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외계 지적생명체의 전파까지 찾아라/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3. 19. 13:56

과학과학일반

외계 지적생명체의 전파까지 찾아라

등록 :2016-03-18 20:10수정 :2016-03-19 11:41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스주 나라브리 인근에 있는 전파망원경(ATCA)의 모습. 전파망원경 뒤로 보름달 200배 크기인 켄타우루스자리의 ‘라디오 제트’가 보인다. 지구에서 100만광년가량 떨어진 이 라디오 제트는 켄타우루스자리 중심에 깊이 박힌, 태양 질량의 몇백만배인 블랙홀 안으로 우주 물질들이 빠르게 떨어지며 만들어낸 현상이다. 1천시간의 노출 끝에 완성해 전파망원경 모습과 함께 실제 위치에 합성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스주 나라브리 인근에 있는 전파망원경(ATCA)의 모습. 전파망원경 뒤로 보름달 200배 크기인 켄타우루스자리의 ‘라디오 제트’가 보인다. 지구에서 100만광년가량 떨어진 이 라디오 제트는 켄타우루스자리 중심에 깊이 박힌, 태양 질량의 몇백만배인 블랙홀 안으로 우주 물질들이 빠르게 떨어지며 만들어낸 현상이다. 1천시간의 노출 끝에 완성해 전파망원경 모습과 함께 실제 위치에 합성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토요판]
전파로 본 우주
▶ 맨눈으로 별을 보던 인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후 망원경을 거친 가시광선으로 우주를 관측했다. 오늘날 천문학의 눈부신 발전은 20세기 중반 시작된 전파천문학의 발달에 힘입었다. 전파천문학의 성장 과정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지평이 확장돼온 역사에 다름 아니다. 우리 우주의 모습, 혜성의 고향, 빅뱅 우주론 모두 전파천문학에 빚졌다. 이제 중력파를 관측할 수 있게 된 인류는, 빅뱅 직후의 우주나 블랙홀 내부의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우주 비밀의 근원에 우린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

19세기 중반 자기장을 이용해 전류를 만드는 전자기유도현상을 발견한 영국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전자기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가 전자기이론을 발표한 뒤 어느 날 왕립연구소를 찾은 재무장관 윌리엄 글래드스턴은 한참 설명을 듣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 이론으로 할 수 있는 게 대체 뭐냐”고. 패러데이는 “언젠가 이걸로 세금을 걷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장관으로부터 연구비를 얻어내기 위한 패러데이의 재치였다. 이후 패러데이가 만든 전자기 회전장치는 전기 모터의 근본 형태가 됐고, 패러데이의 이론은 전기를 기반으로 한 오늘날 인류 삶의 근간이 됐다. 농담이 결국 현실이 된 것이다. 패러데이의 이야기는 기초과학 연구에서 당장의 실용성이 중요하지 않음을 강조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패러데이의 이론은 빛도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제임스 맥스웰의 이론으로 이어졌다. 맥스웰의 이론이 나온 지 20여년 후인 1887년 독일의 하인리히 헤르츠가 인공 전파를 만들어냈다. 다시 1895년 이탈리아의 젊은 전기 기술자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무선통신을 발명했고, 이후 무선통신 기술은 급격히 발전했다. 1920년대에 시작된 라디오 방송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바꿔 놓았다.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설립한 미국의 통신회사 에이티앤티(AT&T)는 1930년대부터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무선전화 사업을 시작한다. 전파를 이용한 무선통신이 거대 산업이 된 것이다. 천문학이 전파와 만난 것도 그즈음이다.

에이티앤티의 벨 전화 연구소에서 일하던 칼 잰스키의 임무는 자연에서 나오는 전파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인공 전파를 잡음 없이 전송하려면 자연 전파를 파악해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안테나를 이용해 잡음을 찾던 잰스키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신호가 반복 기록되는 것을 발견했다. 신호는 우리 은하에서 별이 가장 많이 모인 은하의 중심, 궁수자리 방향에서 오고 있었다. 1933년 잰스키가 발표한 논문은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관측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의 이름 잰스키(Jy)는 전파의 세기를 측정하는 단위가 돼 전파천문학에 영원히 남았다.

