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1939년 <제시 제임스>라는 영화가 나왔다. 골든글로브 최우수감독상을 받은 헨리 킹의 지휘 아래 타이론 파워와 헨리 폰다 같은 호화 캐스트가 출연해 무법자 제시 제임스에 대한 전설을 만든 것이다. 영화는 어머니로부터 토지를 헐값에 매수해 철도를 깔려던 철도업자와 싸움이 붙은 두 형제 프랭크와 제시가 정당방위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혔으나 범죄자로 수배령이 떨어져 도주하던 삶을 그린다. 이후 제시 제임스에 대한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며 그는 부자에게 뺏은 재물을 빈자에게 나누어주는 로빈 후드로 비춰졌다.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제시 제임스와 형 프랭크는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게릴라로 활약하면서 북군 병사들에게 잔혹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제시는 미주리주의 센트럴리아시에서 비무장 북군 24명을 죽인 대학살에도 한몫을 했다. 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돌아간 뒤에 그들은 갱단에 가입해 은행과 역마차와 기차를 습격하는 무법자가 되었다. 결국은 스스로 갱단을 조직해 10년 동안 범죄를 저질렀다. 생전에 이미 악명이 자자했는데, 동생 제시는 목에 걸린 현상금을 노린 부하에 의해 살해되었다. 학자들은 그가 지역에서 소요를 일으킨 남군 패잔병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그런데 어떻게 그가 불한당에서 활빈당으로 바뀌었을까? 부친의 행적을 미화하려는 것은 동서양에 보편적인 현상인지 제시의 아들 제시 제임스 2세가 아버지에 대한 초창기의 영화를 만드는 데 관여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대히트를 친 헨리 킹 감독의 영화를 비롯한 영상매체의 힘이 그런 허상의 확산에 기여했다.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으려는 것만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여기에는 다른 교훈도 있다. 착취하는 강자들에 대한 민중의 반발 심리는 언제나 활빈당 이야기를 통쾌하게 만든다. 권력이건 재산이건 있는 자들의 파렴치가 극에 달한 이곳에선 그런 민심을 헤아릴 여유조차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