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철학

자유가 없으면 평등도 없기에 우도좌기(右道左器)로 고쳐야 하는 이남곡의 좌도우기(左道右器)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9. 10. 06:54

사설.칼럼칼럼

[이남곡, 좌도우기] 좌도우기(左道右器) ①

등록 :2016-09-08 18:22수정 :2016-09-08 20:22

 

합리적 이성이 성숙하고 상호간의 신뢰가 이룩되면, 좌파는 불평등의 해결에, 우파는 악평등이 불러오는 부자유의 해소에 역할을 분담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불평등’과 ‘악평등’의 양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남곡
인문운동가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려라.”

일체의 고정관념을 경계한 석가의 이야기다.

하물며 강을 건너본 경험도 없고, 오래되어 사용 불능한 뗏목을 짊어지고 다닌다면 어떻겠는가?

무엇을 지킬 것이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보수와 진보는 시대가 변하면 내용이 바뀔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나는 진보에 가까운 편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진보의 가장 큰 특징을 ‘단정하거나 고정하지 않고, 이 시대의 의를 탐구하여, 실천하는 태도’라고 보고 있다.

증오? 편가름? 단정? 완고? 생활과 유리된 관념적 과격성?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나타내려는 허위의식 같은 것은 진보와는 인연이 없는 사고방식이나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와 역사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모순 때문에 갈등과 대립과 이견이 없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만한 나라를 만들어왔다.

이제 나라의 외형적 통계들만 보면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했지만, 내재한 모순들을 풀 힘이 없으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 침체, 양극화(이중화), 인구절벽, 청년문제, 극심한 국론분열 등에 더하여 첨단 핵무기의 실험장으로 만들고 있는 한민족의 어리석음에 심한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좌도우기’(左道右器)라는 말은 김윤상 경북대 교수의 <특권 없는 세상>이라는 책을 보다가 발견한 말이다.

그는 좌도우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회가 분열되어, 예를 들면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서로 배척하고 증오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좌파의 입장에서 보는 현실의 우파는 이상사회를 향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속물이며 부당한 기득권을 누리면서 추호도 양보하지 않는 이기집단입니다. 반면 우파의 입장에서 보는 현실의 좌파는, 물정도 모르면서 설치는 하룻강아지이며 ‘사회정의’라는 이상한 깃발을 들고 떼를 쓰는 집단입니다. 이러다 보면 인간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고 혐오만 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합리적인 좌파와 양식 있는 우파라면 공통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해왔습니다. 좌도우기, 즉 좌파가 추구하는 가치를 우파의 방법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내가 이 책을 보고 처음 느낀 것은 이런 생각들이 왜 한국 사회에서는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으로 들릴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가 낳은 끈질긴 증오와 불신, 그리고 불의한 특권으로 강고해진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현실 인식 앞에 주저앉아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해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달라지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 동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좌파는 ‘평등’에 방점을 찍고, 우파는 ‘자유’에 방점을 찍는다.

실제 면에서 자유와 평등은 부딪치기 쉽다.

그러나 합리적 이성이 성숙하고 상호간의 신뢰가 이룩되면, 좌파는 불평등의 해결에, 우파는 악평등이 불러오는 부자유의 해소에 역할을 분담할 수 있다.

불평등은 ‘같은 것을 다르게(차별) 대우하는 것’이고, 악평등은 ‘다른 것(차이)을 같게 하려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불평등’과 ‘악평등’의 양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 서면 좌와 우는 서로 격렬하게 대립할 필요가 없게 되고, 오히려 서로가 보완 관계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좌도우기’의 이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총 생산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진정한 평등의 이상에 접근하는 것이다.

수구적인 좌파나 진보적인 우파가 실제로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지만, 아직 적당한 말이 없어 좌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역사의 복잡성 때문에 좌도우기를 실현하려면 고도의 지혜가 필요하다.

새로운 흐름이 정치와 경제의 중심무대로 나올 수 있도록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좌파와 우파가 서로를 ‘친일’과 ‘종북’으로 공격하는 이상한 환경에서는, ‘좌도우기’는 한낱 공론에 그칠 수밖에 없다. 나는 진보적 인문운동가로서 북한에 민주적이고 정상적인 정권이 등장하기를 누구보다 원하지만, 그 과정이 민족 전체의 참화로 이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해의 소지가 큼에도 내가 ‘한 민족 두 국가’ ‘합작과 연정’을 일관되게 제안하는 것은 ‘전쟁의 우려’와 ‘좌도우기의 희망’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