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모든 ‘것’은 ‘물리’로 통한다 / 김상욱 부산대 교수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9. 22. 23:33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1) 세상을 보는 시공간의 틀…모든 ‘것’은 ‘물리’로 통한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입력 : 2016.09.09 20:52:00 수정 : 2016.09.20 10:32:05

ㆍ시간과 공간 이야기

물리는 극도로 작은 세상인 쿼크부터 거대한 은하와 우주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단 몇 개의 법칙을 통해 이 모든 규모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물리에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물리는 극도로 작은 세상인 쿼크부터 거대한 은하와 우주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단 몇 개의 법칙을 통해 이 모든 규모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물리에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 물리

물리(物理)는 말 그대로 사물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다. ‘이(理)’는 법칙이라 생각하면 얼추 되겠지만, ‘물(物)’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책상, 벽, 전등, 스마트폰, 손가락, 구름 등과 같이 보이는 ‘것’도 있고, 공기같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도 있다. 뭔가 보인다는 것은 빛이 있다는 뜻이며, 빛도 존재하는 ‘것’이다. 빛도 물리의 대상이지만 ‘물(物)’이라는 단어에 포함될까?

주변에 있는 ‘것’들은 존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하고 있다. 책상은 보이고, 전등은 빛을 내고, 손가락은 움직이고, 나는 숨을 쉬고, 스마트폰은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이런 모든 ‘현상’들이 왜 어떻게 일어나느냐 하는 것도 물리의 대상이다. 더 나아가 이런 모든 것들은 왜 여기 이렇게 존재할까 하는 것마저 물리에 포함된다. 물리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이 빠를 것 같다.

이런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물리의 대상이 되는 것도 없는 걸까? 우리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도 여기에는 여전히 무엇인가 있고, 또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 공간이 있고 시간이 흐른다는 말이다. 공간과 시간에 대해 인지하는 것은 특별한 훈련이 없어도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인간이 선험적으로 갖는 인지구조라고 보았다. 우주가 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틀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 시간과 공간

물리교과서는 대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사실 여기가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지만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은 무엇인가? 시간은 정말 흐르고 있나? 시간은 연속인가? 시간은 우주의 본질적인 것인가, 아니면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의 부산물인가? 공간은 무엇인가? 빈 공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가? 공간은 몇 차원인가? 공간은 평평한가? 공간이 있다고 할 때 정확히 무엇이 존재하는 것인가?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웜홀 이미지. 웜홀은 우주의 중력에 따라 휘어진 시공간의 벽에 구멍을 뚫어 시간여행이 가능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웜홀 이미지. 웜홀은 우주의 중력에 따라 휘어진 시공간의 벽에 구멍을 뚫어 시간여행이 가능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시간과 공간은 138억년 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생겨났다. 빅뱅이론이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것이 생겨났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시간에 시작점이 있다면 그 시작점 이전의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빅뱅이론은 지금의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 결과에서 추론된 것이다. 낙하하는 사과를 보면 나무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 듯, 팽창하는 우주의 시간을 돌려보면 한 점에 모이게 된다. 물론 지금은 팽창하지만 과거에는 제멋대로 팽창, 수축했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때는 가급적 단순한 답을 찾는 것이 과학의 원칙이다. 이게 싫다면 대안을 제시해보라.

빅뱅은 단순히 공간만의 탄생이 아닐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고, 어느 순간 공간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칸트라면 이런 상황 자체는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인식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빅뱅의 이론적 기반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빅뱅,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이 한 점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이 이론이 수학적으로 허용하는 해(解)의 하나다. 놀랍게도 이 이론은 시간과 공간 그 자체를 다룬다.

■ 시공간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기술하는 이론이 가능할까? 이것들은 그냥 가정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물리를 이해할 때 주의사항이 있다. 물리에 나오는 문장은 그것이 일상 언어로서 갖는 의미와 다를 때가 많다.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시간과 공간은 상당히 실용적인 거다. 시간이란 시계로 읽은 두 사건 사이의 간격이다. 공간이란 자로 읽은 두 지점 사이의 거리다. 이 정의에는 시간과 공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들어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시간과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기술하는 물리량을 말하는 거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니까. 우리가 느끼는 시간과 공간은 엄밀히 말해서 측정 결과 얻어진 시간과 거리다. 여기서 거리란 공간을 점하는 어떤 크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 없이 어떻게 물리적인 공간을 생각할 수 있나? 따라서 하나의 사건에 대해 (어떤 이유로든) 움직이는 사람이 잰 시간 간격이 정지한 사람이 잰 시간 간격보다 크다면, 움직이는 사람의 시계는 ‘실제로’ 느리게 가는 거다.

언뜻 생각하기에 시간과 공간은 서로 상관없어 보인다. 지금이 몇 시인지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와 상관없지 않은가? (물론 9시라면 회사에 있어야 할 거다.) 마치 점심시간에 당신이 고기 한 점을 먹든 김치 한 조각을 먹든 상관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고기 한 점에 김치 한 조각씩 함께 먹어야 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고기와 김치가 한데 얽히게 되는 것이다. 자연에서는 빛의 속도가 관측자에 상관없이 일정하다. 속도는 1초의 시간 동안 이동한 거리를 말한다. 속도가 일정해야 한다는 제한 조건은 고기와 김치처럼 시간과 공간을 얽히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시간과 공간 대신 ‘시공간’이란 용어를 써야 한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시간이 길어지고 길이가 짧아진다. 한마디로 시공간이 늘어나거나 줄어든다는 말이다.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 시간도 점차 길어지고 공간도 점차 짧아지게 되는데 이것은 시공간이 휘어진 것과 같다. 병의 둘레 길이가 점차 짧아지면서 주둥이로의 곡선이 나오는 거랑 비슷하다. 이제 당신 앞에 시공간이라는 ‘물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상대성이론은 이 물체가 늘어나고 휘어지는 것을 기술한다. 이런 식으로 시공간은 우리의 대상이 된다. 실제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은 시공간의 기하학적인 모양을 기술한다. 빅뱅의 순간 시공간은 ‘점’이라는 도형이 된다. 그러니 이 순간(?) 시간도 생겨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적절히 기술할 표현이 없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 단위

