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업은 1988년 이란 캉간 가스정제공장 건설공사를 진행하던 중 이라크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직원 13명이 숨지고 52명이 다치는 참사를 겪었다. 그러나 대림산업은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책임지고 완수하겠다”며 공사를 끝까지 마쳤다. ‘핏값’으로 산 신뢰다. 기업으로서, 계약자로서 훌륭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이러면 안 되지 않을까? 박 대통령이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겠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한 새마을운동 노래 4절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과거 현대건설 과장 시절, 타이 건설현장 사무실에 칼 든 괴한들이 들이닥쳤을 때, 온몸으로 금고를 껴안고 열쇠를 끝내 내놓지 않은 채 결사항전했던 일을 자서전에 적어놓았다. 그러나 그 자신도 한 인터뷰에서 “지금 생각하면 열쇠를 내주는 게 맞지, 미련 떤 거지”라고 말했다.
몇 년 전 미국에선 한 햄버거가게에 들어온 강도를 격투 끝에 물리친 종업원에 대해 본사가 ‘회사 규정을 어겼다’며 해고했다. 그런 상황이 닥칠 때, 종업원 규정은 ‘안전’에 최우선을 두고 절대 맞대응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은행강도를 맨몸으로 때려잡는 직원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범인을 놓치더라도, 내가 격투기 선수여서 능히 그를 제압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곤 신고해서 공권력에 의존하는 것이 시스템에 의한 사회일 것이다.
미국에선 스쿨버스가 정류장에 서면 그 뒤에 오는 모든 자동차는 ‘서행’이 아니라, 그 자리에 멈춰야 한다. 스쿨버스를 앞질러 가면 벌금을 물게 되는데, 벌금이 아니어도 이를 무시하는 몰지각한 사람은 거의 없다. 초등학교의 경우, 보호자가 마중 나오지 않은 아이들은 하차시키지 않고 다시 학교로 데려가 보호자가 올 때까지 데리고 있는다. 13살 미만 아이들을 집에 혼자 놔두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 끊이지 않는 학원 차량에 의한 아동 사망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보육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최근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가습기 살균제, 그 이전 세월호 등은 ‘자본의 탐욕’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그보다 앞서 자본세력이 ‘돈’을 위해 ‘소비자의 위험’을 감수하려는(risk-taking) 것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정부, 국가의 부재가 근본 원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자본의 자비’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책임’을 묻는 쪽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 우린 이 사고 이후에도 어쩔 수 없이 그래도 ‘사적 기업’보단 ‘공적 정부’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2010년대와 어울리지 않는 1970년대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유령처럼 이 정부 주변을 부유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일어났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영국 회사다. 영국이나 미국은 가습기 자체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일 그렇더라도 미국 환경청(EPA) 등의 까다로운 심사가 걸러냈을 것이다. 가습기에 살균제까지 쓰려는 경제와 문화 수준을 갖춘 나라라면 그에 걸맞은, 2010년대에 걸맞은, 정부기관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면, 기꺼이 느리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다.
권태호 국제 에디터 ho@hani.co.kr
권태호 국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