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린치’를 멈추고 법치로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지난 27일에는 해양수산부 국정감사가 있었다. 핵심은 한진해운이었고, 하이라이트는 증인으로 소환된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에 대한 사재출연 압박이었다. 최 전 회장은 야당 의원의 질타에 무릎을 꿇었고, 언론은 그래도 사재출연은 어렵다는 최 전 회장의 행동을 “쇼”로 몰아갔다.
그래서 무엇이 해결되었나?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실린 화물을 걱정하고, 일부 사람들은 선원의 고통도 걱정한다. 그 문제가 사재출연으로 해소되겠나?
설사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해도 그것이 해양수산부의 국정을 살펴보는 국감장의 메인 이벤트가 되어야 하는가? 모두 아니다. 기천억원으로 알려진 최 전 회장 재산을 다 쏟아부어도 한진해운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국감에서 따져야 하는 주된 내용은 사재출연이 아니라 ‘해양수산부’의 헛짓거리이기 때문이다. 최 전 회장의 잘못은 법정에서 가리는 것이 마땅하다.
죄가 없으면 더 이상 시비붙지 말고, 죄가 있으면 형사처벌하면 된다. “법률상의 잘못이 있으니 사재출연하라”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니다.
특히 형벌권이 없는 국회가 그리하는 것은 이지메이자 사실상의 린치(사적 형벌)이다.
한진해운을 살리려면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고, 이곳저곳의 터미널 등 여러 물적 시설도 필요하다. 과거에 체결한 무지막지한 용선료 협상도 파기하고 시세에 맞게 재협상해야 영업해서 수익도 낼 수 있다. 해양수산부 국감은 이런 것에 관한 정부 대비책을 따지는 곳이었어야 한다. 그것도 법정관리 가기 이전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애석하게도 한진해운이 잘못된 법률적 선택을 하는 바람에 앞에 언급한 각종 회생 조건과 관련하여 법정관리가 채무기업에 허용하는 각종 혜택을 스스로 걷어차 버린 꼴이 되었다.
핵심은 필자가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미국에서 연방파산법 제11장 절차를 주절차로 신청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전 세계적인 자동중지 조항을 미국의 국력에 기대어 누릴 수 있고 미국 연방파산법이 허용하는 추가적 장치들을 활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파산법 제11권 제510조 제c항에는 “형평적 열후화”에 관한 규정이 있다. 우리나라 통합도산법에는 없는 조항인데, 그 내용은 “도산절차 밖에서 마치 주주처럼 경영에 개입했던 채권자의 채권은 도산절차 안에서는 법원이 직권으로 그 채권의 변제 우선순위를 낮추거나 심지어 담보권도 박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 법정관리에 앞서 “이 재산 팔고 저 부문 축소하고” 하는 식으로 경영개입하다가 도산하게 되면 도산법원은 그 채권을 채권자 중 가장 후순위로 강등시키고, 그것이 담보채권이라면 담보를 회생재단 쪽으로 돌릴 수 있다.
우리나라 통합도산법에 없는 또 다른 조항은 법정관리 신청 후 최초 120일 동안은 오직 채무기업만이 배타적으로 회생계획안 제출권을 보유한다는 것이다.(연방파산법 제11권 제1121조 제b항) 채권단은 채무기업이 회생계획안을 제때 내지 못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낼 수 있다.
한진해운이 미국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이 조항을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우선 채권 열후화 주장을 통해 산업은행을 필두로 자율협약에 참가한 금융기관들을 모두 압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채권을 열후화하건, 아니면 이를 통해 신규 자금을 이끌어 내건 이렇게 마련된 돈은 한진해운 회생을 위한 금쪽같은 재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진해운에 남아있는 알짜 재산을 현대상선에 넘기겠다는 채권단 쪽의 계획은 한진해운이 동의하지 않는 한 어불성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설사 채권단이 “인가 전 영업양도”라는 편법을 쓰려고 해도 한진해운이 먼저 회생계획안을 제출해 버리면 그만이다. 용선료 협상 파기나 부인권의 행사도 미국 법원을 활용했다면 그 유효성을 증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다른 선택을 했다. 그 책임은 한진해운의 몫이다. 그럼 국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린치를 멈추고 법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번 한진해운 사태는 우리나라 통합도산법이 비록 많이 현대화되었지만 아직도 몇 가지 핵심적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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