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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올린 독서활동, 엄마인 내가 다 썼어요”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7. 15. 06:46

사회교육

“학생부 올린 독서활동, 엄마인 내가 다 썼어요”

등록 :2016-07-14 20:27수정 :2016-07-14 22:24

 

학생부종합전형, 자유학기제 등 확대
부모가 대신 해주는 ‘외주화 현상’ 극성

부모가 학생부 독서활동 직접 쓰고
자기소개서도 부모가 쓰는 ‘자녀소개서’
자유학기제 직업체험도 부모가 떠맡아

사교육비 이어 또 하나의 교육격차 우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독서활동상황’ 제가 다 써줬어요. 애가 ‘엄마 이거는 내 것 아닌데’ 해서, ‘남들도 다 엄마가 해준대’ 그랬어요. 그게 학생부에 다 올라가 있어요.”

서울 강남구에 사는 고3 학생의 학부모 ㄱ씨는 지난해 학교 입시설명회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이 독서활동상황 잘 쓰인 케이스를 보여주면서 ‘정말 학생이 썼을까요? 어머님들이 도와주셔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ㄱ씨는 “그때까지는 아이가 내신, 수능 공부 하면서 비교과까지 챙긴다고 잠도 못 자고 책 읽고 독서감상문 써 가는 걸 지켜만 봤다.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나 하나 바르게 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모자란 나 때문에 애가 가고 싶은 대학에 못 가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요즘, 일부 고3 학부모들은 더 바빠졌다. 9월12일부터 시작될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위해 학생부를 ‘완성’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2016 학생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교사가 써야 하는 학생부 기재 내용을 학생이 직접 작성하면 ‘학생 성적 관련 비위’로 간주돼 징계 대상이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학생들이 써내면 교사가 이를 그대로 기재하는 ‘편법’이 관행이 되고 있다. 나아가 학부모가 대신 써주는 일도 흔하다. ㄱ씨는 “이번 방학 동안에 자기소개서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자유학기제, 수행평가 등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교육정책이 성급하게 전면화하면서, 학교 교육활동의 일부를 학부모들이 대신 하는 ‘공교육의 부모 외주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대개 이런 개입은 부모의 여유시간과 사회적 인맥, 고학력 등을 필요로 한다. 사교육비 지출과 함께 또 하나의 교육격차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봉사처 알아오는 게 엄마 능력?

‘부모 외주’가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비교과활동을 학생부에 기록하고 대학 입시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독서활동의 경우 국가교육과정에 별도로 배정된 수업시간이 없다. 또다른 비교과활동인 ‘자동봉진’(자율활동·동아리활동·봉사활동·진로활동)의 경우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한 학기당 1주일에 4시간씩 배정돼 있지만, 활동의 내용이나 질은 역시 ‘부모 능력’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한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노원구 한 고교의 ㄴ교사는 “봉사활동도 지원할 전공과 관련 있는 것으로 꾸준히 해야 입시에서 ‘영양가’가 있다”고 말했다. 유아교육과에 가려면 어린이집 봉사를 하는 식이다. 그는 “엄마가 챙겨주는 아이들은 한 봉사단체에서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봉사를 해서 학생부에 쓰기도 좋고 다른 애들보다 더 부각이 된다”며 “그냥 자기가 알아서 하는 아이들은 주로 피를 뽑는다(헌혈). 지하철 환경정화봉사도 많이 하는데, 이런 건 학생부에 써도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중3 자녀를 둔 강남구의 학부모 ㄷ씨는 “학원에서는 소외된 지역 공부방에서 재능기부 하는 게 제일 좋다고 권해준다. 그런 봉사처를 알아오는 게 ‘엄마 능력’이라고 한다”며 “한 엄마는 성당 교우가 공부방을 소개해줘 강북으로 고등학생 아이를 날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자기소개서는 ‘자녀소개서’?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등 미리 작성된 서류를 제출받아 평가하는 학종은 ‘과제형 입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시험장에서 치르는 일반 시험과 달리 학부모가 마음만 먹으면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열려 있다. 특히 자녀의 비교과 스펙을 차별화하는 데는 학부모의 ‘배경’이 많이 작용한다. 서울 강남의 한 공립고 ㅈ교사는 “일반고에서도 특목고·자사고에서 하는 비교과활동을 다 흉내내니까 학교 스펙은 이제 뻔하다”며 “강남에서는 교수 아버지가 자녀를 학술대회나 세미나에 데리고 가는 등 부모가 인재를 만들어 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기 연구에 자녀를 참여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활동은 학생부에는 못 적지만 자소서에는 다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 입시의 필수 제출 서류가 된 ‘자기소개서’의 경우 ‘자녀소개서’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남편이 서울대를 나왔다는 강남구의 고3 학부모 ㅈ씨는 “남편이 글을 잘 쓴다. 내가 아이 자소서를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하니까, 남편이 ‘내가 틀을 잡아줘야지’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꿈과 끼에도 부모 격차?