물리학자에게 시간과 공간은 측정으로 얻어진 물리량일 뿐이다. 그러니 시공간의 측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측정하기 위해서는 기준, 쉽게 말해서 ‘자’가 필요하다. “고래는 크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아무 의미 없다. 지구에 비하면 정말 작으니까. 비교할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리도 인간이 하는 거라 척도의 기준은 인간이다. 시간의 기준은 초, 길이의 기준은 미터다. 1초는 ‘똑딱’이라고 말하는데 걸리는 시간이고, 1미터는 두 손을 적당히 벌렸을 때의 길이다.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원자의 길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100억분의 1미터 혹은 1옹스트롬이 기준이 된다. 당신의 키 1.7미터는 17,000,000,000 옹스트롬이다. 0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미터를 쓰고 싶을 거다.

1미터를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1미터 길이의 막대기를 만드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만약 전쟁이 나거나 해서 막대기를 잃어버리면 낭패가 될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은 이런 인공물이 아니었다. 자연에 있는 기준. 누구라도 자연을 측정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으로 기준을 정의하려 했던 것이다. 초기에는 지구의 자오선(북극과 남극을 포함하는 둘레) 길이를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지구의 둘레 길이는 재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자오선이 파리를 지나는지 런던을 지나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오늘날 1미터는 빛의 속도와 시간으로 정해진다. 정해진 시간 동안 빛이 이동한 거리가 1미터라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으로 길이를 정하는 셈이다. 상대성이론에서 이야기했듯이 빛의 속도는 불변이다. 그래서 초속 299,792,458미터라는 숫자로 정해버렸다. 더 이상 시비 걸지 말라. 시간의 기준은 빛으로 정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원자는 특별한 종류의 빛을 낸다. 예를 들어 네온 원자에 전기방전을 가하면 붉은 빛을 낸다. 네온사인이다. 빛은 전자기파다. 색이란 전자기파의 진동수와 관련 있다. 진동수란 1초에 전자기파가 몇 번 진동했는지를 나타낸다. 따라서 진동수를 알면 전자기파가 한 번 진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알 수 있다. 진동수를 정확히 잴 수 있으면 시간을 정확히 정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1초의 정의는 세슘 원자가 내는 특정 진동수의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미래 언젠가 인류문명이 멸망했다고 하자.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이 정의를 본다면 1미터를 정확히 복구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90억번가량의 진동을 정확히 셀 수 있어야 하므로, 엄청난 정확도로 진동수를 알고 있어야 한다. 2005년 노벨 물리학상은 존 홀과 테오도어 헨슈에게 주어졌다. 이들의 업적은 정확한 진동수를 갖는 빛을 만든 것이다. 최근 이 방법을 사용하여 진동수를 19자리까지 알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서울과 뉴욕 사이의 거리를 원자 하나의 크기보다 작은 오차로 잴 수 있다는 뜻이다.

■ 스케일

헌혈할 때 쓰는 주삿바늘의 지름은 대략 1000분의 2미터(혹은 2밀리미터)쯤 된다. 머리카락을 20개 정도 늘어세울 수 있는 거리다. 꽃가루라면 1만개가 들어간다. 대장균은 300만마리가 들어가니까 대장균이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수다. 하지만 대장균은 여전히 바이러스보다 100배 이상 크다. 바이러스는 수소원자 300개 정도의 크기다. 원자가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원자도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원자핵은 원자 크기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이 안에 양성자와 중성자가 들어있고, 이들을 더 쪼개면 쿼크가 존재한다. 여기까지가 물리학이 실험적으로 도달한 가장 작은 스케일이다. 이런 극도로 작은 공간도 우리가 사는 공간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서울~부산 거리는 약 40만미터. 서울을 출발하여 같은 위도를 따라 지구를 한 바퀴 돈다면 이 거리의 100배가 된다. 달은 서울~부산 거리의 1000배 정도 거리에 있다. 태양이 되면 서울~부산 거리의 100만배가 된다. 태양이 먼 것 같지만,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는 지구~태양 거리의 100만배다.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은하에 가려면 지구~태양 거리의 1000억배를 가야 한다.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1000억개 있다. 이런 거대한 규모의 공간에서도 일상생활의 법칙이 적용될까?

물리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 대상은 쿼크라는 극도로 작은 세상에서 은하와 우주라는 거대한 규모에 걸쳐져 있다. 지금 우리는 단지 몇 개의 법칙으로 이런 모든 규모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말을 듣고도 물리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필자 김상욱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1) 세상을 보는 시공간의 틀…모든 ‘것’은 ‘물리’로 통한다
고등학생 때 양자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뒤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BK조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과학수다1, 2>(공저), <과학하고 앉아있네 3, 4>(공저),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92052005&code=210100#csidx0520407d4d6128f8be5c3762a97b3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