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유형
아렌드 레이프하트 지음, 김석동 옮김/성균관대학교 출판부·2만원 정치학의 한 갈래인 비교정치학의 대표적 고전 <민주주의의 유형>이 번역돼 나왔다. 첫 한글판이다. 그간 수많은 논문과 연구서들에 발췌·인용되기도 하고, 주로 대학원 과정에서 원서로 읽혔던 이 책에 대해 한 정치학 교수는 “단순히 오래됐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교과서라는 의미에서 고전”이라고 평했다.
민주주의는 간단히 ‘다수의 지배’라고 정의되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어떤 다수냐’는 물음이 항상 따라붙기 때문이다. 아렌드 레이프하트(80·사진) 미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UCSD) 명예교수가 시선을 고정한 곳도 바로 그 지점이다. “인민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이지 않을 때 정부는 누구의 이익을 수용하는가?”
이 물음의 연장선에서 레이프하트는 세상의 민주주의를 단순 다수 의사를 따르는 ‘다수결 민주주의’와 가능한 최대 다수 의사에 부응하는 ‘합의 민주주의’로 나눈다. 정확히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릴 ‘자격’을 갖춘 36개 나라를 대상으로해서다. 양당제와 다당제, 내각의 권능,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 선거제, 연방제-다당제와 중앙집중-분권제, 입법권의 집중 대 분리, 개헌절차와 사법심사 등의 항목을 차례차례 꼼꼼히 살핀 연후에 그는 “더 자애롭고 더 온화하다”며 합의 민주주의의 손을 들어준다.
“결론은 (…) 합의제인 민주주의 국가들은 다수결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효과적인 정부와 민주주의의 질, 양쪽에 관해 더 나은 정부 성과(government performance)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2012년 개정판에서 한국을 연구대상에 추가한 이 노학자는,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숨가쁘게 이행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현실과 과제 면에선 냉정한 점수를 매기고 있다. “한국은 (효과적인 정부와 민주주의의 질) 이 두 관점에서 최고의 성과를 기록한 나라들 중 하나는 아니다.” 실제로 연구 대상 36개국 가운데 한국은 전세계 거버넌스 지표(WGI)의 정부 효과성에서 25위, 부패 통제에서 32위를 기록했고, 민주주의의 질을 따지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민주주의 지수에서도 “여전히 바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34개국 중 26위였다.
성경륭 한림대 교수 등 다수의 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실상을 알게 됐다는 레이프하트는 따로 추가한 한국어판 서문에서 신념 어린 조언을 하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정부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 (…)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대체하고, 분명히 비례적인 선거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 통일에 대비해서도 연방제 및 분권화된 체제를 지향하고 양원제 입법부를 채택하는 것이 합당하다.”
책엔 이것 말고도 곱씹어볼 만한 생각 거리가 많다.
강희철 기자, 사진 예일대 누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