전파천문학의 탄생

잰스키의 논문을 접한 몇몇 천문학자들이 전파를 이용해 우주를 관측해볼 계획을 세웠지만, 곧 일어난 2차 세계대전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반면 전쟁 중에 전파를 이용한 레이더 기술에 큰 발전이 있었다. 레이더는 발사한 전파가 물체에 반사돼 돌아오는 것을 관측해 물체의 위치와 크기, 속도 등을 알아내는 기술이다. 전쟁 중 영국 런던에서 레이더 안테나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기기에서 이상한 잡음이 발생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들은 처음엔 이것이 영국의 레이더를 교란하기 위해 독일이 발사한 신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연구한 결과 이 잡음이 잰스키가 몇 년 전에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관측했던 바로 그 신호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전쟁에도 필요했기에, 그들은 우주에서 오는 전파 신호를 더 자세히 관측했다. 미국의 벨 연구소도 전쟁 기간 동안 레이더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관측하는 작업을 활발히 벌였다. 그 결과 전파천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했다.

전파천문학은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몇몇 뛰어난 천문학자들 덕에 주 무대를 네덜란드로 옮겼다.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얀 오르트는 천문학에서 전파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었다. 파장이 짧은 가시광선은 우주 공간의 성간 먼지에 흡수되거나 산란돼 멀리 전달되지 않았다. 반면 파장이 긴 전파는 먼지들 사이를 쉽게 통과해 은하 전체를 보기에 좋은 도구였다. 오르트는 천문학의 많은 분야에 큰 기여를 했다. 대표적으로 태양계 외곽에 있는, ‘혜성들의 고향’인 거대한 구름의 존재를 제안했다. 그 구름은 그의 이름을 따 ‘오르트 구름’(Oort cloud)으로 불린다.

1943년에 열린 네덜란드 천문학회 모임에서 오르트는 당시 위트레흐트대학의 뛰어난 대학원생 헨드릭 판더휠스트(Hendrik van de Hulst)를 만났다. 오르트는 휠스트를 자신이 근무하던 레이던대학으로 초청해 전파천문학을 더 깊이 연구해보기를 권했다. 대학원생이었던 1944년, 휠스트는 파장의 길이가 21㎝인 전파가 수소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예측했다. 수소는 양성자 하나와 그 주위를 도는 전자 하나로 이뤄진 가장 단순한 원소인데, 높은 에너지 상태에 있던 전자가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질 때 전자기파가 방출된다. 파장의 크기는 에너지의 차이만큼이었다. 우주에 존재하는 성간물질 대부분은 수소로 이뤄졌기에, 수소에서 나오는 ‘21㎝ 전파’를 관측하면 성간물질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패러데이에서 시작된 전자기학
인공전파·무선통신 발명 거쳐
우주전파 통해 천문학과 만나
레이더 기술 발전에 힘입어
새 학문 전파천문학 탄생

전파로 성간물질 분포 파악해
우리 은하 모습 알아냈다
전파망원경으로 펄서 찾아
중력파 발견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발견의 시대 시작된다

나선 팔을 찾다

네덜란드는 전쟁 중에 독일에 점령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전파망원경을 만들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독일이 남겨놓은 레이더 안테나가 있었다. 오르트와 휠스트는 1952년 6월부터 우리 은하의 은하 평면에서 나오는 21㎝ 전파를 관측했다. 움직이는 물체에서 나오는 전자기파는 물체가 관측자 쪽으로 다가오면 파장이 짧아지고 멀어지면 길어지는 도플러 이동이 나타난다. 21㎝ 전파의 파장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관측하면 전파를 방출하는 물체가 움직이는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 수소는 은하 중심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은하 중심과의 거리에 따른 회전 속도 관계를 이용하면 수소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 휠스트는 그 결과를 그림으로 그렸는데 거기서 나선 팔이 명확히 드러났다. 우리 은하에 나선 팔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결과였다. 숲 속에서 숲 전체의 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 은하 안에서 우리 은하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은하가 안드로메다은하 같은 나선 은하들처럼 나선 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초기 전파천문학이 이뤄낸 가장 큰 성과다.

