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짬] ‘나이 듦 수업’ 펴낸 물리학자 장회익 명예교수
따뜻한 온돌방·세끼 식사·자유시간
“24시간 구속없으니 사는 것 같다” ‘이상적 삶’ 비결로 노년의 공부 제안
“죽는 날 ‘보람 정점’ 이르길 바라며”
대학원생 자세로 ‘온생명론’ 연구중 그는 아파트 가장 높은 층에서 산다. 널찍한 다락방이 있어 일부러 구한 집이다. 연구 자료나 책이 많은 학자의 거처로선 맞춤한 곳이다. 케이티엑스 천안아산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인 그의 집 베란다에서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면 마치 장난감 같다. 장 교수는 정년 이후 살 곳을 선택하는 데 꽤 고심했다. ‘공부에 필요한 모든 것과 될 수 있으면 가까이하고, 불필요한 것과는 될 수 있으면 멀리하기 위한 곳’으로 지금의 아파트가 낙점됐다. 한달에 두번 정도 서울을 찾는다. 고속철로 35분이면 닿는다. 주변 생활편의시설도 서울 못지않다. “아내랑 매일 오후 해발 100미터 정도 되는 아파트 뒷산을 오릅니다. 오전엔 이틀에 한번꼴로 차로 10분 거리인 배방산(361미터)을 오릅니다. 얼마 전엔 거기서 독수리 7마리를 보았지요.” 그는 원했던 자유를 얻었을까? “정년 전엔 사실 반신반의했죠. 자유가 주어지는 대신 혹시 무료하면 어쩌나, 직장과 연결이 끊어지면 어쩌나 등등 걱정이 있었죠. 막상 지내고 보니 기우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같이 산다고 할까요. 24시간을 어떤 구속도 없이 다 씁니다. (퇴직 이후의 삶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쪽으로 느껴집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많다. 진척이 늦을 때는 조바심이 들기도 하지만, 곧 ‘왜 빨리 해야 하나?’라고 스스로 묻는다. 그가 그렸던 자유의 실체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요즘 그가 몰두하는 공부 테마는 ‘생명현상’과 ‘양자역학’이다. “생명과 양자역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작은 규모의 글을 썼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그걸 삶이나 앎의 틀에서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요.” 그의 학문적 목표는 우리의 모든 앎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 ‘앎의 지구의’를 완성하는 것이다. “요즘 물리학과 대학원생이 된 기분으로 통계역학과 열역학 공부를 하고 있어요. ‘아마존’에서 연구서 5권을 주문해 지금 읽고 있지요.” 이는 그가 80년대에 내놓은 ‘온생명론’을 정교하게 다듬는 공부이기도 하다. 장 교수는 인간 생명(낱생명)과 외부에서 이 낱생명이 기능하도록 하는 존재인 ‘보생명’을 포괄해, 그 전체를 온생명이라고 규정했다. 이게 진짜 생명이라는 것이다. 이런 개념화를 통해 ‘생명의 모든 것을 되살리고 기왕에는 보지 못했던 생명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온생명에서 생명을 움직이는 힘은 태양에너지이죠. 이게 어떻게 생명체를 움직이는지 정교하게 정리할 필요를 느낍니다. 이를 위해 다시 기본적인 물리학의 문제로 내려와 지금 책을 읽고 정리하고 있지요.” 한달 전쯤엔 새벽 1~2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내가 너무 열심히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은 (공부) 시간을 줄였지요.” 그는 책 읽고 글쓰는 데 하루 평균 3~4시간 정도 쓴다고 했다. “학문은 인생을 두고 오르는 등산길”이라는 그의 지론이 떠올랐다. ‘빨리 오르는 것은 등산의 본령이 아니고 등산의 백미를 놓치게 한다.’ 그는 <나이 듦 수업>에서 이상적 삶의 그래프를 그렸다. 삶의 보람은 죽는 날까지 증가해 죽을 때 100%가 되고 생존의지는 마지막에 0%가 되는 게 최선의 삶이라는 것이다. ‘지난 13년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만족할 만큼 보람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올라가는 중입니다. 마지막 날에 정점에 도달해야 하지요.” 오늘보다 내일이 보람있는 삶이 되기 위해, 그가 취한 방식은 학문을 지향하는 삶이다. 왜 공부인가? “내가 내 삶을 살기 위한 판단의 주체가 되기 위해선 최선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공부는)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찾는 과정이지요. 그렇게 얻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합니다. 자녀와 대화를 주고받는 게 다 그런 것이지요. 공부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례도 있지 않은가? “제대로 공부를 못한 것이지요. 공부란 단편적 지식을 많이 간직하는 게 아닙니다. 지식 전체를 연결해서 나한테 좋은 지혜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요.” 그가 보기에 한국 사회엔 수단으로서의 공부, 즉 가짜 공부만 넘치고 있다. 장 교수는 지난해 10월 서울대 교수들의 국정교과서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박근혜 정부 들어 만사가 최악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북한을 악마화하고 있는데 상당수 국민들이 동조하고 있어요. 이게 걱정입니다.” 그는 또래 노년층의 완고한 보수성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공부 부족 때문이지요. 생각의 한계를 가진 사람들일수록 고집이 셉니다. 그 한계 때문에 자기 생각이 진리라고 믿어버리죠. 잘못 본 것은 없는지 살피고 또 새롭게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대부분 꽉 막혀 있지요. 나이 들어도 지적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는 올해 자신의 공부 성과물을 논문 두편 정도로 정리해 ‘학문적 정평이 있는’ 국제저널에 게재할 생각이다. 그간 생물학 등 기존 학계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온생명론이 본격적으로 논의·검토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산/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