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찰하기

황 총리의 중국 선양 방문과 외교절 밀당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7. 1. 21:05

정치외교

황 총리 ‘총성없는 전장’ 중국 선양 첫 방문…“외교적 밀당의 결과”

등록 :2016-06-30 16:33수정 :2016-06-30 21:18

 

북한과 접한 동북3성의 교통 허브로 각국 첩보전 치열
한국 총리로선 첫 방문…중국은 마지못해 수용
<장군의 아들> 촬영지인 시타거리 한인식당서 오찬
중국 쪽 “경호 어려우니 동선 최대한 짧게 잡아달라”

30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정상급 인사로서 사상 처음 방문한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시타거리 일대에서 민간인과 일반차량 통행이 통제되고 무기를 소지한 무장경찰이 수미터 간격으로 배치되는 등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연합뉴스
30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정상급 인사로서 사상 처음 방문한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시타거리 일대에서 민간인과 일반차량 통행이 통제되고 무기를 소지한 무장경찰이 수미터 간격으로 배치되는 등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연합뉴스

황교안 총리가 중국 방문 마지막 날인 30일을 선양에서 보냈다. 선양은 랴오닝성의 성도이자 동북3성의 교통 허브다. 동북3성(지린·랴오닝·헤이룽장)은 북한과 1500㎞에 이르는 국경을 접하고 있어 탈북자 문제가 빈발하는 데다, 지린성엔 조선족 동포가 밀집해 있어 남한·북한·중국 모두한테 외교적으로 민감한 지역이다. 냉전기 베를린만큼이나 각국의 첩보전이 치열한 ‘소리없는 전장’이기도 하다. 이런 지리적 민감성 탓에 중국 정부는 지금껏 한국 정부 고위 인사의 선양 방문을 꺼려 왔다. 한국 총리의 선양 방문이 처음인 이유다.

당연하게도 황 총리의 선양 방문은 중국 쪽의 제안으로 성사된 게 아니다. 정부 관계자는 30일 “황 총리의 선양 방문 성사 과정에 한·중 양국의 치열한 외교적 밀당(밀고당기기)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강력한 요구에 중국 쪽이 마지못해 수용했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애초 한국 쪽이 황 총리의 방문 지역에 선양을 넣겠다고 했을 때 중국 정부는 한동안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시진핑 주석이 5월 헤이룽장성을 찾아 동북3성 경제개발 지원 의사를 밝혔고,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리커창 총리는 랴오닝성 당서기(2004~2007년)를 지냈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선양에 가되, 대북 압박 메시지 대신 가급적 한-중 경제협력 쪽에 초점을 맞춰달라’는 외교적 메시지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해설’이다.

중국 정부가 황 총리의 선양 방문을 수용하자, 한국은 한발짝 더 내디뎠다. 황 총리 방중 마지막 일정인 ‘동포 오찬 간담회’를 선양 시타(西塔)거리의 한인식당에서 하겠다고 중국 쪽에 알린 것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로도 유명한 시타거리는 선양의 대표적 ‘코리아 타운’이다. 일제강점기던 1920년대부터 한인들이 모여들어 지금은 한인 4000여명, 조선족 1만1000여명, 북한인 700여명(정부 추산)이 뒤섞여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식당도 10여곳에 이른다. 애초 중국 정부는 “시타거리는 너무 복잡해 경호에 어려움이 크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지말라’는 외교적 메시지다. 그 와중에 한국 쪽이 황 총리가 시타거리를 둘러보겠다는 추가 요구까지 내놓자, 중국 쪽은 “시타거리에서 동선을 최대한 짧게 잡아달라”고 당부했다. 황 총리가 시타거리 한인식당에서 동포 오찬 간담회를 20분 남짓 만에 마치고 거리를 둘러보지 못한 이유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을 입에 올려야 대북 메시지가 아니다. 총리의 선양 방문과 시타거리 간담회 자체가 의미 있는 대북 메시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이런 속내를 몰랐을 리 없다. 한국 총리의 선양 방문 요구를 짐짓 마지못해 수용한 듯한 중국 정부의 제스처에도 남북한과 국제사회에 전하고픈 ‘외교적 메시지’가 담겨있는 셈이다.

이제훈 김진철 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