전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은 한층 더 발달했다. 벨 연구소는 1962년 최초의 영상통신위성 텔스타를 이용해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프랑스 파리 에펠탑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영상 신호를 중계하면서 통신위성 시대를 열었다. 텔스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전파 신호를 수신하기 위해 전파 안테나가 만들어졌는데,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천문학자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은 이 안테나를 전파망원경으로 개조했다. 그들은 우주에서 오는 전파 신호에 섞인 ‘너무나 강한 잡음’의 원인을 이웃에 있는 프린스턴대학의 천문학자들에게 물었고, 그 과정에서 그 잡음이 우주가 만들어진 직후 빠져나온 최초의 빛인 우주배경복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964년에 발견된 우주배경복사는 빅뱅 우주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됐다.

전파망원경을 통해 새로운 천체도 발견됐다. 1967년 영국의 천문학자 앤터니 휴이시와 그의 제자 조슬린 벨은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하던 중 직녀성(베가)과 견우성(알타이르) 사이에서 매우 짧으면서 정확한 주기의 전파가 방출되는 것을 발견했다. 외계인이 보내오는 신호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이들은 이 신호에 ‘리틀 그린 맨’(Little green ma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신호는 빠르게 회전하는 높은 밀도의 별인 중성자별이 방출하는 전파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펄서(pulsar)로 불린 중성자별은 질량이 큰 별이 초신성이 돼 폭발한 뒤 만들어진 것으로, 1930년대 이론적으로 존재 가능성이 제안됐지만 실제로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펄서의 발견은 최근 실제 검출로 화제가 된 중력파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펄서가 발견된 해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전파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조지프 테일러는 이 발견에 매료돼 펄서 연구에 몰두했다. 테일러는 대학원생 러셀 헐스와 함께 발견한 40여개의 새로운 펄서 중 하나에서 나오는 전파 신호가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 펄서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펄서가 서로의 주위를 도는 쌍성 펄서였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쌍성 펄서는 중력파를 방출하면서 에너지를 잃고 점점 가까워진다. 테일러와 헐스는 이 쌍성 펄서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공전 주기가 감소하는 것을 관측해 중력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했다. 이들은 이 공로로 199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새로운 눈 중력파

현재 우리의 주변은 통신을 주고받는 전파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파는 만들기도 쉽고, 파장이 길어 장애물의 방해를 받지 않고 멀리까지 전달되기 때문에 무선통신에 가장 적합하다. 과학자들은 만일 우주 어딘가에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도 통신을 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도 전파를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런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 ‘외계 지적생명체 탐색’(SETI) 프로그램이다. 우주를 관측하는 것을 넘어 외계와의 통신에까지 전파를 이용해 보겠다는 시도다.

전파천문학은 이제 천문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전세계에 수많은 전파망원경이 설치돼 우주를 관찰하고 있고, 한국에도 서울, 울산, 제주도에 직경 21m인 전파망원경 3대가 설치돼 있다. 전파망원경은 우리가 이전에 보지 못하던 빛을 보게 될 때 얼마나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얼마 전 우리는 우주를 보는 또 하나의 새로운 눈을 갖게 됐다. 전기와 자기의 효과가 만들어내는 전자기파가 아닌, 시공간의 진동으로 전달되는 중력파다. 지금까지는 우주가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유일한 단서는 빛이었다. 그 빛을 통해 우리는 우주에 대한 많은 의문점을 해결해왔다. 여기에 중력파라는 새로운 단서가 우리에게 알려줄 사실들은 어떤 것일지 기대된다. 중력파 검출이라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과학자들이 더 기대하는 것은 앞으로 중력파를 통해 보게 될 우주의 새로운 모습이다. 중력파는 시공간의 진동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전자기파로는 절대 볼 수 없는 곳도 볼 수가 있다. 이제 빅뱅 직후의 우주 모습이나 블랙홀 내부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잰스키가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처음 관측한 지 100년도 되지 않아 우리는 전파를 통해 빅뱅 우주론의 증거를 찾고, 우주의 나이를 알아내고, 중성자별의 존재를 증명하고, 별이 만들어지는 곳을 들여다보게 됐다. 우리 앞에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의 시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이강환 천문학자·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