. 이 입자는 허공을 그냥 떠도는 게 아니라 명백한 방향성을 갖고 바깥으로 퍼져 나가며 태양계의 영역을 확정해준다. 이 입자들은 태양의 본체가 사라져도 우주를 떠돌 것이다. 태양이 외계로 보내는 전령이자 후예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