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Life)

“가장 아름다운 보도사진은 ‘진실’ 찍은 것” / 로이터 사진전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7. 4. 22:04

사회미디어

“가장 아름다운 보도사진은 ‘진실’ 찍은 것”

등록 :2016-07-04 02:00수정 :2016-07-04 15:18

 

20대 초반 보스니아 내전 겪어
공학도에서 부친 이어 언론계로
“전쟁피해자 시각에서 취재해야”

‘로이터 사진전’ 도슨트로 참여
관객들과 함께 전시 보며 대화
“독자 감동 줄 수 있다면 행복”

‘로이터통신’ 베이징 수석사진기자 다미르 사골

<로이터 사진전: 세상의 드라마를 기록하다>(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특별 도슨트(안내자)로 초청받아 서울에 온 <로이터통신> 베이징 주재 수석사진기자 다미르 사골(45·사진)의 명함에는 중국식 한자 이름이 적혀 있다. 친구의 중국계 어머니가 붙여준 그 이름의 우리식 발음은 ‘사달명’이다.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사골에게 사발면과 비슷하게 들리니 한국 이름으로 ‘사발면’이 어떠냐고 하자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이런 유머러스한 태도와 달리, 그의 사진 대부분에는 짙은 아픔이 담겨 있다. 그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알기 전부터 분쟁의 한가운데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발칸의 화약고로 불린 조국 보스니아의 내전은 21살의 전도유망한 공학도였던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4년 내전이 끝난 1995년 그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고, 사진기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언론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뉴스와 사진을 가까이 접한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전쟁터에서 기자가 지녀야 할 취재윤리에 대해 그가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것도, 극단적 상황에 내몰렸던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거의 본능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자신 카메라를 들고 있지만, 애초 카메라 반대편에 있던 전쟁 희생자였던 기억이 그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유럽과 중동의 웬만한 분쟁지역은 다 다닌 그에게 자신의 삶터에서 벌어진 전쟁만큼 취재하기 힘든 것은 없었다고 한다. 다른 곳은 잠시 머물며 취재하면 끝나지만, 가족과 친구가 있는 조국에선 전쟁이 일상이어서다.

방한 이틀째인 2일 오전 도슨트로 나선 그는 한국 관람객들에게 보도사진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사진기자로서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좋은 사진’과 ‘좋은 보도사진’의 차이를 ‘두 개의 의자’에 비유해 설명했다. “좋은 사진은 그냥 보는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된다. 그러나 좋은 보도사진은 정확하고, 공정하며, 뉴스가치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아름다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 뉴스의 속성과 아름다움의 속성이라는 두 개의 의자에 걸쳐 앉는 것과 같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에게는 진실된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덧붙였다.

2011년 북한 홍수 피해 취재 때 새벽시간 평양의 건물 한가운데 걸린 김일성 초상화에만 불빛이 비친 사진으로 그는 이듬해 ‘세계보도사진전’에서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사골은 이번 사진전 ‘에필로그 섹션’에 소개된 자신의 9점 가운데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 때 사진을 꼽았다. 전장에서 미군 위생병이 이라크 아이를 안고 있는 장면(사진)이다.

@로이터/ 다미르 사골. 이라크 2003.03.29
@로이터/ 다미르 사골. 이라크 2003.03.29

퓰리처상(피처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호평을 받은 것은 둘째치고, 많은 생각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전쟁고아를 보듬은 인도주의를 강조한 반면, 다른 쪽에선 아이의 가족을 죽인 미군이 아이를 구한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박했다. “보도사진은 관심을 촉발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 길게 보면 세상이 한때 얼마나 위대하고 잔인하고 행복하고 참담했는지… 그리고 불공정했는지를 시각적으로 상기시킨다”는 그의 평소 철학을 잘 드러내주는 사진이다.

모바일 시대 미디어 환경의 급변으로 사진기자는 물론 언론 자체가 큰 위기를 맞고 있는 데 대해, 사골은 무엇보다 저널리즘 본연의 자세에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지금은 누구나 사진을 찍어서 전달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금방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사진기자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진은 “진실을 알리기 위한 수단의 하나”라며 사진기자의 역할 전환도 주문했다. 동영상 등 그 상황과 현장을 보여주는 데 더 적합한 수단이 있으면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로이터의 본거지인 유럽이나 북미가 아닌 한국에서 대규모 사진전이 열리고, 개막 초기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어 사진기자로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나는 신문이나 웹으로 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을 위해 셔터를 누른다. 내가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들이 잠시 멈춰 뉴스를 읽을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

로이터 사진전은 9월25일까지 계속된다. (02)710-0766.

글·사진/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