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해결은 끝이 아닌 시작인데…한·일 정부 합의, 시작 전에 끝내자는 것”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입력 : 2016.09.26 21:11:00 수정 : 2016.09.26 21:15:41
ㆍ위안부 피해자 첫 보도한 전 아사히신문 기자, ‘수기’ 출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돈만 내면 끝이라는 얘깁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이제 시작입니다. 한·일 합의는 문제 해결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내자는 겁니다.”
1991년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를 최초로 보도한 전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58)의 말이다. 그는 26일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한·일 양국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는 “피해자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돈만 내면 끝이라는 식이었다”며 “나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우에무라는 1991년 8월11일자 아사히신문 오사카 본사판에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보도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우에무라에게 들려준 녹음 테이프에서 김 할머니는 “어떻게든 잊고 살자고 생각했지만, 잊을 수가 없다.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고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3일 후 실명을 밝히고 한국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했고,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는 위안부 문제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우에무라가 일본에서 겪어야 했던 각종 탄압과 그에 맞선 투쟁의 기록이다. 문제의 발단은 일본의 대형주간지 ‘주간문춘’이 2014년 2월 위안부 문제를 부정해온 니시오카 쓰토무 도쿄기독교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해 우에무라의 기사가 날조된 것이었다고 공격한 일이다.
니시오카는 우에무라를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된 기사로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아사히신문에까지 책임을 물었다. 주간문춘 보도 후 그해 3월 퇴직한 뒤 고베쇼인여자학원대학 교수로 전직하려던 우에무라의 계획도 좌절됐다. 대학으로 일본 우익들의 항의 e메일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아내와 딸에 대한 살해 위협에도 시달려야 했을 정도라고 밝혔다.
니시오카 교수와 요미우리·산케이 등 보수언론은 1991년 우에무라가 쓴 두 편의 기사에서 그가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하지 않았고,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을 썼으며, 김 할머니의 기생 경력을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정신대’는 한국에서도 ‘위안부’와 같은 뜻으로 사용됐고, 우에무라는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으며, 기생 경력을 빠뜨린 것은 몇몇 보수언론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주간문춘이 13년 전 보도를 끄집어내 문제 삼은 배경에는 아베 신조 정권 출범 후 가속화된 일본의 우경화가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결행 후 아베 정권과 일본 보수언론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 때리기에 나서 2014년에는 고노 담화에 대한 검증까지 이뤄졌다.
우에무라는 일본 내 양심적 세력의 도움을 받아 2014년 7월 협박 편지를 보낸 이들을 삿포로지검에 위력업무방해죄로 형사 고발했다. 또 지난해 1월에는 도쿄지방법원에서 니시오카 교수와 주간문춘 발행처인 문예춘추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두 소송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우에무라는 “그들이 나를 공격하는 목적은 리버럴 언론의 위안부 보도를 위축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명예훼손이고, 언론자유의 문제이기 때문에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에는 그의 딸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하는 등 성과도 있었다.
우에무라는 지난 3월부터 국내 가톨릭대 초빙교수로 1주일에 3시간씩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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