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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클 공정성 흔들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5. 2. 22:17

사회사회일반

검사장·시장 자녀 ‘부모스펙’ 자소서…로스쿨 공정성 ‘흔들’

등록 :2016-05-02 21:01수정 :2016-05-02 22:09

최근 3년간 합격생 6천명 살펴보니

‘부모·친인척 배경 기재 금지’
경북·부산대, 입시요강 위반 묵인
25곳 중 15곳은 규정도 없어

교육부, 해당학교에 경고조처 그쳐
“법적문제로 합격 취소 어려워” 발뺌
법조계 “면접과정 불공정이 더 심각”

2일 교육부의 전국 25개 로스쿨에 대한 입학전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로스쿨 학생 선발 과정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교육부는 문제 사례가 발견된 로스쿨에 대해 주의·경고 등 가장 낮은 수준의 행정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고, 향후 공정성 확보 대책도 로스쿨 자율에 맡겼다.

■ 25곳 가운데 문제사례 발견 안 된 곳 9곳뿐 2009년 로스쿨 개원 이래 교육부가 입학전형과 관련해 로스쿨을 전수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1월 당시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로스쿨 졸업시험에 떨어진 아들을 구제해달라며 해당 로스쿨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이후 로스쿨에 대한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점점 커지자, 교육부는 지난해 12월~지난 1월 전국 25개 로스쿨 입학전형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이전부터 로스쿨 입학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교육부가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조사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

교육부 조사 결과, 2014학년도의 경우 자기소개서 작성 기준에 ‘부모·친인척의 배경을 기재하지 말라’는 원칙이 없었던 로스쿨이 25곳 가운데 15곳에 달했다. 2016학년도 입시에서도 여전히 7곳은 해당 원칙이 없었다. 자소서를 평가할 때 지원자 개인 및 부모·친인척의 신상 관련 정보 등을 까맣게 음영 처리 하는 ‘블라인드 규정’을 두고 있는 곳은 단 2곳뿐이었다. 심지어 영남대와 전남대 2곳은 응시원서에 보호자의 성명과 근무처를 작성하도록 하는 등 민간 기업에서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항목을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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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00건 중 부정 사례 24건?…로스쿨 처벌도 솜방망이 교육부가 전수조사 결과, 3개 연도 합격자 6000명의 자소서 중 부정행위 사례가 24건(0.4%)이라고 발표한 데 대해서도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교육부가 로스쿨 1곳당 부정 의심 사례 20~30건 정도를 적발해 관련 자료를 수거해 갔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이 나온 바 있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이날 “법조인뿐 아니라 정치인과 로스쿨 교수, 고위 관료, 대기업 임원 등으로 부모의 직업군을 넓히고, 2009년 로스쿨 1기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교육부는 부모·친인척의 배경을 밝힌 24건의 사례 가운데 입시요강에 ‘기재 금지 원칙’이 있었음에도 배경을 적은 8건만 부정행위로 인정하고, 요강에 관련 원칙이 없었던 16건의 경우 부정행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진석 학술장학지원국장은 “해당 로스쿨에 기재 금지 원칙이 없었다는 점에서 귀책사유는 로스쿨에 있다”고 했다. 부정행위라고 규정한 8건도 ‘인과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합격 취소를 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교육부는 입시 불공정 논란을 자초한 로스쿨들에 대해서도 주의·경고 등 낮은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교육부는 ‘기재 금지 원칙’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어긴 지원자에게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은 경북대·부산대 등 6개 로스쿨과 관련 규정을 아예 마련하지 않은 고려대·서울대·연세대 등 7개 로스쿨 등 모두 17개 로스쿨에 대해 기관 경고 조치하고 해당 로스쿨 원장을 주의 조치할 방침이다.

■ 면접은 여전히 사각지대 교육부의 이번 실태조사는 자소서 점검에 무게를 뒀다. 면접 과정의 공정성 확보에 대해서는 무자료 면접 시행 여부와 면접 시 외부위원 참여 여부 정도를 살폈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무자료 면접은 지원자에 대한 일체의 정보 없이 출제된 문제만으로 면접평가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인사혁신처가 주관하는 5급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에서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로스쿨 가운데 무자료 면접을 실시하는 곳은 2016학년도 기준으로 13곳에 그쳤으며, 나머지 12곳은 자소서 등을 참고해서 면접을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 면접위원을 위촉하는 곳은 10곳뿐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소서를 참고하기는 하지만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를 풀이하는 방식의 구술면접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개인 신상에 대한 얘기가 오갈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송기춘 전국로스쿨교수협의회 공동대표(전북대 교수)는 “자소서에는 학생들이 함부로 위험한 내용을 적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오히려 면접에서 우연히 부모 신상을 말할 경우 등이 더 문제”라며 “알음알음으로 특정 지원자를 특정 면접관에게 배정하는 경향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면접을 비롯한 로스쿨 입시 전반의 공정성 및 신뢰성 확보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교육부는 이날 ‘자소서에 부모·친인척 신상 기재 금지’라는 뒷북 대책만 내놨다. 교육부 관계자는 “입학전형의 자율성, 다양성, 전문성 측면에서 교육부가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구체적인 선발제도 개선 방안은 로스쿨협의회 쪽에서 이른 시일 내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김미향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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