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효학의 대가 이한창 박사
15년간 한·중·일 자료수집·정리1000쪽분량 대작 <장보> 출간“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사명에”서울농대·샘표간장 개발한 전문가“일제때 산분해간장이 입맛 지배” ‘조선간장’ 기술표준화 연구 기대“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사명으로 썼어요.”무려 1000쪽이 넘는 분량으로 ‘동아시아 장의 역사와 계보’를 정리해낸 <장보>(醬譜·따비 펴냄)의 저자 이한창(89·사진) 박사의 얘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일찍이 발효학을 전공하고 국내 첫 장류식품 전문업체 연구 담당을 거쳐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친 그는 ‘우리나라 간장의 아버지’로 불린다. 퇴임 뒤 10년 꼬박 한·중·일은 물론 동남아시아 각국의 장에 관한 자료를 모아 섭렵한 뒤 5년에 걸쳐 원고를 쓰고 다듬었다. 이미 칠순 중반에 시작한 작업이니 필생의 노작인 셈이다.김경애 기자“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 간장은 파는 음식이 아니었어요. 전통 발효식품이 대부분 그렇듯, 집집마다 직접 담그고 대대손손 제조법을 물려주는 필수기본음식이니까요. 그래서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탈이 생긴다고들 했잖아요.”하지만 그는 이런 전통이 오히려 우리 간장의 현대화를 가로막아 아직도 대량생산을 위한 기술표준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일제 때 전쟁물자 동원으로 콩이 귀해 콩깻묵이나 정어리찌꺼기 같은 유사 단백질에 염산과 가성소다를 넣어 산분해시킨 간장(왜간장)을 만들어야 했어요. 바로 그 양조간장이 지금까지도 우리 입맛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요.”그는 바로 그 안타까움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말했다. 그 자신 몇차례 우리 간장, 조선간장의 제품화 연구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중단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씁쓸한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서중 시절부터 ‘화학’에 끌려 1949년 거의 유일하게 발효학을 가르치던 서울대 농화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전쟁이 터져 전남 보성중에서 3년간 교편을 잡다 복학해 56년 졸업한 뒤 대전주정공업주식회사 시험실장으로 일했다.“그때 농림부 장관이 100억원 예산을 들여 대규모 농촌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조선간장 공장을 짓도록 했어요. 이른바 ‘장독대 없애기 운동’이었는데, 농촌에서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데 일손이 묶여 새마을운동 동원이 어렵다는 이유였죠. 비과학적이고 비위생적이라는 편견도 있었으니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렵지만.”농어촌개발공사에서 부평에 1만평의 터를 확보해 공장까지 지었고 그는 연구개발을 맡아 3년 숙성을 목표로 조선간장을 만들었으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곧 그만두고 말았다. 그 무렵 일제 적산공장인 미쓰야간장을 맡아 운영하던 박규회 샘표식품 창업주가 “월급을 3배나 더 주고” 그를 연구부장으로 스카우트했다. “우리 식구들에게도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콩발효 간장을 개발하는 게 임무였어요. 산분해와 콩을 50%씩 섞은 혼합간장을 한정품으로 만들었는데, 시장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그래서 회사 이름도 아예 샘표로 바꾸게 된 거죠.”그는 69년 국영 경기농산 이사로 옮기기까지 10년간 샘표에서 근속하며 양조간장 개발을 주도했다. “지금도 국내 간장 시장은 양조간장과 산분해간장이 주도하고 있죠.”영세·중소업체가 대부분이어서 장기간 연구와 투자가 필요한 우리 간장(조선간장)의 제품화를 시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 유기농 웰빙 바람 덕분인지 호황기라야 120개 정도였던 국내 간장업체가 2000여개로 급증했어요. 물론 90% 이상이 가내 장독대에서 조선간장을 담가 파는 소규모 항아리업체죠.”그는 이런 대중의 수요 변화에 맞춰 지금이라도 정부와 업계가 손잡고 우리 간장의 기술 표준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책이 그 불쏘시개로 쓰이길 바랍니다.”85년 경희대에서 이학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이화여대·경희대 등의 겸임교수를 거쳐 동덕여대 연구교수로 30여년 교직 생활을 한 그는 그사이 농화학기술사와 식품기술사의 자격도 갖춰 식품기술사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40여편의 논문과 20여권의 저서도 냈다.시조시인과 소설가로도 등단한 그는 시조시인협회에서 출간한 공저 <장년기의 푸른 꿈>과 자전 서간집 <나도 효녀가 되고 싶어>(2015) 등도 발표했다. 집안의 시조인 석탄공 이신의를 소재로 한 임진왜란 배경의 역사장편소설도 썼다.“여생 동안 과학장편소설을 한편 써내는 게 목표예요. 이학과 문학을 다 거친 나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죠.”구순을 앞두고도 열정에 가득 찬 이 노학자의 별명은 ‘젊은이’다. ccandori@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