학생들의 ‘꿈과 끼’를 찾게 해준다는 취지로 올해부터 전국 중학교로 전면 확대실시된 자유학기제의 경우, 주요한 체험활동 가운데 하나인 진로·직업체험이 주로 학부모에게 의존되는 실정이다.

학기 초 학부모들에게 ‘직장 개방’이 가능한지 묻는 가정통신문이 발송된다. 아예 직업체험보고서 제출이 과목별 수행평가나 방학 숙제로 잡히기도 한다. 중3 자녀를 둔 마포의 학부모 ㅁ씨는 “학기 초 학부모 총회를 하면 직업체험을 시켜줄 부모를 정하는 일이 당연시된다”며 “의사 아빠가 직업체험을 맡아 승합차를 대절해서 애들을 병원으로 나른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중1 자녀를 둔 강남의 학부모 ㅂ씨는 “우리 아이는 반 친구 아빠가 하는 공장에 가서 견학을 하고 점심으로 왕갈비를 얻어먹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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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직업체험을 책임지는 곳도 있지만 확보할 수 있는 체험처가 제한적이다. 학부모가 자신의 직장을 체험처로 제공하는 강남의 A중과 학교가 전담하는 동대문구 B중의 1학년 ‘진로체험의 날’ 체험처 목록을 보면, A중의 경우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과 서울경찰청 정보부, 국제특허법률사무소 등 확보한 체험처가 100곳에 이른다. B중은 지역에 있는 박물관, 수질관리원, 구의회 등 7곳뿐이다. 학교가 체험처 발굴을 전담하는 서울의 한 중학교 1학년 ㅅ부장교사는 “아파트관리소, 은행, 안경원 등을 확보했다. 병원은 동네 의원을 섭외했는데 업무 중이시라 충분히 체험이 이뤄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수행평가도 ‘부모 외주화’가 이뤄지는 대표 사례다. 교육학 박사로 고1 자녀를 둔 송파구의 학부모 ㅇ씨는 “수행평가로 영어 발표를 해야 한다고 해서 발표 태도나 발음·억양 같은 걸 봐줬다”며 “스크립트(발표문)까지 손대면 더 좋은 성적을 받게 할 수도 있어 고민스러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4월 초·중학교의 경우 모든 과목을 수행평가 100%로 평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학생부 지침을 발표했다.

백병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학종이나 수행평가 등은 근본적으로 학교 수업을 학생 중심으로 바꾼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순기능을 할 수 있다”며 “제도만 성급하게 운영되다 보니 학부모의 과도한 개입이 생기고 교육 격차가 커지는 부작용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부모의 마음도 편한 것은 아니다. ㄱ씨는 말했다. “영화 <마더>를 보면 엄마가 자기 아들의 죄를 다른 아이한테 떠넘기고 자기 아들만 빼내잖아요. (엄마 역인) 김혜자가 누명 쓴 아이한테 ‘너는 엄마 없니?’라고 묻던 게 자꾸 생각나요. 내가 이러면, 엄마 없는 애들은 어떻게 공부하지? 이런 생각. 하지만 현실은 학종을 뚫어야 하니까 그냥 범죄자가 되는 거예요.”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