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안보 법제 관련 기자회견장에서 마이크 잡아 “전쟁 책임과 악행 사죄에 일 언론은 아무것도 안해 아베 총리는 ‘문 단속’명분으로 군국주의 회귀 공작”
무노 다케지 일본 전직 언론인.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질의응답 시간이 부족할 텐데, 괜찮나요? 그럼 딱 5분만 말하겠습니다.”
올해 만 100살이 된 일본의 전직 언론인 무노 다케지가 21일 오후 2시 도쿄 지요다구 일본 프레스센터 10층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고령인 탓에 기력이 떨어져 일어서지 못하고 자리에 그대로 앉은 상태였다. 그는 1915년에 아키타현에서 태어나 1936년 <호치신문>에 입사한 뒤 1940년부터 <아사히신문>으로 전직해 중국, 동남아시아 특파원을 역임한 전직 언론인이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20대 중반의 나이에 그가 목격한 것은 침략 전쟁의 현장에서 일본군이 행한 온갖 잔혹한 행위들이었다. 그는 이후 일본의 전쟁 책임을 절감하고 회사를 퇴사해 고향인 아키타로 내려가 오랜 시간 지역의 언론과 반전 운동을 이끌어 왔다.
“세가지만 짧게 말하겠습니다. 첫째, 저는 지난 80년 동안 저널리즘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지금 가장 강하게 느끼는 것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세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허용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요. 얼마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들과의 잡담 자리에서 미국이 가진 핵탄두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유엔(UN) 상임이사국들과 그 밖의 몇 나라들이 가진 원자폭탄의 수는 수만 발입니다. 이것이 지구에서 사용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인류의 멸망 뿐 아니라 지구상의 대부분의 동식물들이 죽게 됩니다. 나는 그런 위험이 없는 세계에 살고 싶습니다.”
조용한 어조로 발언을 이어가던 무노의 어조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현재 이런 정세 안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의 사회 체제를 예전의 군국주의 체제로 돌리려는 여러 공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게 ‘문단속을 단단히 하면 도둑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얘길 합니다. 그러면서 군국주의로 돌아가려는 아베 총리는 정치가로서 자격이 있나요? 아베 당신은 몇번이고 텔레비전에 출연해 ‘일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책임은 정부에 있고 그 최고 책임자는 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책임을 다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 회견장에는 많은 저널리즘 관계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나는 쇼와 6년(1931년) 만주사변이 발생했을 때 중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그 뒤 5년 뒤인 21살에 신문기자가 되어 전쟁을 4년 경험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저널리즘은 형편없었습니다. 저널리즘은 역사의 일기장입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으니, 오늘이 무슨 일이 있고,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현상의 원인을 밝히면서 과오를 저지르지 않고 내일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일본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쇼와 20년(1945년) 8월15일에 일본이 항복을 하기 전인 12일에 일본 언론에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본의 보도 기관이 살아 있었다면 ‘군부가 항복을 선택했다’고 보도해야 합니다. 적어도 (15일 정오에 이뤄진) 천황(일왕)의 방송 전엔 그 사실을 밝혔어야 합니다. 아무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해야 했던 것은 일본 국민 전체의 책임과 자긍심을 가지고 역사의 경험을 정리해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은 책임을 지는 일이었습니다. ‘15년 전쟁’(1931년 만주사변에서부터 1945년 2차대전 패전까지 이어진 15년 간의 전쟁)을 시작한 것은 누구이며 무엇을 노린 것인가, (일본군은) 전쟁터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그 악행에 대한 죄를 씻기 위해 말로만이 아니라 물심양면으로 사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연합군에 맡기고 일본 국민이 스스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역사의 과제에 대해 일본의 보도 기관은 해야 할 것을 무엇도, 어디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10분여에 걸친 긴 발언 끝에 무노는 “(지금까지 여러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듯 전쟁을 멈추게 하려면 전쟁이 시작되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전쟁이 시작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말을 마쳤다. 이날 무노가 참가한 기자회견은 일본의 역대 총리들에게 집권 자민당이 지난 16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강행 통과시킨 안보 법제를 재검토할 수 있도록 아베 총리를 설득해 달라고 요청하는 기자회견이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